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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마지막 순간까지 노동자를 생각한 고 노회찬 원내대표를 추모하며

by 생각비행 2018. 7. 24.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사망 소식에 정치권은 물론 수많은 국민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소수 정당인 정의당의 원내대표이지만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던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3선 의원으로 활동하기까지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국민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정치인이었죠. 그의 존재감은 국회를 쥐락펴락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그는 진보의 틀 안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직업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고대 정외과 학생으로 민주화운동을 시작한 노회찬 원내대표는 노동운동에 투신한 뒤 진보정당 육성의 길에 주력했습니다. 고려대 재학 중 용접공 자격증을 딴 그는 1989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노연)에 가입해 인천과 부천 노동자들을 상대로 의식화 교육을 했습니다. 당시 치안본부는 영장도 없이 집을 수색하고 서적 등을 압수한 끝에 노회찬을 이적단체 가입 등의 혐의로 구속합니다. 징역형으로 1992년 만기 출소한 그는 진보정당추진위원회에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죠.


출처 - 한겨레


1993년에는 《매일노동뉴스》를 창간하며 발행인으로 취임하기도 했습니다. 노동 전문 언론인으로 변신하여 10년간 발행인으로서 노동 관련 뉴스들을 전달했습니다. 한편 1997년에는 《어 그래―조선왕조실록》이란 책을 펴내어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어깨를 나란히 한 책으로 《로마인 이야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있던 시절이었죠.


출처 - 한국일보


1999년에 노회찬은 노동자들도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자기 입으로 말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정치권력에 참여할 때라고 얘기하며 오로지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역설했습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노회찬 의원은 이런 행보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한 그였기에 2004년 비례대표로 원내에 입성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비례대표는 지금까지 진보 정치인들이 국회로 진입할 수 있는 유력한 통로이기도 합니다.


출처 - JTBC


국회에 입성한 노회찬 의원은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아온 검사 7인의 명단을 공개한, 이른바  '삼성 X파일' 관련 재판으로 당선 9개월 만에 의원직을 상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20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경남 창원 성산으로 바꿔 출마해 당선되었고 진보정당 최초의 3선 국회의원이 되는 기록도 남겼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유튜브


노회찬 하면 숱한 어록이 떠오릅니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핵심을 찌르는 그의 언어유희는 그야말로 촌철살인의 대명사요, 답답한 정치판의 사이다와 같았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노회찬 의원에게 '갓회찬' '노르가즘' 같은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죠.   

 

“한나라당과 민주당,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_2004년 17대 총선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여 KBS 〈심야토론〉에서 한나라당, 민주당을 비판하며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는데 1만 명만 평등한 것 아닌가."

_17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법제사법위원회 첫 국감 자리에서 사법부를 질타하며

 

“4대강과 부자감세는 서민들에게 신종플루 비슷한 겁니다. 확진상태죠. 국민을 살릴 건지 4대강 살릴 건지 결단해야 합니다”

_2009년 MBC 〈100분 토론〉에서 이명박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폐암 환자를 수술한다더니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들어낸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른가?"

_2013년 삼성 X파일 사건 폭로로 대법원에서 징역형 확정판결을 받은 직후 심경을 밝히며

 

“제가 한번 누워보겠습니다.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인권침해라고 제소해야 할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니라 4만여 일반 수용자입니다.”

_2016년 10월 국정농단으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치소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일반 수용자의 가용면적이라는 신문지 2장 반을 깔고 그 위에 누우면서

 

"동네파출소가 생긴다고 하니까 그 동네 폭력배들이 싫어하는 것과 똑같은 거죠.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_2017년 9월 20일, 정부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청소할 때 청소를 해야지, 청소하는 게 먼지에 대한 보복이라고 얘기하면 말이 되느냐. 적폐청산은 보복이 아니라 잘못된 시대를 엎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_2018년 1월 2일,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을 반박하

 

“기원전(B.C) 역사가 되풀이될 수 없듯이 Before Candle 즉, 촛불 이전(B.C) 시절도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20대 국회의원 모두 촛불과 함께 한 시대를 건넜다. 촛불 이전의 낡은 정치를 반복하지 말자. 정치가 스스로 개혁할 때 비로소 나라도 나라답게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_2018년 2월 6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값싼 쇠고기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소에 물을 먹여 쇠고기 중량을 늘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_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비판하며 

 

노회찬은 한국 노동계, 진보정치계에서 선구자의 한 사람이자 마지막까지 노동자의 처지를 생각하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드루킹 특검이 진행 중인 와중에 과거 경공모로부터 4000만 원을 받은 사실을 스스로 견디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유서에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어떤 청탁도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다수 회원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며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후회의 심정을 남겼습니다.


출처 – MBC 유튜브


사실 법정에서 잘잘못을 가릴 수도 있었습니다. 대가성이 없었다고 밝혀지면 뇌물죄로 기소되지 않을 수 있고 그러면 집행유예 선에서 마무리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는 돈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자신이 했던 말을 뒤집는다는 행위가 진보정당의 도덕성에 끼칠 타격을 염려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국회 특수활동비를 자진 공개하는 등 늘 깨끗한 정치를 강조했던 그의 정치 이력과 소신이 부담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오랜 분열과 부침 끝에 평화와 정의라는 원내교섭단체가 이루어졌다는 점도 부담이 되었겠죠. 그래서인지 그는 유서에서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거워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출처 - 서울신문


노회찬 의원이 아파트에서 몸을 던진 시간, 원래대로라면 12년 만에 복직하게 된 KTX 승무원과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자 모임과 관련한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통을 감내하며 드디어 뜻깊은 결과를 이룬 이들을 축하하려던 것이었죠. 이처럼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노동자들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노회찬 원내대표는 유서에 밝힌 바와 같이 어리석은 선택과 부끄러운 판단을 자책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죽음으로 대신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듭니다. 그보다 수백, 수천 배의 돈을 받아먹고도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사는 정치인이 허다하니까요. 고 노무현 대통령과 고 노회찬 의원처럼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만 왜 먼저 가버리는 건지, 그런 현실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정의당은 노회찬 원내대표의 장례를 정당장으로 5일장으로 치른다고 밝혔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장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고 노회찬 의원의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러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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