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중 전 대통령,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지난 23일 김종필 전 총리가 사망하며 우리 현대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삼김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저물었습니다. 앞선 두 전직 대통령과 달리 김종필 전 총리는 온갖 권좌에 앉았지만 대통령만은 해보지 못한 김종필을 일컬어 사람들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김종필은 군사독재 이후 20세기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마다 등장했던 주요인물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그 굴곡 자체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죽었으니 그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살피고 후속 조치에 논란이 따라붙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김종필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정치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조문을 했습니다. 청와대는 전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키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문하지 않기로 결정했죠. 이에 대해 진영별로 논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훈장 추서에 관한 논란이 핵심입니다. 국민 훈장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 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 복지 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죠. 무궁화장은 이 국민훈장의 1등급에 해당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훈장 추서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단체와 학계를 중심으로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각종 군 비리를 폭로한 바 있는 군인권센터는 5.16 군사 쿠데타의 주모자이자 한일협정의 원흉인 김종필에게 훈장을 추서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김종필은 5.16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와 함께 선거로 수립된 민주 정부를 전복한 원흉이며 국민을 지키는 본연의 임무를 잊고 권력을 탐하는 정치군인의 원조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밀실에서 자기네끼리 숙덕여 진행한 굴욕적인 한일협약 역시 박정희 밑에서 김종필이 주도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을 굴욕적으로 한 것도 모자라 그 돈을 자기들끼리 주물럭거린 매국노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훈장을 추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죠.
출처 - 페이스북
역사학자인 전우용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래의 한국사 시험 문제를 미리 내봤다며 김종필이 훈장을 받을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비꼬았습니다. 김종필은 5.16 군사 쿠데타의 주모자로서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맡아 시민들을 억압하며 반민주 반인륜적인 군사독재 체제 수립에 누구보다 앞장섰습니다. 이후 국무총리, 집권당 대표 등을 역임하며 박정희 이후 군사 독재의 유산과 그 지지세력의 정치적 구심점으로 활동했죠.
출처 – 청와대 청원게시판
이 때문일까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김종필에 대한 훈장 추서를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이틀 새 150건이 넘게 올라왔습니다. 같은 내용의 수많은 게시물이 올라오며 시민들 사이에서 반대 여론이 높음을 보여주었죠.
출처 -경향신문
김종필 전 총리에게 훈장을 추서한 것에 대해 민중당은 지난 24일 논평을 통해 '불가' 입장을 밝혔습니다. 〈역사의 죄인에게 국민훈장은 맞지 않는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수많은 민주열사가 저승에서 통곡할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그가 남긴 과오를 보면 자연인 김종필의 죽음조차 애도하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일갈했는데요, '자연인 김종필'을 거론한 건 전날 정의당 브리핑을 염두에 둔 것으로 파악됩니다.
출처 - 뉴시스
정의당은 뒤늦게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 대한 국민훈장 추서를 중단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5.16 쿠데타는 갓 싹을 틔웠던 대한민국 민주헌정을 전복한 역사로 지난 수십 년 우리 정치사는 불운의 굴곡을 겪었으며, 국민들께는 쉽게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 유신체제에 항거했던 이들의 명예회복도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정치계 원로인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께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할 것이다.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고, 떠나는 이에 대한 예는 다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이 대표는 이날 정부가 김 전 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키로 결정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습니다.
훈장 추서는 국무회의에서 결정되는 일이고 청와대는 여러 의견을 고려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공과가 있기 마련이겠죠. 하지만 이를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것과 훈장 추서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민주 정부를 총칼로 전복한 쿠데타의 주역에게 민주 정부가 훈장이라는 국가 최고의 영예를 안겨주는 게 맞는 일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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