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예멘 난민 수용 문제를 두고 찬반 논란이 격해지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쏟아진 난민으로 치안과 고용 사정이 우려된다는 주장이 있는 한편 우리나라도 이제 인도적인 차원의 난민 수용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이 상충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MBC
지난 19일 제주도 출입국청에 따르면 지난주까지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인은 총 561명으로 이 가운데 549명이 난민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멘 난민 신청자가 지난 한 해 42명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예멘 난민이 갑작스레 증가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들은 예맨 내전을 피해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예멘에서 지난 2015년부터 이슬람 종파끼리의 내전이 발발해 약 19만 명이 해외로 탈출했습니다. 제주도에 입국한 난민들은 말레이시아로 탈출했다가 체류 기간인 90일이 끝나자 직항 노선이 있는 제주로 온 것이라고 하죠. 제주는 지난 2002년부터 무사증 제도가 도입되어 외국인이 무비자 상태로 한 달간 체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난민 유입이 크게 늘자 법무부는 현재 무사증 불허 국가로 예멘을 지정한 상태입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이 상황을 바라보는 찬반 양론이 난무하며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불이 났습니다. 예멘 난민 제주도 수용에 대한 찬성과 반대 게시물이 백 단위로 올라온 상태인데요. 예멘 난민이 더 이상 전쟁 위협에 시달리지 않게 인도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옹호 글도 많습니다만, '난민을 당장 추방하라, 무사증 제도를 폐지하라'부터 노골적인 이슬람 혐오를 드러내는 입장의 반대 글도 적지 않습니다. 청와대는 노골적인 이슬람 폄하 표현이 발견 된 청원 게시물은 참여자가 많더라도 삭제하는 등 정리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반대 청원 게시물은 이미 찬성이 20만 명이 넘어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답변을 해야 하는 것도 생겼죠.
출처 – 한겨레
IS의 테러에 대한 반감으로 이슬람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누가 뭐라 해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역시 일자리 문제였습니다. 당국이 예멘 난민들에 대해 정부가 취업 알선을 하고 있으며 이 소식을 이용한 브로커들도 활개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논란에 불이 붙었습니다. 현재 젊은이들의 일자리 상황이 너무나 안 좋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 - JTBC
하지만 사실은 약간 다릅니다. 정부가 이들에게 특별취업허가를 내준 것은 맞지만 이는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현재 일손이 부족한 현장에서 이들을 채용할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와 제주도 내 인력부족 업종에 취업을 특별히 허가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구호물품이 부족한 데다 인원도 적지 않으니 일을 해서 먹고살게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죠. 이렇게 되어 예멘 난민들이 취직한 곳은 제주도 내 일손이 부족한 양식장, 어선, 어업, 농업 분야입니다. 애초에 한국인들이 하려고 들지 않아 일손이 부족한 일자리였죠.
출처 - 연합뉴스
이에 반해 난민 수용 반대 입장을 피력하는 이들의 혐오 발언은 도를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취업을 목적으로한 '가짜 난민'이라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예멘 난민들 중 젊은 남성이 많은 이유는 반군의 강제 징집을 피해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하기 싫어서, 테러를 저지르기 싫어서 난민이 된 겁니다. 이들을 '가짜 난민'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묻겠습니다. 이들을 거부한다면 이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에서 그냥 죽거나 군에 강제로 들어가서 전쟁을 하거나 테러를 저질렀어야 한다는 건가요? 부끄럽게도 SNS에는 이들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라며 여러분의 아들을 죽이고 딸과 며느리를 강간할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혐오가 뒤섞인 글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애초에 예멘 난민들은 우리나라에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은 것도 아니고 난민 신청을 한 사람들입니다. 받아들일지 말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인데 혐오를 조장하고 낙인을 찍는 건 대체 어떤 정신 상태에서 기인한 행동입니까?
출처 - UN난민기구
우리나라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인권 국가입니다. 이미 UN 난민 협약국이며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난민을 보호해야 할 국제법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아니, 법적인 의무를 운운하기에 앞서 염치가 있다면 우리나라는 난민을 박대해서는 안 됩니다. 'UNKRA'를 아십니까? 1951년 설립된 UN 한국 재건단(UN Korea Reconstruction Agency)을 말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딛고 만들어진 국제연합 UN이 설립 5년 만에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해 한반도에서 일어난 6.25 전쟁에 개입하기로 결정하면서 UN군과 한국군뿐 아니라 막대한 한국 민간인들도 죽어 나갔죠. 이에 대한 대책으로 UN은 UNKRA를 세워 한국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지원, 구호 활동을 시작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UNKRA는 UN난민기구(UNHCR)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이며, UN의 이름으로 난민 구호를 받은 최초의 나라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었다는 소립니다. 전쟁 난민으로서 세계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한 나라인 대한민국이 이제 좀 먹고살 만해졌다고 난민과 특정 종교, 인종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서야 되겠습니까? 몰염치도 정도가 있는 겁니다.
출처 - 경향신문
우리나라에 난민신청자는 점점 늘고 있는데 심사를 통한 인정율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2015년 한 해 법무부 단계에서의 인정율은 0.7%로 2014년 인정율 2.45%의 3분의 1 가량이었습니다. 2015년 1월부터 5월까지 가족 결합을 제외하면 난민 지위 심사를 통해 결과를 통지받은 이들은 1265명인데, 이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는 두 명뿐입니다. 인정률 0.16%로 그야말로 '바늘구멍'입니다. 유엔난민기구 통계상 세계 평균인 38%에 턱없이 모자랍니다. 사법부의 난민인정은 2011년 이후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다가 2015년에 이르러 0%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출처 - 난민인권센터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1.51%로 2016년 1.01%와 큰 변화가 없는 수치라고 합니다. 2017년 한 해 동안 총 121명이 난민인정을 받았지만, 그중 가족결합으로 인정받은 35명과 재정착난민 30명, 취소자 1명을 제외하면 실제로 심사를 통해 인정받은 사람은 단 55명에 불과합니다. 난민인정률은 2010년부터 매년 꾸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난민법이 시행된 연도인 2013년을 제외한 이후 4년의 평균 인정률은 3.25%에 그칩니다. 난민법 시행 전인 2004년부터 2012년의 난민인정률이 평균적으로는 더 높다고 하죠.
올해 난민 신청은 1만 8000건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3년이 지나면 12만 명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죠.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난민에 대한 인정과 수용 그리고 정착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과 법적인 정비 그리고 사회환경 조성이 필요합니다. 고작 500여 명으로 제주에서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으니 말입니다.
오늘은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입니다. 우리의 인권의식을 돌아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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