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리스트 사건 중 유일하게 공소시효가 남은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했습니다. 10년 전인 2009년 3월 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자연 씨는 언론계를 포함한 유력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강요받았다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장자연 씨가 남긴 문건에 따르면 연예기획사, 대기업, 금융업 종사자, 언론사 관계자 등 31명에게 100여 차례 이상 술접대와 성상납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렸다고 합니다. 유서에는 가해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소속과 직함까지 구체적으로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이 의혹에 대해 모두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던 바 있습니다.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10명 모두 말입니다. 장자연 씨와 유족의 억울함만을 남기고 그 사건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묻히고 말았죠.
출처 - KBS
그런데 최근 미투 운동 덕분에 사정이 반전됐습니다. 2018년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고 장자연의 한 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한 달만에 청와대 답변 커트라인인 20만 명을 넘겼습니다. 검찰 과거사 위원회가 2월 6일 1차 사전조사 사건 발표 당시 제외했던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2차 재조사 대상 사건으로 지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에는 이런 국민의 지지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장자연 리스트 재조사에 앞서 《한겨레21》이 2009년 당시 검찰과 경찰이 진행했던 수사기록을 입수해 검토했는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검경이 당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방모 씨가 2008년 10월 28일 장자연 씨를 술자리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꽤 면밀히 조사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날은 장자연 씨가 어머니의 기일인데도 이런 자리에 나가야 하느냐며 슬퍼했다던 바로 그날이죠. 장자연 문건에서 접대를 했다고 밝힌 인물은 모두 5명인데 2009년 8월 19일 검찰 수사 결과 발표 때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방모 씨만 쏙 빠졌습니다. 이러니 국민들 사이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의혹이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출처 - KBS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장자연 씨의 기획사 대표이자 성접대를 강요한 김모 대표에 대한 신문조서를 보면, 경찰은 김 씨가 고 장자연 씨에게 《조선일보》 사장 아들인 방모 씨가 참석한 술자리에 대해 입단속을 한 것으로 보이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확보한 것이죠. 장자연 씨에게 《조선일보》 사장 아들 등을 상대로 한 접대 자리에 대한 비밀을 유지하라는 문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그 주인공인 방모 씨는 술자리에 잠깐 들렀다 일찍 나왔다는 말로 발뺌했습니다.
출처 - KBS
하지만 검찰은 기획사 사장인 김 씨만 추궁했을 뿐 거듭된 거짓말에도 당사자인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 방모 씨는 추가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검찰은 피의자 14명에 대한 성매매 혐의 등에 모조리 불기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성접대를 강요한 김 대표에 대해서도 피해자 장자연 씨가 작성한 문서에 술접대 강요라는 문구가 있긴 하지만 의미가 명확지 않다, 문서에 구체적 기재가 없이 잠자리 강요를 받았다는 내용만으로 성매매 단정을 할 수 없다며 모조리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지만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이없는 처분이었습니다.
출처 – KBS
재수사를 한다니 다행이지만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건 강제추행 부분뿐입니다. 당시 《조선일보》라는 거대 언론사 사주 아들이 얽혀 있어 검찰과 경찰에서 봐주기가 있었다면, 혹은 당시 정권과의 뒷거래가 있었다면 그 관련자를 색출해 처벌함이 마땅합니다.
출처 - 노컷뉴스
고 장자연 씨의 억울함을 이번 기회에 조금이나마 풀고, 일상에서 성적인 억압에 노출된 여성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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