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개봉한 영화 〈컨택트〉가 영화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 내용에 대한 불만은 아닙니다. 휴고상, 네뷸러상 등 SF 계의 내로라하는 상을 휩쓴 작가 테드 창이 쓴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를 원작으로 삼아 감독인 드니 빌뇌브가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훌륭히 각색해 영상화했으니까요. <컨택트>는 외계인만 등장하면 부수고 터뜨리기 바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언어'와 '소통'에 관한 지적 유희에 가까운 좋은 영화입니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이미 올해 아카데미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있죠.
출처 - 유튜브
논란이 된 건 영화 제목이었습니다. 원제인 'Arrival'을 뜬금없이 '컨택트'로 바꿨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영화 마지막 하얀 화면에 나오는 제목은 'Arrival'인데 자막에는 '컨택트'라고 뜹니다. 보고 있자니 대체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조디 포스터가 주연으로 나온 SF 걸작 영화 〈콘택트(Contact)〉를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정작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그 영화와 제목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기사를 보고 알았다는 유체이탈 화법 같은 소릴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각 나라 배급사의 판단에 따라 제목이 달라지긴 했습니다. 중국은 '降臨(강림)', 일본은 'メッセージ(메시지)', 포르투갈은 'O Primeiro Encontro(첫 만남)', 폴란드는 'Nowy początek(새 시작)' 등으로 다양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 제목이 논란이 된 까닭은 우리나라 배급사의 안이하고 이상한 이름 짓기 때문일 겁니다.
원제와 연관 없는, 게다가 기존 걸작에 대한 존중의 의미도 담기지 않은, 생판 다른 영어로 굳이 바꿔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관객에게 다가가는 제목을 원했다면 영어가 아닌 신선한 한국어 제목을 택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컨택트〉처럼 영어 원제를 뜬금없이 다른 영어 제목으로 옮기는 영화도 많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외화 제목은 원제를 그냥 한국어로 바꿔버린 제목일 겁니다. 컨택트'처럼 인기 소설이 원작인 영화 '월드워Z'도 그렇습니다. 원작인 ‘세계대전Z’가 한국에 번역된 소설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도 배급사는 굳이 영화의 영어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곧 개봉할 마틴 스코세이지의 종교 영화 〈사일런스〉는 어떻습니까? 엔도 슈사쿠의 유명한 소설 〈침묵〉을 그냥 영어 그대로 읽어버리는 안이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영어가 한국어보다 세련되어 보인다는 얄팍한 장삿속이 드러나는 것 같아 이런 유의 영화 제목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계피'보다 '시나몬'이 더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물론 모든 배급사가 이처럼 영화 제목을 짓는 건 아닙니다. 좋은 한국어 제목을 짓기 위해 노력하는 곳도 분명히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겨울왕국〉은 원작이 〈Frozen〉이었죠. 역시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Gone Girl〉은 한국어 번역본 제목대로 〈나를 찾아줘〉로 개봉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전엔 원작의 제목보다 훨씬 좋은 번역 제목도 즐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랑과 영혼'이 있습니다. 원제는 ‘Ghost’였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 독립영화계의 최대 축제인 선댄스 영화제라는 이름의 모체가 된 '내일을 향해 쏴라'가 있겠네요. 극 중 로버트 레드포드가 분한 선댄스 키드의 이름에서 따온 건데, 영화 원제는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였습니다. 그냥 두 주인공 이름을 나열했을 뿐인 제목을 '내일을 향해 쏴라’로 멋지게 지어낸 것이죠.
앞으로 영화 배급사들이 제목에 대해 고민을 좀 더 해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한국어 제목으로 깔끔히 번역하면 좋겠고, 안 된다면 최소한 원제를 그대로 옮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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