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이 마지막 관문을 넘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기자협회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심판에서 4대 쟁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모두 합헌 결정을 내리며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공직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김영란법은 예정대로 9월 28일 시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측은 그 이후로 자신들의 무기인 권력과 언론의 힘을 바탕으로 김영란법에 십자포화를 쏴대고 있습니다.
출처 - SBS
헌재에서 다룬 핵심 쟁점은 4가지였습니다. 민간영역인 사립교원, 언론인도 적용 대상에 포함되는 게 적법한가, 공직자 등의 배우자 금품수수 시 신고의무를 부과한 점은 연좌제가 아닌가, 부정청탁과 사회상규라는 뜻이 모호하지 않은가, 식사비/선물/경조사비 등의 상한가액을 시행령으로 정한 규정이 포괄위임 금지원칙에 반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죠. 헌재는 이 모든 쟁점이 적법하며 사회의 만연한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출처 - 팩트올
이로써 9월 28일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공직자와 공적 직역 대상자들이 1회 100만 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 등을 제공받으면 직무와 관련이 있건 없건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 원에 처하며, 공직자 등이 배우자의 금품수수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아도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 원의 처벌을 받습니다. 100만 원 이하의 금품 등을 받았을 때 직무관련성이 있다면 2~5배의 과태료를 물립니다.
이 때문에 밥 한번 먹고 술 한잔 해야 일이 돌아갔던 재계를 비롯한 경제 관련 단체는 소비 위축에 뒤따른 후폭풍이 있을 것이라며 사람들을 겁박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김영란법 시행에 반발하며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이라는 감각적인 제목의 기사로 김영란법은 한우를 비롯한 농가를 죽이는 악법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죠. 기사는 우리 농가가 김영란법으로 무너진 사이 중국산이 쏟아져 들어와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우루과이 라운드, 조류독감, 쌀 수매 등의 핵심 사안이 있을 때마다 피눈물 터지는 농촌의 어려움을 외면하던 보수 언론이 김영란법 시행에 관해서는 왜 이런 입장을 보이는지 그 저의를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출처 - 조선일보
경제계와 언론의 우려대로 김영란법으로 말미암아 일시적인 소비 위축이 올 수는 있을 겁니다. 한국은행의 경우 김영란법의 영향을 고려해 올해 GDP 성장률을 낮췄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곳곳에 부정부패가 그만큼 만연해 있다는 현실의 방증이기도 합니다.
김영란법의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외식업계는 먹고살 일을 걱정하며 헌재의 결정을 규탄하면서도 발 빠르게 3만 원 미만 메뉴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백화점 등 대형 유통점도 김영란법에 맞는 선물세트 만들기에 바쁩니다. 법 시행을 앞두고 사회 곳곳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얘깁니다.
출처 - 한국일보
우리나라는 매일 270억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접대비로 쏟아붓는 나라입니다. 연간 10조 원 규모입니다. 선물 구매비는 좀 더 나가서 11조 원이었죠. 국세청이 법인카드로 확인한 금액만 집계한 것입니다. 그중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 비중이 가장 높았습니다. 매일 수십억씩 연간 1조 원이 넘는 돈이 유흥업소로 흥청망청 쓸려 들어갑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를 접대 문화라고 부르며 묵인해왔습니다. 기업이 어렵다면서도 접대비 지출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는 건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이런 접대 문화가 '먹혔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접대비와 선물 구매비에 해당하는 약 20조란 돈을 기업의 혁신에 쓴다고 경제가 위축될까요? 김영란법이 기업을 죽인다는 말은 기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무식한 말입니다. 접대비를 줄인 돈으로 신기술과 신제품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부정부패를 없앨수록 소득이 올라가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건 상식이고 경제학계의 정설입니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청해진해운은 사고 전해인 2013년에 접대비로 6000만 원을 썼습니다. 하지만 안전교육 등 선원들의 교육비로 쓴 돈은 겨우 54만 원이었죠.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에서 접대비 일부가 해경 향응에 사용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죠.
이처럼 접대 문화가 만연한 곳에서 기업은 힘들여 혁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로비와 청탁에 매달리게 되고 기업을 감시하는 공직자와 언론 종사자는 이 로비와 청탁에 빌붙어 사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구태에 젖은 새누리당은 김영란법을 연착륙시켜야 한다며 벌써 시행령 개정으로 식사비 등 비용을 인상하려 하고 있고, 언론은 자영업자들이 폭삭 망한다느니 수사기관의 함정수사에 목줄이 잡힐 거라느니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3만 원 이상 식사, 5만 원 이상 선물 금지로 축산업자나 과수농가, 어민 등 서민이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단체가 엄살떠는 소비 위축의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최저 시급 6000원이면 황제처럼 식사할 수 있다던 새누리당과, 최저 임금으로도 먹고살 수 있다며 매년 최저 임금 인상 몇백 원에 윽박지르던 경제단체가 할 말은 아니죠. 또한 "축산업과 과일 산업이 뿌리째 흔들릴 것" "경제를 망가뜨릴 것"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언론도 사실관계를 왜곡하지 말고 올바르게 알릴 의무가 있습니다.
출처 - 뉴스핌
이미 지난 6월 29일 전국농민회총연맹, 가톨릭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등 4개 농민단체가 "농어민의 어려움을 방패막이 삼아, 김영란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일체의 행동을 중단하라"며 성명서를 낸 바 있습니다. 이들 단체는 "김영란법은 검은 거래를 막기 위해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농어업의 피해를 의도적으로 부풀려 이 법의 시행을 미루고, 기능을 못 하게 한다면 농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밝혔죠.
또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김영란법 시행령의 '식사비 3만원, 선물비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완화하는 결의안을 내놓자 시민단체들이 기준 완화는 "입법 취지를 훼손하는 행태"라고 반발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 농해수위의 김영란법 한도 상향 결의안은 정치권이 스스로 부정부패 근절의 의지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경실련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농수축산업계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부패로 망한 나라는 있어도 청렴으로 망한 나라는 없다"며 "금품수수 기준을 완화할 것이 아니라 정부·정당·산업계가 판로를 개척하고 상품을 개발하는 등 업계를 보호할 보완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생각비행은 지난 5월에 〈김영란법으로 경제 위축?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기사에서 김영란법이 국민 경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즉 박근혜 정부가 직접 발주한 용역 보고서의 내용이었죠. 이 보고서는 김영란법 시행령의 근거가 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용역 보고서는 대통령이나 언론인 등 김영란법을 반대하는 부류의 불만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피해 업종으로 알려진 화훼산업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충격이 없을 것이라고 결론 났습니다. 선물 수요도 줄지 않을 것으로 나타났죠.
공무원 행동강령을 위반한, 즉 김영란법에 걸릴 만한 행위를 했던 공무원 수 등을 대입해 시장 수요를 조사해봤더니 많아야 0.86퍼센트 정도가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가장 비관적인 예측조차 1퍼센트도 안 됩니다. 오히려 김영란법 시행의 긍정적 효과로 기업 접대비가 감소하여 노동자의 임금 상승으로 연결되면 진정한 의미의 경제 활성화가 일어날 수 있고 부패 척결을 통한 지하 경제 양성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한들 국민 경제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불안한 이들은 걸릴 구석이 많은 높으신 분들과 그 주변에서 꿀을 빨던 사람들뿐입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크니 사회가 시끄러운 겁니다. 김영란법 탓하지 말고 자기 밥값은 자기가 냅시다. 2차, 3차로 이어지는 불필요한 접대 문화를 근절하고 일찍 집에 들어가 각자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립시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그렇게 변해가는 게 마땅합니다. 그런 변화가 곧 경제의 선순환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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