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인구 지각 변동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제는 세대를 넘어서 지역, 주거로까지 확산할 조짐입니다. 이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전·월세 대란에 갈 곳을 잃어 인구이동 추이가 4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봄철 손없는 날로 원래대로라면 이사하기가 힘들어야 할 때였는데 오히려 이사업체로부터 덤핑 제안을 받기도 했다죠. 이사하는 손님이 너무 없기 때문이랍니다. 부동산 거래 급감으로 1년 사이에만도 이사 건수가 약 13퍼센트나 줄었습니다. 한편 매매는 28퍼센트, 전월세는 7퍼센트 줄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서울의 인구 과밀도 옛말이 될 전망입니다. 너무 오른 집값에 지난 7년 2개월 동안 꾸준히 감소하던 서울 인구는 올해 5~6월 사이에 1000만 명 밑으로 떨어질 것이 확실시된다는군요. 반면 주거 대란의 피난처로 주목받은 경기도는 그 반사이익으로 인구가 늘고 있습니다. 서울은 쪼그라드는 반면 수도권은 더 커질 전망입니다.
출처 - 한국일보
이런 변화 가운데 땅부자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임대주택사업에 뛰어들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KT가 앞장을 서고 있는데요. 지난 4월 KT는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를 통해 임대사업을 본격화하고 리마크빌이란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자신들의 자산인 옛 전화국 부지에 2020년까지 1만 가구의 오피스텔과 도시형 생활주택을 공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당장 올해 7월 서울 신당동 역세권인 동대문 리마크빌 797가구를 시작으로 영등포, 관악구, 부산 대연동 등 올해에만 4개 지역에 2231가구를 공급할 계획입니다.
금융계도 마찬가집니다. 하나금융그룹을 필두로 KB, 신한, 우리 등도 핀테크, M&A 등으로 지점 통폐합이 많은 가운데 필요 없어진 점포를 허물고 8년 장기 월세 주택인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를 1만 가구 지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경영권 분쟁에 롯데타워라는 건설계의 스캔들을 가진 롯데그룹도 서울 문래동 롯데푸드 공장 부지에 500가구의 오피스텔과 아파트를 짓는 것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그룹의 유휴부지에 1만 8000가구의 뉴스테이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기업들이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드는 데는 여러 환경이 맞물리기 때문인데요. 우선 대기업들이 지점이든 공장이든 도심 노른자위 땅을 다수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버스 타고 가면서 KT전화국 지사 이름이나 은행 지점 이름이 붙은 정류장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다 박근혜 정권은 이른바 부동산 시장 활성화와 주택 보급을 위해 뉴스테이 사업에 사기업을 끌어들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미 여러 당근을 제시한 상태죠. 임대 시장마저 전세 시대가 끝나고 월세로 빠르게 바뀌고 있으니 사업 다각화를 꿈꾸던 대기업들로선 옳다구나 하고 달려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임대주택 사업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업체가 초대형 건설사 위주라는 점입니다. 이래서는 창의와 혁신이 넘치는 일자리 창출 사업이 되지 못합니다. 중소기업에 문호를 개방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한편 기업형 임대주택이 건설되고 나면 임대료만이 아니라 KT는 인터넷 통신망, 금융그룹은 단지 내 관리비, 생활비 카드 결제 수수료, 롯데는 쇼핑몰이나 자동차 렌트 입점 등과 같이 또 하나의 시장이 창출되는 효과를 누리게 되는데요, 대기업으로서는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인 상황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하지만 예측되는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대기업들이 임대주택 시장에 뛰어들면 가뜩이나 비싼 임대 시세를 더욱 끌어올리게 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택산업연구원의 분석 결과 위례신도시나 서울은 월 소득 인정액이 737~893만 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소득 상위 30퍼센트 계층 정도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고가 임대료 체계를 부채질하는 대기업의 진입은 이 커트라인을 더욱 끌어올릴 전망입니다.
지금도 심각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조선 시대처럼 사대문 안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는 있는 집 사람들만 살고 그 바깥 초가집에 서민들이 살게 되는 식으로 신분제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미 강남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한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과 대구 등 지방 대표 도시들의 가격 하락으로 부동산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죠. 박근혜 정부는 애초 중산층의 주거 안정과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목적으로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중산층을 위한 주거 정책이라기보다 대기업의 이윤 추구를 충족시키는 정책에 훨씬 가깝습니다.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이 의도대로 실현되려면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감시가 필수적인데, 박근혜 정부에 이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조금만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임대주택 사업을 하면서 대기업들이 없애려는 것은 전화국, 은행 지점, 공장 등 그동안 노동자를 고용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던 곳입니다.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이 대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을 줄이고 돈을 더 벌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겠지만, 서민의 입장에서는 집값을 올리고 일자리마저 잃게 하는 문제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집주인마저 대기업으로 변모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의미가 무엇일지 판단하고 대비하지 못하면 또 한 번의 파국을 경험하게 되겠지요. 하루빨리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에 공적 규제를 적용해야 합니다. 또한 수요계층이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임대료를 재조정하고, LH의 부채 문제를 해결해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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