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금지법이 이대로 되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 편집·보도국장과의 간담회에서 직접 한 말입니다. 부정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이 이대로 시행되면 경제가 위축될 거라는 얘기였죠. 발의 당시는 물론 작년에 김영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부터 이에 대한 각계각층의 반발이 대단했습니다. 김영란법 국회 본회의 통과의 의미와 향방에 관해 다룬 생각비행의 기사를 참고해주세요.
출처 - MBN
그런데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김영란법을 힐난하고 나섰습니다. 선물 액수를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조정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은 물론 헌법 소원을 언급하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내비치기도 했죠. 한국기자협회 등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는 언론인과 사립교원을 공무원과 같이 처벌하는 조항이 언론과 사학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가 쟁점입니다.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의 9월 시행 전에 심리를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언론이 김영란법 반대 기사를 쏟아내는 이유는 이 법이 언론인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이완구 원내 대표를 통해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언론인을 제외하자고 공식적으로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런 틈을 보수 언론이 파고들겠다는 겁니다. 《조선일보》는 즉각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이라는 감각적인 제목의 기사로 김영란법은 한우를 비롯한 농가를 죽이는 악법이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우리 농가가 김영란법으로 무너진 사이 중국산이 쏟아져 들어와 시장을 잠식할 거라는 으름장도 잊지 않았죠. 우루과이 라운드, 조류독감, 쌀 수매 등의 핵심 사안이 있을 때마다 피눈물 터지는 농촌의 어려움을 외면하던 보수 언론이 지금은 왜 이러는지 그 저의가 궁금하군요. 노골적으로 언론인만 김영란법에서 빼자는 기사까지 내면서 말입니다.
국민의 알 권리가 정말 언론의 강령이라고 생각한다면 국민의 여론이 모여 통과된 김영란법에서 자기들만 빠져나가려는 행태는 자가당착의 결과입니다. 김영란법, 즉 부정부패방지법으로 발목 잡힐 언론의 자유라면 그게 진정한 언론의 자유일까요?
출처 - JTBC
JTBC는 김영란법이 국민 경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즉 박근혜 정부가 직접 발주한 용역 보고서의 내용이었죠. 이 보고서는 김영란법 시행령의 근거가 된 것이기도 하죠. 용역 보고서는 대통령이나 언론인 등 반대하는 부류의 불만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피해 업종으로 알려진 화훼산업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충격이 없을 것이라고 결론이 났습니다. 선물 수요도 줄지 않을 거로 나타났죠.
공무원 행동강령을 위반한, 즉 김영란법에 걸릴 만한 행위를 했던 공무원 수 등을 대입해 시장 수요를 조사해봤더니 많아야 0.86퍼센트 정도가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가장 비관적인 예측조차 1퍼센트도 안 됩니다. 오히려 김영란법 시행의 긍정적 효과로 기업 접대비가 감소하여 노동자의 임금 상승으로 연결되면 진정한 의미의 경제 활성화가 일어날 수 있고 부패 척결을 통한 지하 경제 양성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이건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내용이 아니었던가요?
결국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한들 국민 경제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불안한 이들은 걸릴 구석이 많은 높으신 분들과 그 주변에서 꿀을 빨던 사람들뿐입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크니 사회가 시끄러울 뿐입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지적한 내용처럼 뇌물 아니고는 국가 경제를 활성화할 수 없다고 전 세계에 고백하는 창피한 이야기를 대통령이 해서야 되겠습니까?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지나친 고액 선물을 금지하고 있는 조항 때문에 우리나라 국가 경제가 위축된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뇌물 공화국에 다름없으니, 김영란법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될 뿐입니다.
출처 - 뉴시스
국제투명성기구(TI)가 175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2014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아시아 1위 청렴 국가는 싱가포르였습니다. 1960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퇴출당하며 국가적 위기가 찾아왔을 때 싱가포르에는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렸죠. 망해가는 싱가포르를 살리기 위해 리콴유 전 총리는 부정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걸고 해외 투자 유치에 앞장섰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난 리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정치인으로서 눈을 뜹니다. 종전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인민행동당을 창당하고 1959년 자치의회 의석 43석 중 41석을 석권하며 싱가포르 자치정부를 이끌었죠. 이후 1991년까지 30년 넘게 총리직을 수행했고 2011년까지 다른 직책을 맡으며 실질적으로 싱가포르를 통치했습니다. 그러니 사실상 반세기 동안 싱가포르의 역사를 쓰고 통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죠.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한 리콴유가 앞장선 결과 부패방지법이 마련되었고, 이를 통해 부패행위조사국이 설립되었죠. 1963년에는 뇌물을 받지 않았더라도 의도가 있었거나 이에 따르는 처신을 했다 해도 범죄가 성립되도록 법을 강화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해외에서 뇌물을 받거나 비슷한 부정을 저질러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1981년에는 법이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뇌물 수수자에 대해 형벌과 별도로 뇌물 전액을 반환하도록 한 것이죠. 반환할 능력이 없을 때는 액수에 따라 징역형을 부과하도록 했습니다.
출처 - KBS 명견만리
이러한 싱가포르 정부의 반부패 노력에 의해 시민의식이 차츰 성장했습니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가벼운 경범죄에 대해서조차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지요. 예를 들어 금연 장소에서 흡연할 경우 1000싱가포르달러(한화 약 80만 원)를 벌금으로 내야 합니다. 이 때문에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뱉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강력한 처벌을 근간으로 하는 법 때문에 시민들은 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리콴유의 한결같은 의지와 실행력이 오늘날 부강한 싱가포르의 초석이 된 측면도 있으나 정치·사회적으로 남긴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예전에 쓴 기사(리콴유 서거, 싱가포르의 정치적 향방)를 참고해주세요.
현재 한국은 OECD 34개국 중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가 27위로 최하위권에 해당합니다. 김영란법을 재논의한다면 이 법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할 겁니다. 전관예우 관행으로 일파만파 퍼지는 법조계 게이트, 돈 좀 있다는 사람 중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역외 탈세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 부정부패청탁금지법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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