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뜻깊게 보내셨는지요? 5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우리 이웃 중 유독 슬픈 시간을 보낸 분들도 계십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해 사과 아닌 사과를 받은 옥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및 유가족들 얘깁니다. 오늘은 '안방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라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지난 5년 동안 어째서 문전박대를 당해야 했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안방에서 일어난 화학 테러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접수한 결과에 의하면 현재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최대 239명, 심각한 폐질환이 최대 1528명에 이릅니다. 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라고 할 수 있죠. 인명 피해 규모뿐 아니라 사망자의 대부분이 산모와 영유아였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이를 안방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비견되고 있습니다.
2011년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환자가 급증하고, 특히 임산부와 영유아의 폐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역학 조사 결과 가습기를 세척할 때 쓰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를 손상시키는 원인임을 알게 되었죠. 이때 가습기 살균제 6종은 회수되었습니다.
출처 - 환경보건시민센터
그런데 문제는 1997년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가 2011년까지 연간 60만 개 정도 판매되었다는 겁니다. 회수 조치를 했으나 이미 사태가 심각했고, 판매량으로 추측할 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있어도 사실상 원인 불명으로 돌아가신 분이 많았을 겁니다.
가습기 살균제에는 PHMG, PGH, MCIT 성분이 있는데, 피부에 묻을 경우 독성이 다른 살균제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해 샴푸, 물티슈 등 여러 제품에 이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분을 호흡기로 흡입할 경우 독성이 오히려 치명적이었습니다. 더구나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식품위생법이나 약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일반적인 안전 기준만 적용되었기에 피해 예방도 늦어졌습니다.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인 PHMG 계열엔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롯데마트의 와이즐렉, 홈플러스의 홈플러스가 있고, PGH 계열에는 버터플라이이펙트의 세퓨, MCIT 계열에는 애경의 애경가습기메이트, 이마트의 이플러스 등이 있습니다. 옥시 제품의 사망자와 피해자가 가장 많긴 해도 롯데, 홈플러스, 이마트, 애경 등 이름만 들으면 아는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판박이, 피해자들 두 번 울려
명백한 화학 테러이자 대량 학살이라고 불릴 만한 참사가 일어났지만 책임의 주체 중 단 하나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는 지난 5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고 보상계획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뒤늦은 대응이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오기 시작한 2011년 이후 무려 5년이 흘렀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옥시 측의 사과와 보상안발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극도로 나빠진 여론을 의식해 마지못해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 이전에 옥시 측은 언론 취재엔 무응답, 피해자에겐 사과 같지 않은 사과로 일관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산모와 아기들이 죽든 말든 관심도 없더니 정작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왔는데도 발뺌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자 옥시레킷벤키저의 영국 본사는 한국 지사와는 경영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옥시는 논란이 한창이던 2011년 12월 기존 법인을 고의로 해산하고 유한회사로 새롭게 설립하기까지 했으니까요. 법인이 변경되면 이미 사라진 법인의 죄를 새 법인이 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속셈이었겠죠.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이들은 자사 게시판에 부작용을 호소한 소비자들의 글을 일괄 삭제했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홈페이지에 15년 전부터 가습기 살균제 부작용을 호소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왔으므로 옥시 측이 가습기 살균제의 부작용을 모르고 있었을 리 없습니다. 부작용을 호소한 소비자의 글을 삭제한 것이 바로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를 알고서도 옥시가 계속 제품을 판매했으니 살인죄를 적용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혹시 측은 발뺌할 뿐 아니라 증거 인멸까지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성을 검증하고 고발했어야 할 연구팀조차 돈을 받고 연구 결과를 조작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죠. 서울대 연구팀의 조명행 교수는 옥시레킷벤키저 측의 연구 용역을 받아 수행한 연구 결과를 조작했습니다. 개인 계좌로 수천만 원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큰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해준 것이죠. 이 연구 결과는 기존의 재판 과정에서 옥시 측을 변호하는 결정적 증거로 쓰였습니다. 검찰은 증거 인멸 및 뇌물 수수 혐의로 서울대 조명행 교수를 긴급 체포했습니다.
출처 - JTBC
환경부는 이번 달 들어서야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피해 재발 방지를 위한 살생물제 전수조사 관리 체계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사태를 감독하고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 당국의 직무유기에 대한 질타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돈에 미쳐 있다면 이를 제재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피해자들의 호소에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기업과 개인 간의 문제로 국한해 피해 규모를 축소해왔습니다. 애경 제품은 옥시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는 애경 제품을 검찰 기소에서 제외하기까지 했죠.
5년 동안 가습기 특별법 막은 새누리당과 전경련
가습기 살균제 검찰 조사가 속도를 내자 뻔뻔하게도 새누리당은 여기에 숟가락을 얹었습니다. 사건을 철저히 규명하여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인데요, 철면피가 따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2013년 새누리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특별법 제정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박근혜 정부는 피해자 실태조사만 하고 사법부의 판단에 맡긴다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당시 친박 실세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 사안이 아니라며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만 특별 보호해주고 교통사고 당한 피해자는 안 해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죠.
출처 - 세계일보
요즘 어버이연합을 지원한 사실이 들통난 전경련도 새누리당과 똑같았습니다. 2013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안 제정에 대해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안 된다고 극구 반대했으니까요.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원인기도 한 유독물질을 생산한 기업인 SK케미칼 같은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기업들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참사의 1차적 원인이 기업의 과실과 불법행위에 있었음에도 사과나 대안 마련은커녕 특별법 제정을 방해한 새누리당과 전경련은 후안무치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태세를 바꾼 건 어버이연합―전경련―국정원 연계설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우리나라도 징벌적 배상제 마련해야
최근 미국에서 존슨앤드존슨이라는 기업이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땀띠용 파우더가 난소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판결이 잇따라 나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난소암 피해자에게 처음으로 800억 원의 배상 판결이 나왔고, 우리나라에서 옥시가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했던 지난 2일에는 다른 난소암 피해자에게 60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또 나왔습니다. 기업의 책임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차이가 큽니다. 우리나라에선 대기업들이 가습기 피해자 전원을 대상으로 마련한 기금이 고작 50억 원이 될까 말까 하는 상황이니까요.
출처 - JTBC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금을 부과해 유사한 부당행위를 방지하는 제도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처럼 소비자의 줄이은 신고를 듣고 기업이 피해를 예상했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경우도 이에 포함됩니다.
1992년 미국에서는 커피 컵 뚜껑을 열다 커피를 쏟아 화상을 입은 여성에 대해 맥도날드가 일반 배상금 16만 달러, 손해배상금 48만 달러를 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맥도날드 측이 그간 커피가 너무 뜨겁다는 소비자 불만이 계속 제기되었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이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반대로 제정되지 못했습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는 허울 때문에 국민이 죽어 나가더라도 규제를 오히려 더 풀겠다는 심산입니다.
출처 - 피키캐스트
수많은 피해자가 난 끔찍한 사태를 두고도 기업과 정부는 제대로 된 사과도,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변명만 무성할 뿐인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은 망하는 게 마땅합니다. 이제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이전에 일어난 기업의 잘못을 더 철저히 규명해 처벌해야 합니다. 아울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응당한 보상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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