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보도

쓰레기 배출할 때 주소 쓰라니?

by 생각비행 2016. 4. 28.

살림을 하는 분이라면 지정일에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고 일반 쓰레기는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리고 계실 겁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면 일반 비닐봉투 대신 종량제봉투를 주기도 합니다. 1995년 전국적으로 시행된 쓰레기종량제는 분리수거를 촉진하고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배출하는 쓰레기양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쓰레기종량제는 상당히 잘 정착된 편에 속합니다. OECD 국가 통계에서 매번 꼴찌 하기 바쁜 우리나라이지만 폐기물 재활용률에선 북유럽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쓰레기봉투가 SNS와 인터넷에서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논의 없는 통보식 쓰레기 실명제, 사생활 노출 위험만 커져


논란의 핵심이 된 건 수원시 영통구에서 시행하려던 '쓰레기 실명제'였습니다. 말 그대로 누가 버린 쓰레기인지 알 수 있도록 정보를 기재하라는 겁니다. 내달 2일부터 수원시 영통구청에서 시범 시행할 예정이었죠. 영통구에 있는 가정이나 업소는 배출하는 종량제 봉투에 전용 스티커를 붙여서 배출해야 합니다. 일반 개인은 주소를 적어야 하고, 아파트 거주민은 아파트명과 동, 호수를 적어야 합니다. 사업자인 경우 업소명과 주소를 기재해야 하고요. 

 

쓰레기를 배출하는 데 개인 정보를 기재해야 한다니 황당한 일로 느껴집니다. 이런 정책을 제안한 누군가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내걸면 음식물 쓰레기를 섞어서 버리는 일도 줄고 쓰레기도 감소할 것으로 기대했겠죠. 

 

사실 지난해에 쓰레기 실명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강원도 평창군의 사례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주민들이 먼저 군청에 건의해 시작된 사업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2013년 광진구 구의2동에서 시범 추진한 쓰레기 실명제는 이번 영통구청 사례처럼 사생활 침해라는 항의가 끊이지 않아 중단한 바 있었습니다. 

출처 - 다음



이번 시범 사업에 대해 해당 주민들과 네티즌을 중심으로 사생활 노출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다음 아고라에 개설된 쓰레기봉투 실명제 반대 서명 운동에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미 서명했습니다.

출처 - SBS


사람들이 우려하는 가장 큰 문제는 개인 정보 유출과 그로 인한 2차 범죄 위험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고전적인 정보 수집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쓰레기통 뒤지기(Dumpster diving)죠. 어떤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분석하면 그 사람의 생활양식을 추측할 수 있고, 이를 감시나 범죄에 이용하는 거죠.

 

국정원이 문서쇄절기로 갈아버린 쓰레기를 모아 국정원이 정치공작과 보수단체와 커넥션이 있었다는 증거를 복원해낸 좋은 사례가 있긴 하지만, 사실 쓰레기를 뒤지는 일은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택배 상자에 찍힌 주소를 무심코 떼어서 쓰레기 봉투에 넣을 경우, 이것만으로도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는 물론 경우에 따라 그 사람이 자주 쓰는 ID 같은 인터넷상의 정보도 특정할 수 있게 됩니다. 

 

잘라서 폐기한 신용카드가 쓰레기봉투 안에 들어 있다면, 이런 정보를 조합해 금융범죄나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에 악용하는 일도 가능합니다. 여자 혼자 사는 원룸이나 노인이 홀로 사는 방의 경우 쓰레기에 담긴 정보를 이용해 스토킹하거나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노출될 위험도 뒤따릅니다. 쓰레기 실명제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일부러 주소를 헷갈리게 적거나 밉상인 이웃을 골탕 먹이려고 이상한 일을 저지를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처벌은 또 어떻게 하고요?



소통 없는 탁상행정이 문제, 주민 의견부터 수렴해야


영혼 없는 외계어를 구사하는 불통의 아이콘,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혜 정권이 공무원 사회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무엇 하나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남 탓만 하고 앉아 있으니까요.

출처 - 경향신문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를 개최했죠. 그곳에서 세월호와 관련해 특조위 활동으로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세월호 유족을 헤아리는 마음을 엿볼 수 없었습니다. 국민 304명이 희생된 대참사 앞에서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지도자 밑에서 공무원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뭔가 하려 했다가 윗선에 찍히기 십상이지요. 상명하복, 복지부동으로 대표되는 공무원 사회의 적폐도 문제지만, 이번 쓰레기 실명제 논란의 경우 영통구청이 자초한 바가 큽니다.

 

출처 - 경기일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쓰레기 실명제가 실패한 사례가 종종 있었음에도 영통구가 이를 밀어붙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수원시 4개구 중 쓰레기 감축 실적이 가장 부진했기 때문이죠. 이를 만회하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구민의 의견을 묻는 과정 없이 탁상행정으로 결정하고 현장에 적용하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 겁니다. 예전에 버스비 70원 운운했던 정몽준 의원 같은 분한테서 서민을 위한 정책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쓰레기 실명제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정편의주의에 젖어 인권침해나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를 고려하지 못했으니까요. 주민의 의견을 묻지 않는 불통은 사소한 실수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공무원의 안일한 인식이 자칫 큰 범죄와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일이라도 방법과 과정이 잘못되면 현실화할 수 없는 이유죠. 세월호 2주기를 보내며 국민의 눈높이에서 머리를 맞대고 소통하며 만드는 정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는군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