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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국회선진화법 vs.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꼼수

by 생각비행 2016. 1. 30.

국회선진화법이 여야가 아닌 청와대와 여당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경제살리기 법안 통과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국회를 압박한 것도, 서명운동이란 우스운 방법까지 동원한 이유도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가로막혔기 때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얼마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8대 국회 말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과정을 두고 많은 의원들이 반대했지만 당시 권력자가 찬성으로 돌아서자 반대하던 의원들도 찬성으로 돌아서 버렸다고 언급해 청와대가 부글부글하고 있습니다. '권력자'로 지목된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대체 이딴 법 누가 만든 거야?" 하고 소리 지르며 박근혜 대통령을 뚫어지게 바라본 셈입니다. 국회선진화법 논란이 청와대와 여당 대표의 충돌 국면으로 들어간 형국이죠.


출처 - JTBC


식물국회 싫다고 동물국회로 회귀할 건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0일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국회 기능을 원천 마비시키고 정치 후퇴를 불러온 희대의 망국법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여당은 현재 소수인 야당에 발목 잡혀 아무 법안도 처리할 수 없게 된 속칭 식물국회의 원흉을 국회선진화법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2012년에 도입한 법임에도 말이죠.

출처 – the300


국회선진화법이란 2012년 5월 2일자로 개정된 국회법의 별칭입니다. 국회선진화법은 기존 국회법에 의장의 직권상정 요건 강화, 폭력국회 방지 및 처벌, 안건 조정제도, 예산안 처리 강화,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 도입 등을 정하는 법 조항을 추가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날치기 법안 통과와 의회 내 폭력사태 방지를 위한 개정이라고 할 수 있죠. 국회선진화법은 예의 있는 국회 진행과 소수당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법에 가깝습니다. 식물 국회가 싫다고 또다시 날치기 통과가 횡행하고 이 때문에 폭력 사태가 발생하는 정글의 왕국 같은 동물국회로 다시 돌아갈 순 없지 않겠습니까?

출처 - 노컷뉴스


현재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예전 같으면 날치기로 단독 통과시킬 수 있는 노동개혁이나 경제활성화 법안 등을 일일이 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하니 답답함을 느끼는 겁니다. 게다가 같은 당 출신인 정의화 국회의장마저 의장 직권 상정에 완강히 반대하며 법대로 하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으니 샛길 또한 막힌 셈이죠. 현재 국회선진화법은 의장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국회법 87조로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하려는 새누리당


하지만 국민에겐 무능하지만 자신들에겐 유능한 새누리당은 우회로를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지난 18일 새누리당은 본회의의 전 단계인 국회운영위원회를 열어 국회법 개정안을 상정한 후 바로 폐기했습니다. 이상하죠? 그렇게나 뜯어고치려던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개정안을 상정했다 왜 자기들 손으로 폐기한 걸까요? 이는 국회법 87조의 맹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출처 - the300


국회법 87조는 "위원회에서 본회의에 부의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된 의안은 본회의에 부의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위원회의 결정이 본회의에 보고된 날로부터 폐회 또는 휴회중의 기간을 제외한 7일 이내에 의원 30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그 의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은 조건을 충족하는 의원 30명을 미리 모아놓고 자기들 손으로 개정안을 상정했다 폐기합니다. 이후 폐기된 개정안을 30명이 본회의에 부의를 요구하는 겁니다. 이런 꼼수를 쓰면 야당의 반대를 뚫고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수 있게 됩니다. 상정만 된다면 국회 과반을 새누리당이 차지하고 있으니 표결을 통해 법안 통과가 가능하겠죠. 국회선진화법이 있는 현재로써는 날치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죠. 법의 맹점을 이용해 법을 바꿀 개정안을 상정한다니 참 자기들 이익에는 도가 튼 사람들입니다.


야당은 3선 개헌하듯 날치기했다며 법 통과를 위해 법을 부결시킨 극단적 꼼수이자 의회 파괴 행위라고 맹비난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김무성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에서 정의화 의장을 향해 국회선진화법을 직권상정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은 때였으니까요. 이 모든 꼼수를 부리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이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 중재안 제안, 새누리당 개정안은 반대


우선 정의화 국회의장은 21일 국회에서 "현재 선진화법 위헌 소지의 가장 큰 부분은 의회민주주의 부분 과반수의 룰을 어긴 것이지 직권상정 엄격히 제한한 것을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며 사실상 새누리당의 개정안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새누리당의 꼼수에 의해 본회의에 법안이 부의되더라도 국회의장이 상정하지 않으면 처리할 수 없으니까요. 이에 정의화 국회의장은 중재안을 제시합니다. 위원회 단계에서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정수의 60퍼센트 찬성으로 신속처리가 가능하게 한 룰이 선진화법 문제의 핵심이므로 이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현재 330일인 안건신속처리제도의 심의 시한을 최대 75일로 단축하는 추가 중재안을 내놨죠. 2012년 국회법 개정 당시 국회선진화법을 반대한 사람이 지금은 이 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같은 모양새가 되다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출처 - the300


일단 새누리당은 정의화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해 절충안을 찾아보겠다고 한 모양새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설득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야당은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국회가 국회답게 제대로 작동하고, 정치인이 정치인답게 행동하려면, 국회선진화법은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다만 현실적으로 총선 전 선거구 획정을 위해서도 여야 간 신속한 사태 해결이 필요하긴 한 상황입니다. 과연 국회선진화법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요? 법 하나에 수많은 현실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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