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의 막이 올랐습니다. 몇 년 새 직구족 사이에서 대목으로 알려졌던 블랙프라이데이는 원래 미국의 행사입니다.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 날 미국에서 연중 가장 큰 규모의 할인행사가 열리는 날이죠. 최대 90퍼센트에 이르는 파격가 때문에 손님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다치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물건을 쓸어 담으며 쇼핑을 하는 탓에 화제가 되곤 합니다. 소매업체의 경우 1년 매출의 70퍼센트가 블랙프라이데이에 일어날 정도라고 합니다. 연중 처음 흑자를 기록하는 날이란 의미에서 블랙프라이데이라고 한다죠.
출처 - 연합뉴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는 바로 이 행사를 따라 한 것입니다. 작년까지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직구를 하던 한국 소비자들의 눈을 국내로 돌리려는 방편입니다. 같은 국산 제품인데도 국내 소비자를 호구로 만드는 불합리한 가격 책정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해외에서 구매해야 했던 터라 잘만 된다면 내수도 일으키고 소비자도 합리적인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과연 잘될지 의문입니다.
유통업체만 생색내는 반쪽짜리 블랙프라이데이
명목상 국내 대다수 유통업체가 최대 80퍼센트까지 주요 상품을 할인 판매하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가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열립니다. 이 할인행사에는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 인터넷 쇼핑몰, 편의점 등 유통업체 2만 7000곳이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출처 - 머니위크
내수 진작과 소비 활성화를 위한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할인행사라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롯데, 신세계, 현대, 갤러리아, AK,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CU, GS25, 미니스톱, 세븐일레븐, 11번가, G마켓, 이케아, VIPS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통업체가 총출동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행사 내용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할인행사라는 광고가 무색하게 시작 전날부터 SNS의 소비자들은 허탈한 비웃음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작 90원 깎아준 어느 마트의 블랙프라이데이 상품 사진 때문입니다.
출처 – 더 팩트
사실 이는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우리나라 백화점을 비롯한 주요 마트들은 정가를 확 올렸다 세일이라며 정상가로 깎는 편법을 항시 써먹었으니까요. 어떤 경우는 할인 코너나 묶음 상품이 더 비싼, 웃기지도 않은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했죠.
출처 - YTN
더군다나 한국 블랙프라이데이에는 유통업체만 참여할 뿐 제조업체가 참여하지 않아 처음부터 반쪽짜리 행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제조업체가 직접 참여해 최신 TV나 스마트폰을 50퍼센트 넘는 할인 가격에 살 수 있는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와 달리 한국 행사에는 유통업체들만 달라붙어 할인 제품군이 한정되어 있고 가격 할인에 한계가 있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란 요란한 이름을 앞세운 백화점 세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얘깁니다.
박근혜 정부의 주먹구구식 행사 계획
박근혜 정부는 내수 진작과 소비 활성화를 꾀한다는 명분으로 행사를 열흘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게다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 참여하지도 않는 업체를 목록에 포함하기도 해 소비자와 업계 관계자의 혼란을 부채질했습니다. 사전 준비 없이 무작정 시도했음을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출처 - SBSCNBC
박근혜 정부의 주먹구구식 행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기업과 생업 일선을 혼란케 했던 광복 70주년 기념 대체휴일 논란이 불과 얼마 전의 일입니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1년 전부터 준비하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기획 행사를 박근혜 정부는 아무런 준비도 협업도 없이 닥치고 하라고 통보하는 식입니다. 그러니 준비가 제대로 될 리가 있겠습니까?
유통업체의 일반적인 할인행사조차 입점 업체와 협의하고 상품을 확보하기까지 최소 3개월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유통업체들에 행사 진행을 지시했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까라면 까'라는 식의 행정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무리한 행정은 업체를 대상으로 실무를 맡아야 하는 지방 공무원들에게 그대로 전가되어 손을 놓아버리는 사태까지 이르렀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행사를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뉴스1》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대전시는 행사를 하루 앞둔 30일까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취지는 물론 참가하는 지역 유통업체의 참여 현황, 할인 동향 등을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행사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고 답할 정도였으니 심각한 상황입니다. 지역 시민들은 정보를 얻지 못해 답답해하기는커녕 어차피 이름만 바꾼 세일이겠거니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박근혜 정부가 급조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애초 취지인 내수 진작과 소비 활성화는커녕 소비자의 기대조차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TV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라는 해외 관광객, 특히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행사에서 급조된 것입니다. 코리아 그랜드 세일은 면세점, 백화점, 마트 등에서 외국인들이 상품을 구매하면서 여권을 제시하는 경우에만 할인 혜택을 줬습니다. 그런데 해당 용도가 아닌 행사를 빛 좋은 개살구처럼 급조했으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될 리 만무합니다. 오늘 《한겨레》 신문은 <'사상 최대 할인행사' 이름값 할까>(종이신문 제목)라는 기사에서 한 대형마트 직원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행사를 주관하는 산업통상자원부조차 "추석 연휴가 막 끝난 뒤라서 시점상 소비 진작에 불리한 여건인 건 맞다. 행사가 끝난 뒤에 내수시장 매출 신장 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한 뒤 내년 이후 블랙프리이데이를 정례화할지 검토해볼 예정"이라고 했다지요.
출처 - 경향신문
지난번 급조된 대체 휴일부터 이번에 급조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보노라면 과연 박근혜 정부가 서민 생활과 경제를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국정을 계획하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이 낫겠다는 서민층의 비판을 달게 들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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