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채무 상환에 실패한 그리스
국제통화기금(IMF)이 정한 기한인 6월 30일까지 15억 5000만 유로(약 1조 9000억 원) 채무 상환에 실패함으로써 그리스가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서양 문명이 일찍이 꽃피운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한 그리스. 천혜의 자연과 문화 자원을 자랑하던 그리스가 IMF 71년 역사상 선진국 가운데 처음으로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IMF 채무 상환을 하지 않은 나라는 짐바브웨, 수단과 같은 개발도상국들이었습니다.
현시점에 IMF는 그리스의 채무 상환 실패를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아닌 '체납'으로 규정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는 기술적인 용어 선정의 문제일 뿐 사람들은 사실상 이를 디폴트로 받아들이고 있어 그리스 사태가 유로존과 전 세계 경제에 미칠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상황입니다.
출처 - SBS
지난 5년의 IMF 기간에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은 25퍼센트나 하락했습니다. 2010년 당시 3100억 유로였던 그리스의 부채는 2015년 현재 3170억 유로로 늘었습니다. 또한 50퍼센트에 달하는 청년실업률이 방증하듯 그리스 경제의 위험도는 해마다 심화되어 왔습니다. 이번에 부채를 상환하지 못한 그리스로서는 IMF의 추가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다른 경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마저 극히 낮아 보입니다.
현재 그리스에서는 영업을 중단한 은행 ATM 앞에서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장 병원비를 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부터 생필품과 연료를 사재기하려는 사람들마저 속출하는 실정입니다. 각 주유소의 휘발유도 다 떨어져 고객 한 명당 20유로(약 2만 5000원)어치 이상 휘발유를 살 수 없게끔 제한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조차 국회 안 ATM에서 하루 인출 상한 금액(60유로)으로 정해진 돈을 찾으려고 줄을 서는 광경을 연출한다고 하니 정말 심각한 상황이긴 한 모양입니다.
출처 - 월스트리트저널
지난 5년간 혹독한 긴축 경제 정책에 시달려온 그리스 국민으로서는 이번 사태가 분노를 넘어 자포자기의 심정을 느끼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까닭에 향후 그리스 경제와 사회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은 CCC-까지 떨어졌고 그리스 4대 주요 은행의 신용등급은 CCC에서 RD(제한적 채무불이행) 상태로까지 떨어졌습니다. 현재 그리스 경제는 유럽중앙은행(ECB)의 긴급유동성지원(ELA)이라는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지경입니다. 그리스의 총부채는 2015년 7월 현재 3170억 유로(약 394조 원)으로 GDP의 2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그리스 경제, 왜 이 지경이 됐나?
풍부한 문화유산과 선박왕이 즐비한 나라로 유명하던 그리스가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 이른 까닭은 무엇일까요? 국민이 게을러서거나 항간에 떠도는 무분별한 복지 지출 같은 이유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리스인은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한 해 평균 근로시간이 2000시간을 넘을 정도로 열심히 일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에 이어 3위에 해당하며, 독일과 비교한다면 50퍼센트 가까이 일을 더 많이 한다는 얘깁니다. 복지 지출 역시 원인이 아닙니다. 2007년 위기가 찾아오기 직전 그리스의 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은 21퍼센트로, 28퍼센트에 달한 독일이나 스웨덴보다 낮았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탈세와 부패였습니다. 국민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해운업으로 부를 일군 부자들이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탈세를 일삼으니 나라 곳간이 멀쩡할 리 없겠죠. 이와 관련된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2008년 그리스 부자들이 집에 딸린 수영장에 붙는 세금인 500유로(약 60만 원)를 내지 않으려고 국가에 신고를 누락했습니다. 자기 집에 수영장이 있다고 제대로 신고한 부자는 324명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보다 부자가 많은 게 명확하기에 당시 한 세무 공무원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구글의 위성 지도 프로그램인 구글 어스를 이용하여 부자들이 사는 지역에 보이는 파란색 사각형, 즉 수영장 개수를 헤아린 것이죠. 그랬더니 무려 1만 6974개의 수영장이 발견됐습니다. 이는 부자의 98퍼센트가 수영장 세를 포탈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럼 그 이후 부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냈을까요? 아닙니다. 부자들은 수영장 바닥을 땅이나 잔디와 같은 색으로 칠하거나 수영장에 덮개를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면 국가가 세금 포탈을 막기 위해 강제 집행이라도 해야 할 텐데 뇌물로 인한 부패가 만연한 탓에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언론의 호들갑도 마찬가지였고요.
출처 - 동아일보
정부의 부패와 부자들의 탈세로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자 그리스 정부는 가장 손쉬운 해결책을 모색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의 지갑을 터는 거였죠.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세금이 부과되어 고용주가 노동자보다 세금을 적게 내는 사례가 속출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연말정산 대혼란 상황을 연상하게 합니다.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정책에 대항해 그리스의 성난 노동자들은 납세 거부 운동을 펼치는 식으로 대응했으나 그리스의 거부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스위스 등의 조세 회피처로 옮겨놓은 지 이미 오래였습니다.
5년 전 IMF로부터 수천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고도 왜 그리스의 경제는 회복되지 못했을까요? 전문가들은 구제금융이 그리스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빚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합니다. 앞서 《한겨레》에서 인용한 도표에 잘 나와 있듯이, 구제금융의 약 92퍼센트가 부채 탕감과 관련하여 국내외 은행들에 지급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그리스는 빌린 돈의 절반 이상을 부채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만 썼습니다. 실질적으로 국내 경제 신장을 위해 사용할 자금의 여력이 별로 없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상황을 내버려둔 결과 그리스는 지금과 같은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의 이번 체납이 단지 그리스 일국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리스의 경제 위기는 유로존 전체 그리고 나아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출처 - SBS
오는 5일 그리스는 국제 채권단의 추가 긴축안을 수용할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시행합니다. 국민의 총의가 국제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무기가 될 것으로 정치권이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경제 전문가와 정부가 판단해야 할 문제를 그리스 국민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찬성이나 1번이 위로 배치되는 투표용지와 달리 반대를 맨 위로 올린 투표용지를 만들기까지 하고 있으니까요. 국민의 뜻을 물어 채권단의 제안을 거부하는 결정이 나온다면 이는 유로존을 탈퇴하겠다는 이른바 그렉시트가 현실이 됨을 의미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먼 같은 이들은 그리스에 차라리 그렉시트를 택하라며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경제주권을 상실한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보다 국민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라는 조언이겠지요. 그러나 현재 그리스 여론은 국제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안은 견딜 수 없다고 보면서도 유로존을 떠날 때 발생할 사회적 혼란을 더 걱정하는 추세입니다.
출처 - 뉴시스
유로존의 선도국인 독일의 입장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한다면 통화로서의 유로의 위상이 위협받게 될 것이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통합을 위해 박차를 가했던 역사에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유로 가입국도 자기 편할 대로 탈퇴를 할 빌미가 생겨 결과적으로 유로 붕괴의 입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이자 유로 성립 당시 다른 회원국의 반대와 위태로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를 유로에 끌어들인 독일로서는 유럽 내에서 정치력을 시험받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은 미국대로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에서 그리스가 유로를 탈퇴해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국의 상황이 정략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에 세계 금융 시장은 그리스의 체납 소식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모든 지수가 폭락했죠.
IMF 구제금융 시기를 극복한 우리는?
1997년에 우리나라도 외환위기를 겪었습니다. 이는 동남아시아를 덮친 외환위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남아 국가들의 채권을 상환하는 와중에 우리의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와 맞물려 개발독재에 따른 금융기관들의 부실, 한국의 위기 상황에 편승해 알짜 기업을 헐값에 인수하려 했던 해외 투기자본의 횡포 때문에 결국 대한민국 경제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그 대신 IMF에서 요구하는 여러 조건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경제는 사실상 미국의 경제 식민지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IMF를 통해 세계 자본가들은 아주 가혹한 긴축처방을 요구했습니다. 이로써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이 개방되었죠. 노동 유연화라는 허울로 근로자의 정리해고가 쉽게 이뤄지고 비정규직이 활성화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경제는 당시 고환율과 글로벌 경기회복에 편승해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MBC
IMF 구제금융 시대를 극복한 이후 한국 경제는 과연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을까요? 이번에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한 그리스의 체납액 15억 5000만 유로(약 1조 9000억 원)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예산 22조 원의 12분의 1에 해당합니다. 이를 보면 거짓말쟁이 대통령을 뽑은 탓에 허비된 혈세가 과연 얼마나 엄청난 금액인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가계부채,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IMF도 부정한 낙수효과를 아직도 부르짖으며 탈세에 앞장서는 대기업 등, 그리스의 현실은 남 얘기가 아닙니다. 그리스가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정부의 부패와 부자들의 탈세였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를 반면교사로 삼아 정치, 경제의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2의 IMF 사태를 겪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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