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헌으로 결정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로써 미국이 좀 더 완벽해졌다며 동성결혼 합법화가 미국의 승리라고 축하했습니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등 주요 건물이 성소수자들을 상징하는 무지갯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사실 미국이 동성결혼을 인정한 첫 국가는 아닙니다. 이번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으로 미국은 세계에서 21번째 동성결혼 가능 국가가 된 것이니까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동성결혼 허용 법안을 통과시킨 네덜란드나 미국의 이웃 국가인 캐나다 등 이미 20개 나라가 동성결혼 가능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미국이란 나라가 정치, 군사, 문화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세계에 끼치는 강력한 영향력 때문이겠지요.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분명히 전 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뉴시스
동성애나 동성결혼은 고대로부터 수많은 문화권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렸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사회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1989년 덴마크는 동성 커플 간 시민 결합을 세계 최초로 법적으로 인정한 나라입니다. 이후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영국,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시행 중인 동성 커플 간 시민 결합은 동성결혼 합법화로 가는 일종의 과도기 형태로, 이성애자 부부와 유사한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2001년 네덜란드가 처음으로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시행한 이후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동성 커플 간 시민 결합을 인정했던 덴마크도 2012년에 동성결혼이 가능함을 법제화했습니다. 동성결혼뿐 아니라 동성 커플 간 시민 결합의 형태를 포함한다면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40여 나라가 동성 커플의 법적인 지위를 인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출처 - 매일경제
연방 국가인 미국은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주별로 다른 입장을 밝혔습니다. 미국 내에서 콜롬비아 특별구를 비롯한 36개 주는 이전부터 동성 커플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남부와 중서부 14개 주는 동성결혼을 금지하고 있었죠. 이렇게 볼 때 이번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이 미국 사회에서 하루아침에 마무리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2년 전 미국 연방대법원은 '결혼'의 의미를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혼인으로 규정했던 1996년 결혼보호법(DOMA)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로써 동성 부부가 이성 부부와 마찬가지로 사회보장 급여와 세금감면, 연방 공무원 배우자의 건강보험 등 연방 제도의 혜택과 권리를 누릴 길이 열리게 되었죠. 이처럼 미국 사회는 20여 년간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 이번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SBS
이번에 동성결혼 재판을 제기한 오하이오 주의 제임스 오버게펠은 합헌 결정이 나온 직후 대법원 앞에 모인 군중을 향해 "오늘 대법원의 판결은 우리의 사랑이 평등하며 법 앞의 평등한 정의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확언한 것"이라고 감격에 차 외쳤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전했으며 세계적인 가수 엘튼 존, 마돈나, 샘 스미스를 비롯하여 이언 맥컬렌,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의 유명 배우들이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을 환영하며 게이 퍼레이드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번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힌 건 아닙니다. 마크 허커비 공화당 대선 후보는 이번 결정을 위헌적인 대법원의 폭정으로 규정했고,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는 동성결혼 금지 권한을 다시 부여하기 위해 헌법 개정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합헌 결정에 반대표를 던진 존 로버츠 대법관은 이번 결정이 미국의 오랜 기반인 기독교라는 종교적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또한 동성결혼을 금지해왔던 미시시피, 앨라배마, 텍사스 등 미국 남부 주들은 연방대법원의 판결에도 종교와 주의 권리 등을 내세우며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앨라배마 주 같은 경우 동성결혼 허가증을 내주지 않기 위해 이성 부부간의 결혼허가증 발급까지 모조리 중단하겠다는 상식 밖의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를 허울로 삼아 마지막까지 노예제도를 옹호했던 지역들답다고나 할까요?
미국 사회에서 반대 목소리와 우려가 있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동성결혼은 결국 모든 주에서 인정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대적 흐름 속에서 동성결혼 찬성론자는 '법'이 아닌 '생활' 속의 편견과 맞서야 할 테지요.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오마이뉴스
지난 주말 샌프란시스코, 뉴욕, 파리, 이스탄불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을 환영하며 게이 프라이드 행사가 열렸습니다. 같은 날 한국에서는 서울 시청 앞에서 2015 퀴어문화축제가 열렸습니다. 보수종교단체와 경찰의 방해로 열리지 못할 뻔 했던 이번 행사는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으로 다행히 열릴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퀴어 축제에 부스를 낸 대사관도 크게 늘었습니다. 미국, 독일, 벨기에, 프랑스, 영국 등 16개국 대사관을 비롯해 구글 등 선진국 대사들과 기업의 관계자들이 직접 참석하여 성소수자의 인권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하지만 퀴어문화축제를 방해하기 위해 맞불집회를 연 일부 보수 종교단체는 그 앞에서 그 부채춤과 북을 치며 난타 공연을 하면서 훼방하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몇 달 전 자신들이 부채춤까지 추면서 쾌유를 빌어주었던 리퍼트 미 대사가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일 때 상당히 속이 쓰렸을 겁니다. 리퍼트 미 대사는 퀴어축제 참석 소감을 묻는 언론에 "행사에 참석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인 인권을 지지하고 표명하는 게 반갑고 영광스러웠다. 저뿐만 아니라 유럽 등 많은 외교관들도 한국서 열리는 중요한 행사에 지지 표명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 트위터
보수 종교단체의 열정적인 훼방 공연이 마치 퀴어문화축제의 일부처럼 외신에 소개되기도 하는 등 동성결혼 반대론자들로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동성애 반대를 부르짖는 시위를 하는 이들이 동성애자로 알려진 차이콥스키의 곡에 맞춰 발레 공연을 하는 등 자기 모순적인 행위를 하고 있으니 외신들로서는 헷갈릴 법도 합니다.
출처 - 엑스포츠뉴스
일주일 후 우리나라에서도 역사적인 판결이 나올지도 모를 소송의 첫 심문이 열립니다. 국내 최초로 동성 커플 공개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낸 혼인신고 소송 때문입니다. 지난 2013년 공개 결혼식을 올린 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를 했으나 구청은 이를 불수리 처분했습니다. 이에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는 서울서부지법에 불복 신청을 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혼인을 하려면 당사자가 이성 간이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우리나라에 동성 간 혼인 신고를 금하는 법률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간 판례에 의하면 동성결혼이 사회 분위기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현재 혼인 중에 있거나 미성년자인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2011. 9. 2.자 2009스117 전원합의체 결정이나 동성 간의 사실혼 유사의 동거관계를 보호대상인 사실혼이라 할 수 없다고 한 인천지법 2004. 7. 23. 선고 2003드합292 판결 등에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령 자체가 명확하게 동성 간 결혼을 불허하고 있다기보다 사회 분위기나 편견이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혼인신고 소송은 과연 어떻게 귀결될까요? 우리나라 법원은 동성결혼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동성애나 동성결혼 등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너무 극명하게 갈리는 탓에 성소수자를 향한 편견과 혐오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는 사례가 빈번했습니다. 한 종교계 사립대학은 외국인 교원 충원을 위한 채용 공고에 동성애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표명하기도 했고, 2014년에는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이 좌초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후 일부 종교인들은 1년 가까이 시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올해 16회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며 22개 기독교 단체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각종 구호를 외치며 축제를 반대하고 방해한 것도 이런 사회적 편견의 발로겠지요.
출처 - 한겨레
5월 17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이 누구이든, 누구를 사랑하든 관계없이 공포와 폭력, 차별에 대한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살 가치가 있다"고 하면서 "평등을 위한 싸움은 하루 만에 승리할 수 없겠지만, 이 싸움은 우리 모두가 자유롭고 동등하게 살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보듬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 행보는 종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좋은 표징이 되었습니다. 권위를 버리고 낮은 곳을 찾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교회 안의 보수 세력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음은 물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많은 어록을 남겼는데요, 그중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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