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보도

인성까지 점수화하는 교육의 실태, 어린이 행복감도 세계 꼴찌

by 생각비행 2015. 5. 27.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잔혹 동시에 대한 논란이 있었죠? 표현의 자유를 두고 충분히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사안이긴 합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초등학생인 아이(시의 저자)를 대상으로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아, 저희는 이런 측면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입장에서 기사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대상에 대한 과도한 폭력은 사회의 인성적 측면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 초등학교에서 자살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증인 서명을 받아오라고 하여 인성교육이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나눠준 서약서의 내용만 놓고 본다면 '청소년 자살 예방 조치'의 한 형태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나눠준 서약서라는 데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어린아이들에게 '생명 사랑 서약서'를 나눠주고 부모님의 서명까지 받아오라는 학교의 대응 방식을 보면, 우리 교육계의 문제가 참으로 심각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이 서약서를 인터넷에 올린 이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표현도 아이들 수준에 맞는 안내장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고 자살율 낮추기라는 실적 내기에 급급한 교육청과 학교는 진심으로 아이들 수준에 맞는 생명교육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반성하길 바란다고 성토했습니다.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아이라면 저런 서약서 따위로 생각을 바꿔 도움을 요청할 리 만무합니다. 따라서 '생명 사랑 서약서'는 우리나라 교육계에 내재한 탁상행정의 전형적인 사례요, 전시 행정의 끝판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성교육진흥법, 네 인성은 몇 등급이니?


하지만 놀라기엔 이릅니다. 이는 예정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말 통과된 인성교육진흥법으로 말미암아 각급 학교는 인성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교육청과 교육부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라면 필요할지도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인성교육은 사실상 '복종을 강요하는 교육'이기에 문제가 심각합니다. 더구나 특정한 인성을 상정하고 주관적으로 채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담임의 주관적 기록으로 인성발달 사항에 실리는 '인성'은 대학 입시에 중요하게 반영되는 학교생활기록부에 영원히 남게 됩니다. 대학입시에서 학과 성적처럼 학생들의 인성이 몇 등급인지 채점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우리나라의 인성교육이 복종교육인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1920년대에 일제가 조선인을 통제하기 위해 시작한 제도이기 때문이지요. 인성교육은 일제가 중학교 입시 방식을 공개 선발에서 학교장 추첨제로 바꾸며 시작되었습니다. 고등교육을 받으려는 조선인이 급격히 늘었지만, 일제는 학교를 늘리는 대신 입시의 문을 좁혔습니다.

 

식민지인 조선인의 교육열을 일차적으로 꺾고, 고등교육을 받아 출셋길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을 일제의 통제에 순종하는 지식인으로 순치하고, 이들에게 식민지 조선인들의 지배를 맡기려는 의도였습니다. 1926년 6.10 만세 운동 이후 이는 더욱 심해져 "입학 전형 과정에서 지원 학생들의 성행 등을 충분히 고려해 지조가 견실한 학생을 입학시켜야 한다"고 전국 중학교 교장들에게 지침을 하달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우리 교육계에서 많이 들리는 얘기 아닙니까? 하지만 이런 발상 자체가 일제에 저항하는 학생을 입학 전형에서 모조리 떨어뜨리려는 인성교육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복종을 강요하는 인성교육은 군사독재 정권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유신교육 심화와 국민총화를 위해 인성교육이 거론되었고, 전두환 정권은 전인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인성교육을 강조했습니다. 이점에서는 문민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민주화가 진전된 이후로도 사회 갈등의 원인을 인성의 타락으로 지목해 인성교육을 통해 말 잘 듣는 사람을 양산하려 했으니까요.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인성교육진흥법 제정안' 역시 그런 흐름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백 명의 승객을 저버리고 서둘러 탈출한 선장과 선원의 직업윤리 의식을 보면 누구나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할 법합니다. 법안 자체는 인성교육을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추진하고 있는 인성교육진흥법의 접근 방법은 긍정적인 면보다 우려스러운 면이 더 많아 보입니다.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생각비행) : http://ideas0419.com/442


저희가 펴낸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의 저자인 김용택 선생님은 《경향신문》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인성교육은 기존 교육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지 별도로 할 이유가 없다"며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과도한 경쟁교육, 입시제도 등의 구조문제를 은폐한다"고 일갈했습니다.



심화하는 학교의 병영화, 한국 어린이 세계 행복 체감도 꼴찌


현재의 인성교육은 복종을 내재화한 학생이 커서 선생이 되고, 그들이 다시 제자들에게 복종을 가르치는 사회적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에 고착되면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실상 초등학교를 군대보다 더 심하게 병영화한 사례도 등장했습니다. 국립인 서울대 사범대 부설 초등학교 얘깁니다. 이 학교 학생들의 교복에는 계급장이 있습니다. 학급 부회장은 1개, 학급 회장은 2개, 전교 부회장은 3개, 전교 회장은 4개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서로가 동등함을 배워야 할 초등학생 시기에 눈에 보이는 계급이 있다는 것부터 학습하는 셈입니다. 학부모 단체 임원 자녀들은 따로 또 우대를 받는다고 하니 정말 만화나 드라마에서도 보기 힘든 계급사회를 구현한 셈입니다.

 

출처 - 한겨레


학생이 계급으로 구분된 마당에 학교의 교사라고 그런 풍토에서 벗어날 수 없겠죠. 교사들은 전입 순서에 따라 기수가 있고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을 때도 엄격하게 정해진 서열과 규율을 따라야 했습니다. 아래 기수 교사들은 식사 시간에 20~30분 먼저 와서 음식과 식탁 준비를 해야 하고, 교장 → 교감 → 선배기수 순서로 착석 후 수저를 들면 그제야 식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후배 교사들은 각종 임원 경조사에 차출되어 억지로 일을 떠맡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말 사병부터 장교에 이르는 군대문화의 폐단이 초등학교에 이식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 학교는 이것을 인성교육이자 전통이라고 부릅니다.

 

출처 - 한겨레


그런데 문제는 이 학교가 학부모 사이에선 '로또'로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등록금을 받지 않는 국립이지만 사립학교 수준의 교육을 하고 교사들이 석사 이상의 고학력자들이다 보니, 그곳의 아이들이 노예처럼 교육을 받더라도 들여보내지 못해 안달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18일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에서 발표한 아동의 행복감 국제 비교연구 결과는 우리 교육계의 참담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루마니아, 콜롬비아, 노르웨이, 이스라엘, 네팔, 알제리, 터키, 스페인,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일 등 12개국 아동 4만 256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서 한국의 어린이들이 가장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어린이의 행복감과 만족도는 가족, 물질, 대인관계, 지역사회, 학교, 시간 사용, 자신에 대한 만족 등 모든 조사 영역에서 전체 평균을 밑돌았습니다. 독일이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둘째치고 내전과 IS로 부침이 심한 에티오피아 어린이들보다도 우리 아이들의 행복감이 낮은 현실입니다. 행복을 누릴 환경을 조성하기는커녕 자살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서약서를 종용하는 우리나라의 현실. 어린이날과 스승의날이 낀 5월을 보내며 부끄러운 교육계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