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 19일(금) 저녁 8시 벙커1에서 '과학으로 사람 되자'라는 주제로 열린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북콘서트에 참여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많은 분이 오셔서 과학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셨습니다. 요즘 폭발적인 흥행세로 역대 외화 흥행 3위에 오른 영화 <인터스텔라>를 빼놓고 과학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죠?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파토 원종우 지음, 생각비행 출간)
원종우 작가도 북콘서트 서두를 <인터스텔라> 흥행과 영화의 과학적 배경에 관한 이야기로 열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있었던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북콘서트 내용에 영화 <인터스텔라> 이야기를 섞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북콘서트 현장
영화 <인터스텔라>가 1000만 관객 동원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로써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인셉션> <메멘토> 등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한국 최대 흥행 영화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가족영화로서 감동적인 면모에 아이맥스로 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웅장한 우주의 스펙터클이 흥행의 주된 성공 요인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인터스텔라>의 폭발적인 흥행세 이면에는 이 영화가 일종의 과학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을 몇몇 언론이 내놓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인터스텔라>를 만들면서 저명한 물리학자인 킵 손에게 자문하면서 영화 역사상 가장 물리학 이론에 부합하는 웜홀과 커블랙홀을 영상화했다고 자부했습니다.
출처 – 인터스텔라 누리집
영화의 이론적 배경을 자문한 물리학자 킵 손 역시 인터스텔라를 만들며 블랙홀과 웜홀에 관한 새 논문을 준비 중이라고 발표할 정도였습니다. 한술 더 떠 <인터스텔라>의 시나리오를 맡은 조너선 놀런(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동생)은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4년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공부했다고 하여 숱한 화제를 남겼습니다.
세계의 석학들과 유수의 대학 커리큘럼 인증을 받았다고 생각해서인지(?) 한국의 학부모님들이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자녀들에게 일종의 과학 교재로 활용하는 분위기가 있는 듯합니다. 얼마 전 《머니투데이》는 [저자를 만났습니다]라는 기획기사에서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원종우 작가가 말하는 '과학대중화'라는 주제로 "900만명 본 인터스텔라 공부하는 과학? 트렌드로 그치지 않게"라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요즈음은 '공부가 되는 고전문학', '공부가 되는 톨스토이' 이런 식으로 입시를 깔고 들어오죠. 지금은 설령 입시를 보고 접근했다고 할지라도 이런 것들이 체화되면 나중에는 이런 문제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어요. 교육열 때문에 또는 수능 때문에 온다고 해도 야단칠 필요가 없다고 봐요. 과학도 마찬가지죠. 제대로 전달만 된다면 그 문제는 스스로 해결 될 테니까요. 제대로 전달이 안 되니까 수능으로 밖에 안 가는 거죠."
원 작가는 과학의 대중화를 심도 깊게 생각할 시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과학은 인문학의 대중화 과정보다 더 앞으로 나아갔으면 해요. 트렌드로 그쳐선 안 되고 좀 더 내실 있고 뿌리 깊게 박힐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교육열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우리나라에서 <인터스텔라> 영화가 흥행하는 상황을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영화가 물리학적 지식을 흥미롭게 펼쳐놓았다 한들 그 기본적인 배경을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따라서 그 배경이 되는 지식을 공부하지 않고서 <인터스텔라>라는 영화 한 편으로 우주의 신비를 파악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과학 토크쇼 <과학같은 소리하네>, 과학책을 자세히 분석해주는 팟캐스트 <과학책이 있는 저녁>을 통해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원종우 작가의 책과 강연을 통해 <인터스텔라>의 배경이 되는 과학 지식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습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안에 담긴 내용과 <인터스텔라> 영화 내용을 엮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출처 – 인터스텔라 다음TV팟
* <인터스텔라>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유의하세요.
조너선 놀런이 캘텍으로 간 이유
앞서 <인터스텔라>의 시나리오를 맡은 조너선 놀런이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4년간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왜 다른 이론이 아닌 상대성이론이었을까요? 그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거슬러 올라오면 알 수 있습니다.
질량이 거의 무한대로 큰 블랙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중력을 알아야 하고, <인터스텔라> 마지막 장면에서 쿠퍼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딸 머피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우주의 모든 힘 중 가장 멀리 가고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중력의 기묘한 힘 때문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배가됩니다. 그리고 이 중력의 신비를 파헤치려면 반드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알아야 합니다. 그 때문에 조너선 놀런이 4년간 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한 것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4년간의 중력 수업이 <인터스텔라>의 클라이맥스부터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의 얼개를 만들어주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군요.
북콘서트에서 원종우 작가가 상대성이론을 주요하게 설명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에서 원종우 작가는 "1915년에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이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중심 개념 중 하나는 중력의 힘과 일상적인 운동에서의 가속도가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하면서 "이를 과학 용어로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이 같다고 하고, 바로 이것이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인 등가원리"라고 합니다. 복잡한 것 같으니 다음 동영상을 보시죠. 난해한 상대성이론이 GPS같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출처 - 다음TV팟
담요 한 장으로 블랙홀 만들기
<인터스텔라>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영화 역사상 가장 물리학 이론에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블랙홀의 묘사일 겁니다. 거의 무한대의 중력으로 모든 것을 끌어들여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는 무시무시한 검은 구멍 말입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블랙홀이란 게 왜 생기는지, 그리고 블랙홀의 중력이 왜 그렇게 큰지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출처 – 인터스텔라 홈페이지
그런 블랙홀을 실생활에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제 그 위에 묵직한 볼링공을 하나 얹어보자. 그러면 당연히 공의 무게만큼 주변이 아래로 푹 꺼지게 된다. 이 상태에서 몇 가지 실험을 해보자. 비슷한 크기의 볼링공을 그 옆에 하나 더 얹는다면 어떻게 될까? 담요 위의 곡면이 크게 바뀌면서 두 볼링공이 대략 비슷한 거리를 움직여 쿵 하고 가운데서 부닥칠 것이다. 이번에는 볼링공 가까이에 훨씬 가벼운 당구공을 얹으면 어떨까? 볼링공은 별로 움직이지 않고 당구공이 또르르 굴러 볼링공에 부닥칠 것이다. 아주 가벼운 탁구공을 올려놓는다면? 볼링공은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탁구공이 볼링공을 향해 굴러떨어진다.
(...) 지구 중력 때문에 무거운 공 주변의 담요가 휘었고, 가벼운 공들은 그 '구부러진 면'을 따라 굴러떨어지는 것인데 마치 볼링공에 끌리는 것처럼 보인다.
(...) 이런 원리는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다. 담요 실험에는 마찰력 때문에 조금 돌다가 중심을 향해 떨어지지만, 우주처럼 방해물이 없는 공간에서는 사실상 무한정 회전하게 된다.
이번엔 엄청나게 큰 납덩어리를 가져와 담요 위에 놓는다고 하자. 우리가 담요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 담요에 아주 깊고 큰 굴곡이 생기면서 볼링공, 당구공 등이 전부 납덩어리 쪽으로 굴러떨어진다.
- 담요의 섬유가 파손되면서 아래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 결국 담요가 찢어져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이제 주변으로 무엇을 굴리든 다 구멍으로 떨어져 내린다.
- 담요의 구멍과 그 안쪽은 이전의 법칙이 더는 통용되지 않는 다른 세상이다.
방금 우리는 2차원의 담요 우주에 블랙홀을 생성했다. 우주와 천체 사이에서 중력은 담요 실험이 보여주는 바와 아주 비슷하게 작용한다. 질량이 있는 물체는 주변 공간을 저 담요처럼 휘게 한다. 담요는 2차원 평면이고 실제 우주는 3차원 공간이기 때문에 똑같지는 않으나 원리적으로는 대략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왜 지구를 비롯한 별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지, 왜 블랙홀의 질량이 무한대에 가까운지, 그리고 왜 블랙홀 주변에서는 모든 것이 왜곡되고 빨려드는지 담요 한 장의 예를 통해 간단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블랙홀 근처의 별에서 시간이 느리게 가는 이유는?
출처 – 인터스텔라 누리집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가장 헷갈리면서도 기묘한 장면은 산만 한 파도가 치는 별, 그리고 주인공인 쿠퍼보다 나이를 빨리 먹는 딸 머피와 연관된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블랙홀 주변에서는 시간적으로도 기묘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블랙홀을 향해 자유낙하를 시도한다고 하면 떨어지는 사람은 시간 간격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블랙홀 표면에 도달하게 됩니다. 살아 있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밖에서 바라보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떨어지는 사람이 블랙홀에 접근하면 할수록 점점 떨어지는 속도가 느려지다가 블랙홀 표면에 이르면 완전히 멈춘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이는 관찰자와 시간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데요, 따라서 <인터스텔라>처럼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아빠와 딸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죠.
(...) 그럼 다른 방법은 없을까? 있다. 바로 웜홀이다. 중력을 설명하면서 잠깐 언급했듯이 입구는 블랙홀과 같은 대신 반대편에 화이트홀이라는 게 있어서 들어간 걸 토해낸다. 그렇게 나오면 다른 시공간에 있게 되는데 만약 이걸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과연 웜홀이 존재하는지 확실하지 않고, 존재한다 한들 블랙홀의 엄청난 중력을 버틸 물체가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웜홀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하려 들 때 필요한 과학이론, 엔지니어링 기술, 에너지 등을 감안한다면 그저 막막할 뿐이다.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에서 설명하는 시간여행 방법이 모두 혼합되어 인터스텔라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빠른 로켓, 동면, 상대성이론, 웜홀과 블랙홀까지 말이죠.
출처 – 인터스텔라 유튜브
커블랙홀에 붙은 웜홀을 발견했다 한들 과거로 가려면 반대쪽 출구, 즉 화이트홀을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쪽 블랙홀 입구에서 멀어지게 했다가 다시 가깝게 오도록 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작업인데, 다른 문제는 이 방법은 화이트홀 쪽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어서 작업이 시작된 지점까지만 과거로 돌아올 수 있고 그 이전으로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듀어런스호가 지구를 떠나 다른 은하계로 갈 때 웜홀을 통했고, 쿠퍼는 마지막에 커블랙홀로 뛰어들어 다른 시공간에서 5차원의 존재들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실제 물리학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출처 – 인터스텔라 다음TV팟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북콘서트를 마무리하면서 원종우 작가는 "결국 희망은 과학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광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란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우리가 과학의 눈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논하고 장엄한 천체의 운행을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인간은 광대한 우주로 눈을 돌렸으나 결국 돌아온 곳은 가족의 곁이었죠. 학창시절 골머리를 썩이던 어려운 물리학 이론을 <인터스텔라>와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로 엮어서 풀어보니 재미있지 않나요?
우리가 사는 동안 우주의 진실을 모두 알지는 못하더라도, 오늘보다는 내일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낀다면 우리는 의미 없이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그 느낌은 단순한 신비감이나 경이감을 넘어 우리의 삶에 깊은 위안을 주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북콘서트에서 다 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와 <인터스텔라>의 배경이 되는 과학 지식이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에 담겨 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저희가 출간한 책이어서가 아니라 "현대과학, 인문학, SF를 통섭하는 재미"라는 부제가 괜히 달린 것이 아님을 아시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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