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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일본, 전쟁 국가로 우향우

by 생각비행 2014. 7. 2.

아베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결정이 뜻하는 바

 

일본의 아베 정권이 결국 평화 대신 전쟁을 택했습니다. 아베 총리가 국무회의를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은 후 패망한 일본은 그동안 법적으로 군대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전쟁과 무력행사를 금지한 헌법 9조, 일명 평화헌법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대외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일본 국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일본 국내 치안유지와 일본 본토가 침략당했을 때를 대비해 최소한의 방위력만 인정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일본이 패전 이후 69년간 지켜온 '전수방위원칙'(공격하지 않고 방어만 하는 안보 원칙)이 무력화되었습니다. 이로써 동북아시아 안보 환경에 큰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출처 - SBS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말장난


종전 이후 일본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평화헌법이라고 부르는 헌법 제9조입니다. 1항은 전쟁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하며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적시하고 있으며, 2항은 군사력, 전력을 가지지 않으며 교전권도 가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항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세계를 포화 속에 몰아넣었던 전범국으로서 일본이 받은 형벌이자 전쟁에 진절머리가 난 일본 국민이 택한 평화의 길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 JTBC


일본의 안보정책의 전환을 생각하는 이들이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서의 일본을 지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발단은 한국전쟁이었습니다. 종전과 더불어 시작된 냉전 국면으로 동아시아가 공산화될 것을 우려한 미국과 옆나라의 전쟁이 옮아올 것을 우려한 일본의 불안감이 맞아 떨어져 최소한의 방위력을 용인하게 됩니다. 이른바 자위대인데요. 이는 분명히 군사력을 갖추는 것인데 논리적으로는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지는 않지만 본토가 침략받을 경우 최소한의 방어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해석을 한 겁니다.

 

치안유지 및 전수방위용이라는 건데요. 말장난으로 인한 불화의 씨앗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지난 60년 동안 일본 정권은 대대로 이 자위권을 아주 좁게 해석해서 별 탈 없이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일본 국내만 지킬 뿐 스스로는 물론 동맹국이나 다른 나라의 전쟁을 돕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2004년에 항공자위대와 육상자위대가 미국의 요청으로 이라크에 파병된 적이 있기 때문에 좁은 해석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후방 지원만을 하고 그 후방을 비전투 지역으로 지정해 법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자위권일 뿐이라는 해석을 유지하기 위해 이전 정권들은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출처 - 뉴스1


그런데 아베 총리의 이번 각의 결정은 지금까지의 소극적 자위권 해석의 틀을 아예 변경해버리는 것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일본 본토가 침략받은 것이 아니더라도 동맹국이나 밀접한 연관국이 공격을 받았을 때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해석입니다.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가 무력 공격을 받아 이로 인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일본 국민의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이 근본적으로 전복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아베 총리의 발표에 의하면 일본인을 수송 중인 미국 함선을 보호하기 위해서나 미국으로 향하는 미사일 요격 등의 요건이 충족되면 언제든 자위대를 출동시킬 수 있음을 명문화한 것입니다. 이번 결정에는 적극적 평화주의를 표방한다는 명목하에 유엔 평화 유지 활동에 참여한 동맹국 보호 등을 위해 정식으로 자위대가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마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분쟁지역에서 자위대가 전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명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출처 - 뉴시스

 

이런 해석은 넓게 보자면 북한의 체제에 변화가 생겨서 남한에 대한 무력 도발이 증가해 재한 일본인의 안전에 위협이 생겼다고 판단할 시 일본은 한반도에 자위대를 출동시켜 무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독도가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분쟁지역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광복 이후 한국 영토에 일본 군대가 다시 들어올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아베 총리의 이번 결정은 단순히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중국 나아가 미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평화 전체를 위협할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로 봐야 합니다.



미국이 용인한 집단적 자위권


아베 총리의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이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익이 이야기하는 소위 정상국가 일본이라는 오랜 바람이 깔려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 의해 패전한 뒤 생긴 평화헌법이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악법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아베 총리와 우익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을 여기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출처 - SBS


미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갈수록 해외 군사 개입에 부정적인 국내 여론을 의식해야 하고 국방 예산의 급격한 감축이라는 현실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자면 최대 동맹인 일본의 협력이 필수 불가결한 상황입니다. 날로 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함으로써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게 관건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은 필요한 방식으로 자신들을 방어할 모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밝힌 것과 오바마 대통령이 4월 방일 당시 집단자위권 추진을 지지한다고 공개 발언한 것 역시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포석입니다. 아베 총리가 중심이 된 일본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일본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현재의 흐름이 단순히 우익의 바람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군사력은 세계 10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막강해졌으며, 군비 지출 규모 면에서 2013년 기준으로 491억 달러로 세계 6위입니다. 일본의 전자기술과 경제력이 결합한 국방 비즈니스로 경제 활성화를 꾀하려는 것도 집단적 자위권을 추진하는 한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해상자위대가 새로 만든 이지스함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 군함의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 침략받은 바 있는 우리로서는 안심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일본의 양심들



출처 - 참세상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일본의 많은 양심이 집단적 자위권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30일부터 일본 수상관저 앞에서 집단적 자위권에 반대하는 시민 수만 명이 운집해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국민투표도, 정식 헌법 개정도 아닌 정치적 법 해석 변경을 통한 이번 집단적 자위권 결정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헌정 파괴라며 규탄하고 있는 것이죠.


 

출처 - 뉴스1


지난 29일에는 도쿄 신주쿠역 남쪽 출구 교량 위에서 중년 일본 남성이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과 아베 정권에 항의하는 주장을 하며 1인 시위를 하다가 분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일본 내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우익이 내놓은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집단적 자위권에 반대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일본의 유력 인사와 헌법학자 다수가 참여한 한 단체는 집단적 자위권에 분명한 반대를 표명하며, 헌법 개정 논의가 아닌 정치적인 각의를 통해 해석 변경이라는 억지를 부리는 아베 정권을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헌법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미 확립된 정부 견해이며 이를 허용하기 위해 헌법개정을 통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며 "정부가 헌법해석 변경을 통해 헌법이 금지해온 집단적 자위권을 가능케 하는 것은 헌법이 통치권력에 씌워놓은 제약을 정부 스스로 벗어 던지는 것이고 입헌주의의 파괴나 마찬가지인 역사적 폭거"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日 헌법학자-장관들도 '집단적 자위권' 비판 (한국일보)


사실 아베 총리가 정식으로 헌법 개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추진하지 못하고 각의를 통한 해석 변경을 하는 꼼수를 쓴 것도 헌법 개정 시도에 수차례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 비쥬얼 다이브


아베 총리에 의해 자행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해석 변경 결정은 정치적인 행보입니다. 하지만 평화헌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번 결정을 국민투표나 국회 의결이 아닌 행정부만의 결정으로 밀어붙인 데 대해 일본 국민과 지식인 사이에서는 반대 여론이 거셉니다. 아베 총리는 실질적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관련법 개정 논의를 위해 앞으로 국민과 야당을 상대해야 하는데 여기서 성패가 가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일본 국민은 집단적 자위권 결정을 뒤집거나 무효로 만들 수 있을까요? 동북아 정세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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