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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by 생각비행 2014. 4. 17.
진도 여객선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안타까운 뉴스가 연이어 보도되고 있습니다. 수학여행 중이던 안산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탑승해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는데요, 추억으로 되새길 수학여행이 끔찍한 경험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의 정확한 정황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만으로도 인재의 요소가 다분합니다. 1993년 일어나 우리나라 최악의 여객선 침몰 사고로 기억되는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와 닮은 점이 꽤 있습니다.

헬기로 인명 구조를 하는 모습 (출처-한겨레)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무리한 출항

서해훼리호는 1993년 10월 군산 인근 위도에서 침몰한 여객선입니다. 이 여객선의 정원은 220명. 침몰 사고 첫날에 40여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생존자는 70여 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종 및 사망자는 많아야 150명 정도여야 했겠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사망자는 정원을 훌쩍 넘는 292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서해훼리호는 정원보다 무려 141명이나 더 태우는 불법을 저지른 채로 출항했던 겁니다. 안전불감증이 낳은 최악의 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서해훼리호 사고 당시 모습 (출처-한겨레)

서해훼리호 참사가 일어난 당일에는 날씨도 좋지 않았습니다. 초속 13미터의 강풍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서해훼리호 는 출항을 강행했습니다. 승객은 정원 초과 상태였고, 위기 상황 발생 시 안내와 안전을 책임져야 할 승무원은 규정의 절반밖에 승선하지 않은 채였습니다. 승객의 안전을 무시한 과도한 욕심이 사상 최악의 해양사고를 낳았던 겁니다.

이번에 일어난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언론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두 사고는 닮은 점이 있습니다. 세월호의 선장은 짙은 안개가 끼었음에도 출항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소 다니지 않는 위험한 항로를 택했다고 합니다.
(침몰 사고 초기에는 세월호가 위험한 항로를 택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세월호가 통상적인 항로를 벗어난 채 운항한 건 아니었습니다.― 4월 23일 현재) 
출처-연합뉴스

현재까지 해경이 밝힌 최초 조난신고는 오전 8시 58분에 휴대전화로 접수된 것으로, 탑승객의 가족이 연락을 받고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사고신고가 쏟아졌지만 정작 사고 선박의 신고장비 등을 통해 접수된 조난신고는 없는 것으로 해경은 밝혔다.


그런데 이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는 세월호의 선체가 기울고 물이 들어오는 와중에도 선장이 승객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교신 내용을 들어도 그렇고, 사고 생존자들의 증언도 그렇습니다. 배가 기울고 물이 차는데도 선내방송으로 승객에게 대피하지 말고 선실 내에서 기다리고 했다니, 도대체 이런 대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더군다나 침몰 신고를 선장이 아닌 배에 타고 있던 단원고 학생이 했고, 승객은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객선의 대피명령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터넷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출처-서울신문)

더 기가 막힌 건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고 대피를 지휘해야 할 선장과 기관사가 다른 승무원들과 더불어 먼저 탈출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말단의 승무원이 홀로 끝까지 남아 승객의 대피를 돕다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점은 대구 지하철 참사의 아픈 기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터지지 않는 구명정, 노후한 배

20여 년 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당시 생존자들의 인터뷰에 의하면 배가 침몰하는데도 자동으로 터져야 할 구명정 대부분이 터지지 않아 사망자가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바다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요동쳤다. 자동으로 터졌어야 할 구명정은 네 개 중 한 개만 작동했다. 운 좋게도 그 하나의 구명정에 올라타 살 수 있었다. 2년 넘게 악몽에 시달렸다. 지옥을 봤기 때문이다."


 

출처 - 중앙일보

이번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승객 대부분이 구명복을 입고 있었지만 구명정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해훼리호 때와 마찬가지로 그나마도 많은 구명정이 배가 침몰하는데도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구명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위험천만한 배들이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사고 파악도 수습도 제대로 못 하는 정부

사고 자체에 대한 의문이 한둘이 아니지만,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정부의 무능력함은 20년 새 더 커졌습니다. 세월호 사고 초기에 구조자가 탑승자의 거의 대부분인 368명이라고 공식 발표하더니 30분만에 착오라며 갑자기 실종자만 200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기막힌 참사를 눈앞에 두고 초기 상황을 오판했고, 구조 대상자의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잠수 인력과 장비 투입에도 소흘했습니다.

출처 – YTN

오전에는 '이 배에 탑승한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이 모두 구출됐다'는 경기도교육청의 발표가 나오는 등 사고가 원만하게 수습될 것이란 긍정적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오후 들어 사고 피해 규모에 대한 판단이 180도 뒤집힌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고 규모에 따라 구조인력과 장비 투입 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고 초기 대응이 악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사고가 심각하지 않다는 전망이 제기된 오전에는 잠수인력이 20명 정도만 투입됐다가 오후 6시30분께는 178명이 투입됐다. 또 잠수 지원 장비를 갖춘 해군 구난함이 도착하지 않아 잠수대원들은 오후 5시께부터 개인 잠수통을 이용해 수심이 얕은 지역을 중심으로 탐색구조 활동을 폈다. 잠수 지원 장비를 갖춘 해군 구난함 청해진함과 평택함은 17일 새벽에 현장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큰 사고는 초기 상황 파악이 가장 중요한데 정부는 배가 침몰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초기 상황을 전파하여 대처에 큰 혼선을 주었습니다. 좀 더 신속히 대처했더라면 더 많은 시간을 초기 구조에 투자할 수 있었을 테고,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안전행정부라는 이름값을 못하는 정부입니다.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언론의 폭력성

출처 - JTBC

정부의 무능력함과 더불어 20년 새 사건·사고에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언론의 행태도 가관입니다. 종편인 JTBC는 겨우 살아나온 여학생에게 친구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잔인하게 캐물어 그 학생이 오열하게 만들었죠. 비난이 빗발치자 JTBC는 공식 사과를 하기에 이릅니다.

공중파라고 다를 것 없습니다. MBC는 득달같이 사망한 학생의 책상을 찍어 올리기 바빴고, 뉴시스는 사망한 학생의 일기장을 허락도 없이 공개해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사망자의 존엄과 생존자 및 유족의 마음을 고려치 않고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단지 특종과 속보 경쟁에 달려드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하이에나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JTBC의 손석희 사장은 후배 기자의 부적절한 인터뷰에 대해 공식 사과라도 했다지만, 다른 언론사는 자신들의 짐승 같은 행동을 괘념치 않는 몰상식한 태도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해양사고의 대부분은 인재라고 합니다. 국제해사기구에 의하면 해양사고의 60퍼센트 이상이 인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발생한다고 합니다. 선박의 결함이나 기상변화와 같은 원인에 의한 사고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고 합니다. 서해훼리호부터 진도 여객선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침몰 사고까지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안전불감증은 달라진 바가 없었습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이도 수습하는 이도 사람인데 이토록 안전에 무감각해서야 되겠습니까?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로 꽤 시간이 지났습니다. 더 많은 분이 구조되었다는 속보를 듣고 싶습니다. 구조 활동에 임하시는 분들도 안전에 유의하시면서 희생자가 생기지 않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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