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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물/어제, 오늘, 내일

[어제, 오늘, 내일 1] 남북한 평화 공존 체제를 구축하자

by 생각비행 2013. 5. 14.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부터 한 달에 세 번, 《르네상스의 어둠》의 저자인 도현신 씨가 기고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꼭지는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기도 하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짚어내기도 하고, 미래를 점치는 전망을 싣기도 합니다.

첫 기사로 개성공단 폐쇄를 바라보며 남북한 평화 공존 체제를 구축하자는 주장을 담은 글을 싣습니다. 개성공단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낸 이후 2000년 8월 22일 남측의 현대아산(주)과 북측의 아태, 민경련 간에 '개성공업지구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여 시작된 남북교류협력 사업입니다. 

(출처: 통일부)

개성공단은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인력이 결합하여 마련된 역사적인 협력의 장이었습니다. 2004년 발표된 당초 계획으로는, 2011년까지 총 2000만 평의 부지 위에 800만 평의 공단과 1200만 평의 배후도시를 계획하고, 70만 명의 북한 근로자가 고용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계획처럼 개발이 진전되지는 않았으나, 개성공단의 근로자 현황을 보면 북측 근로자가 2005년(6000명), 2006년(1만 1000명), 2007년(2만 2000명), 2008년(3만 8000명), 2009년(4만 2000명), 2010년(4만 6000명), 2011년(4만 9000명) 등이었고, 2012년 1월에 드디어 5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남측 근로자는 700명~80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싸늘해진 남북관계로 동북아 평화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김정은 체제하에서 도발적인 대남전략의 극단적 조치가 개성공단 폐쇄였으며, 이에 우리 정부는 인력 철수라는 강경한 대응을 고수했습니다. 개성공단 철수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야기할까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오늘은 이 문제에 관해 살펴봅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생각비행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기까지

요즘은 다소 조용하지만, 불과 4월 말까지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개성공단에 파견된 우리 측 근로자들이 북한에 인질로 잡히면 특전사를 동원해서 인질 구출 작전에 나서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마치 북한이 당장에라도 근로자들을 인질로 잡고 남한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했습니다. 각종 언론들도 덩달아 앞장서서 가설을 마구 발표하여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결국 부랴부랴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귀국했고, 그렇게 해서 2007년부터 운영되었던 개성공단은 현재 잠정 중단, 사실상 폐업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근로자가 철수했다고 밝힌 개성공단. (출처: ytn)

물론 북한 측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죠. 2013년 2월,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으며, 무수단 미사일을 동해에 배치해서 언제든지 어디로든 쏴버리겠다고 위협까지 했습니다. 여기에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합동 군사 훈련을 재개하고, 유엔을 통해 대북 제재를 강화하라고 미국과 중국에 호소했습니다.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을 격추시키기 위해 도쿄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했으며, 군사대국화를 외치는 아베 신조가 70퍼센트라는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교전권 금지를 명시한 일본의 평화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렇게 해 2월부터 5월초까지의 북한 관련 뉴스 보도만 보고 있으면, 당장 북한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위기감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북한의 붕괴설만 믿고 안이했던 정부?

지금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누가 승자가 되든 간에, 그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아야 합니다. 북한의 장사정포와 화학무기에 의해 수도 서울이 제일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고, 최소한 수백만 명의 사람이 죽거나 다칠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에 투자된 외국 자본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당분간은 돌아오지 않겠지요. 세상에 어느 누가 전쟁이 나서 모든 산업 기반이 파괴되고,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위험한 나라에 귀중한 돈을 투자하고 싶겠습니까?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이 난다면 그것은 한국의 모든 사회 전반이 1950년대, 전 세계에서 제일 가난했던 시절로 후퇴함을 우리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태연하다 못해 너무나 안이합니다. 북한이 강경 발언을 하면 그에 맞서 강경 발언을 날리고, 북한이 군사 행동을 하면 그에 맞서 군사 행동을 하고, 북한이 조용하면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고 조용합니다. 이건 꼭 사이가 나쁜 유치원 아이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눈싸움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먼저 나서서 북한과 대화를 해보겠다거나, 아니면 남북 간의 위기 상황을 스스로 해결해보겠다는 움직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남북문제의 당사자가 우리인 만큼, 결국 우리가 스스로 적극 나서야 하는데, 왜 제3자인 미국이나 유엔에 매달리면서 정작 우리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위키리크스 때문이라는 주장을 폅니다. 지난 2010년 2월 17일, 천영우 전 외교통상부 차관이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 미국대사에게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무너졌고, 김정일 사후 3년 이내에 붕괴된다. 중국도 한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 것을 내심 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이 내용이 전 세계 외교관들끼리의 대화를 담은 위키리크스에 실려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이죠.

정말로 한국 정부가 천영우 전 차관의 말을 그대로 믿고, 북한이 저절로 무너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에 죽었으니, 3년이라면 2014년인데 그때 가서 북한이 붕괴된다고 철석같이 믿는 걸까요?
 
저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보이는 무대책, 무대응, 막가파식 태도를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개성공단 폐쇄만 해도 그렇습니다. 2013년 4월 9일, 청와대는 “개성공단이 폐쇄할 경우, 어떤 대책도 없고 그런 것을 마련해 오지도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의 책임을 모두 북한 탓이라고 돌리면서 말이죠.

천영우 차관이 미국 대사에게 한 북한의 붕괴 임박설, (출처: 쿠키뉴스)

말하자면 한국 정부가 북한을 대하는 언행들은 조만간 북한이 붕괴한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벌인 일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얼마 안 가 곧 망할 집단(헌법상 북한도 한국의 영토로 간주되기 때문에, 한국의 보수 세력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테러 단체로 봅니다)과 무슨 대화나 협상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북한이 곧 붕괴한다는 주장은 이번에 처음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1994년, 김일성이 죽으면 북한이 바로 망한다는 이야기가 거의 2~3년 동안 끊임없이 나돌았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의 사망 소식이 확인되자, 일부에서 예의상 북한에 조문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들이 나오자 보수 여당과 언론들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서 조문 이야기를 꺼낸 사람들을 빨갱이 취급하며 탄압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없이는 못 사는 나라다. 김일성이 죽었으니 이제 북한은 곧 망한다. 그러니 망할 나라인 북한에 뭐 하러 조문을 보내느냐?” 하는 믿음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서점가에서도 한동안 북한이 곧 망하고 남한에 흡수 통일된다는 예측과 전망을 담은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김일성 사후 19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북한은 붕괴하지 않고 건재합니다. 김정일이 죽은 지 이제 1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지만, 북한은 건재합니다. 대체 전문가란 사람들은 무엇을 근거로 북한이 정확히 언제 망한다고 자신만만하게 떠들었던 것일까요? 혹시 그들의 말은 그저 일방적인 소망만을 담은 망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 과연 좋은 일일까?

걸핏하면 전쟁 위협과 공갈, 핵실험을 일삼는 위험한 집단인 북한이 붕괴하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북한이 붕괴한다면 우리에게 좋기만 한 일이 아닙니다. 북한이 무너진다면, 극소수 상류층을 제외한 2000만에 달하는 대부분의 북한 국민은 어떻게 될까요? 그나마 개미 눈물만큼이라도 식량 배급을 해주던 국가가 사라졌으니, 누구도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과연 가만히 앉아서 몽땅 굶어죽기를 기다릴까요? 아닐 겁니다. 국경선을 마주한 중국이나 남한으로 넘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식량을 구하려 들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들에게 지원을 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입으로만 한민족, 통일을 외칠 뿐 정작 진심으로 그들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1997년 5월 15일, 주간지 《한겨레 21》이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기사에 따르면 응답한 아이들의 절반이 “통일되면 거지들이 몰려오니까 싫다!” 하고 답했답니다. 요즘은 “통일이 되면 우리가 북한을 먹여 살리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싫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1997년의 상황과 다를 바 없습니다. 즉 우리보다 못 사는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거나 통일을 하는 데 내 돈을 쓰기 싫다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탈북자는 약 3만 명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놓인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2011년 7월 15일, 《연합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탈북자 대부분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이유는 남한 주민이 탈북자들을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들로 여겨 차별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보다 앞선 2006년 7월 17일, 《월간중앙》 8월호가 국내 거주 탈북자 2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는 더욱 놀라웠습니다. 응답한 탈북자 중 무려 70퍼센트가 미국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으며, 그중 54퍼센트는 차라리 북한으로 가고 싶다는 말까지 했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 살았던 북한 주민은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극단적인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남한 사회에 제대로 적응을 못 할 뿐더러,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부담을 느끼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가난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탈북자들이 인권과 임금 차별을 받는다는 보도. (출처: mbn 뉴스)

이렇게 국내에 거주하는 3만 명의 탈북자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면서, 그보다 훨씬 많은 2000만 명의 굶주린 북한 난민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한꺼번에 넘어온다면, 과연 우리 사회가 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들을 먹여 살리겠다고 순순히 돈을 풀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탈북자들이 못 넘어오게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룰 것입니다. 그러면 북한 주민이 가만히 있을까요?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지난 60년 넘게 무기고에 쌓아 둔 무기를 꺼내들고 식량과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할 것입니다. 이런 시나리오가 예상되기에 북한 정권이 당장 붕괴한들, 우리가 얻을 이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북한과 대화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실, 북한과의 대화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정부가 그러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이자 당장 북한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살던 박정희 시대인 1972년 7월 4일, 남한 정부의 특사가 되어 북한으로 파견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김일성을 직접 만나 회담한 뒤 남북 간의 평화로운 통일을 약속하는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남북공동성명서를 발표하는 이후락 중정부장. (출처: 동아일보)

요즘 북한과의 대화 제의를 두고 “북한은 정신 나간 미치광이 집단인데, 뭐 하러 대화를 하느냐? 다 필요 없다!” 하며 일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을 뿔 난 악마로, 북한을 무자비한 살인마 집단으로 여기던 상황인 1972년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심복인 이후락을 보내 김일성 주석과 대화하게 했습니다. 박정희가 김일성을 좋아하고 존경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김일성은 1968년 1월 21일, 김신조가 포함된 특수 부대를 보내 박정희를 죽이도록 지시한 바 있습니다. 사적으로 보면 김일성은 박정희의 철천지원수입니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4년 후에 자신의 오른팔을 보내 김일성과 대화하게 했습니다. 김일성이 지금 북한의 통치자인 김정은보다 더 이성적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어서 그랬던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박정희는 남북한의 대화라는 큰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사소한 사적인 감정은 접어두기로 한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한 박근혜는 “북한에 신뢰를 통한 대화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취임한 지 이제 3개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지만 여전히 북한과 대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박근혜의 지지층은 반공 정서를 기본으로 깐 보수 세력입니다. 이들은 북한을 “미치광이 살인마 집단”이라고 맹목적으로 증오하며, 그들과 어떠한 대화나 협상도 해선 안 되고 그들이 저절로 붕괴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굶주린 북한 주민을 위해 식량이나 돈을 지원하는 것도 반대할 겁니다. 만약 북한이 정말로 그들의 소망대로 붕괴한다면, 한국군 전 병력을 동원해서 휴전선을 막고, 북한 주민이 자기들 땅 안에 갇혀서 전부 굶어죽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주장할 겁니다. 북한 주민 먹이는 데 자기들 돈 쓰는 걸, 아까워하니까요.)

만약 이런 지지층을 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진심으로 “북한과 대화에 나서겠습니다. 남북 간에 두 번 다시 전쟁이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김정은 위원장, 우리 부디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평화를 위해 노력합시다.” 하고 공식 석상에서 말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아마 당장에 박근혜를 두고 “어찌 감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비굴하게 저 북한 빨갱이들한테 애걸을 할 수 있느냐?” 하고 항의하는 여론이 빗발칠 겁니다.

실제로 2013년 4월 11일 밤, 박근혜가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고 제안만 했는데도 보수층의 여론은 격분했습니다. 한국의 보수 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일보》는 다음 날인 12일, 신문 사설에 “북한과의 대화는 필요 없다!”는 뉘앙스가 담긴 글을 실었고,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 언론인인 조갑제도 자신의 홈페이지인 <조갑제닷컴>에 “북한과의 대화는 그들의 공갈에 굴복하는 것이다!” 하며 규탄했습니다. 이런 주변의 반발에 겁을 먹었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북한과의 대화 제의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보수층의 반발 이외에도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당분간 대북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취임 초기부터 추천한 인사 대부분이 부정부패와 공직자 비리에 연루되어 줄줄이 낙마하는 바람에 지지율이 40퍼센트 대까지 추락하는 상황을 경험한 바 있는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자신과 정권의 지지율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대북 강경책을 펴서 반공 보수 계층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합니다. 또 실제로 그 판단이 옳았죠. 연일 대북 강경론을 펼치자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제 60퍼센트 대까지 올라갈 정도로 안정세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정권의 보신만을 위해 무책임한 대북 강경책을 고집하는 모습이 불안해 보이는 건 저뿐일까요? 반공 보수 계층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북한과 치킨 게임을 벌이는 식으로 대북 강경책에 몰두하다가 한반도 긴장 국면이 더욱 악화되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개성공단 철수, 필연적이었다

결국 5월 12일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노동자 전원이 귀국하고 공단 운영은 잠정 중단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성공단의 사실상 폐쇄를 두고 국민의 약 3분의 2 정도가 잘된 일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 면에서 시사평론가 진중권이 2013년 5월 6일 자신의 트위터에 쓴 글들을 보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상황이라면 개성공단은 존속할 가치가 없습니다. 대다수 국민이 개성공단의 운영을 원치 않고, 계속 공장들을 돌려봐야 “빨갱이들 돈 대주는데, 뭐 하러 공장을 하느냐?” 하고 차가운 눈으로 본다면 개성공단을 만든 근본 목적인 “경제협력을 통한 남북 간 갈등 완화와 신뢰 구축”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된 셈인데, 공단을 운영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겠죠.

우리는 아직도 통일의 준비가 안 되었다고 주장하는 진중권 씨 (출처: 진중권 트위터)

또 박근혜 정부의 취임사에서 밝힌 “북한과의 신뢰 구축”이라는 목표가 북한이라는 집단 자체를 “비이성적인 미치광이 집단”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봐야 합니다. 진중권 씨가 트위터에서 밝힌 대로, 북한을 ‘비이성적인 미치광이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어떻게 북한을 신뢰하고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미친 사람을 믿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북한을 정말로 대화 상대로 생각한다면, 일단 그들을 비이성적이고 미치광이 집단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북한을 정말로 비이성적이고 미치광이 집단이라고 여기고 싶다면, 그들과 아예 대화하려 하거나 신뢰하지 말아야 말의 맥락이 맞겠지요.

통일은 안 되도 좋으니, 우선 평화 공존부터 이루자 

악화될 대로 악화된 지금 상황에서 여전히 통일을 향한 꿈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재 국면을 잘 넘기고, 다시 북한과 대화 및 협상에 나서 보자는 의견을 견지한 이들이죠. 얼마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DMZ(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DMZ 평화공원은 북한과의 신뢰 관계가 구축되지 않는 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만에 하나 어찌어찌해서 DMZ 평화공원이 조성된다고 해도, 금강산 관광 사업이나 개성공단이 끝내 실패로 돌아간 과정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큽니다. 남북한의 강경 세력은 서로 간의 적대적인 대치 상황이 해소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남북한이 영원히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대치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자기들의 입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남북한의 평화통일이라는 대의에는 저도 찬성합니다. 그러나 지금 통일을 이야기하기에는 남북한은 너무나 멀리 왔습니다. 무엇보다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강경파가 집권한 현 시국에서 통일은 은하계로 가는 것만큼이나 멀고 험난해졌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차라리 통일은 안 해도 좋으니, 남한과 북한 두 나라가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대치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 공존으로만 나아가도 대단한 성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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