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길목에서 읽는 한국인의 애송시, 김소월 <진달래꽃>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8월 말에 찾아온 태풍 '볼라벤'과 '덴빈'을 보면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분들이 하루빨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이 잘 복구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무더위로 힘겨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가을 날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맘때 많은 사람이 '가을을 탄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이는 아마도 잊지 못한 추억을 저마다 마음 한자리에 남겨둔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을은 사랑과 이별의 추억으로 시작하여 붉게 물든 단풍이 마른 나뭇잎이 되어 거리를 채울 때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끝을 맺는 짧고도 긴 계절입니다.

오늘은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이별을 노래하고 있지만 결코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낼 수 없다는 심정을 노래하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소개하겠습니다.

1925년 출간된 시집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보내 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2008년 11월 15일 KBS 1TV가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시인만세>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대국민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가장 좋아한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기사보기)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한국적인 정서를 그만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적'이라는 의미는 형식적으로 3음보의 전통적 리듬에 내용적으로 이별의 아쉬움과 슬픔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김소월은 <접동새><초혼><엄마야 누나야><산유화> 등의 시에서 나타나듯이 민요시 형식에 고통과 슬픔의 정서를 담아 우리 민족의 삶을 표현했습니다. 1920년대 한국 시단을 휩쓴 낭만주의 시의 한 특징으로 민요시가 성행했다는 점에서 김소월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이론적으로 낭만주를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김억이나 주요한의 작품들보다 김소월의 민요시를 훨씬 뛰어나다고 평가합니다. 김소월 시에 깔린 고통과 슬픔의 정조를 개인의 성향 탓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식민지 상황에서 전 국민이 느낀 고통, 슬픔, 분노의 감정과 떼려야 뗄 수 없겠지요. 이러한 정서는 민족 고유의 전통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살어리 살어리 랏다” “가시리 가시리 잇고” 같은 민요나 고려가요를 보면 3음보는 다분히 한국적인 리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별에 대한 아쉬움이나 슬픔의 정서는 고조선의 노래로 알려진 <공무도하가>,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 고려가요 <가시리><서경별곡>, 민요 <아리랑>, 정지상의 한시 <송인> 등에 잘 나타나는 민족적 정서입니다. 이처럼 <진달래꽃>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가장 한국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애송하는 시가 된 것이겠지요.

그러면서도 <진달래꽃>이 노래하는 이별의 정서는 이전 시가와는 사뭇 다릅니다. 떠나는 대상에 대한 애절함이야 <공무도하가><황조가><가시리><아리랑>과 같지만 떠나보내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공무도하가>는 “當奈公何 (당내공하, 떠나셔서 어이할꼬”로, <황조가>는 “誰其與歸(수기여귀, 누구와 함께 돌아가리)”로 떠난 대상에 대한 아쉬움과 상실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시리>는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 나는(가시는 즉시 돌아오소서)”라는 바람을, <아리랑>은 “십리(十里)도 못 가서 발병난다”며 떠나는 대상을 향한 애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 김소월은 <진달래꽃>에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며 상실과 슬픔, 바람과 애원을 넘어서는 비장함을 표현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말 없이 고이보내”줄 것 같지만 가려거든 나를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고 위협하면서 그래도 가겠다면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라며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낼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비장함 때문에 <진달래꽃>의 임을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조국으로 해석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가을은 봄보다 빨리 지나갑니다. 하지만 어떤 계절보다 긴 여운을 내포하고 있는 계절이기도 하지요. 단순한 감상에 젖어 ‘가을 탄다’며 하루하루 보내기보다는 옛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거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어 읽으며 기억 저편에 묻어둔 '사랑'과 '열정'을 다시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김소월

본명은 정식이며 190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오산학교에서 조만식 선생과 평생의 스승 김억을 만났다. 1920년 동인지 《창조》 5호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3·1 운동으로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배재고보 5학년에 편입해 졸업했다. 1923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업대학교에 입학했으나 9월에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중퇴하고 귀국했다. 그 후 고향에서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을 도왔으나 실패하여 처가인 구성군에 《동아일보》 지국을 차렸지만 이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극도의 빈곤에 시달렸다. 사업 실패로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아 술로 세월을 보내다 1934년에 33세의 나이로 죽었다(자살했다는 설도 있다). 사후 43년 만인 1977년 그의 시작 노트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실린 시 중에 스승 김억의 시로 이미 발표된 것들이 있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저서로는 1925년 낸 시집 《진달래꽃》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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