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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물/일상비행

창경궁 대온실(昌慶宮 大溫室), 조금만 신경 써서 관리했으면

by 생각비행 2012. 5. 8.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주에 창경궁에 다녀왔습니다. 요즘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가 이어져 생각도 정리하고 바람도 쐴 겸 한적하고 천천히 둘러볼 곳이 없을까 궁리한 끝에 창경궁을 선택했습니다. 이곳에는 예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던 대온실도 있기 때문이지요.

무더위에 땀을 흘리며 도착한 창경궁 대온실. 조금 둘러보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20세기 초반에 지은 건물이어서 관리가 필요한데 여기저기 망가진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에 담은 모습이 있으니 여러분과 공유하겠습니다.

창경궁 대온실 전경

창경궁 대온실(昌慶宮 大溫室)은 1909년에 건립된 국내 최초 서양식 온실입니다. 철골 구조, 유리, 목재가 혼합된 흔히 볼 수 없는 근대 건축물이죠. 일제가 순종을 창덕궁에 유폐한 뒤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동물원과 함께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창경궁 대온실은 일본 황실 식물원 책임자였던 후쿠와가 1907년에 설계하여 프랑스 회사에 시공을 맡겼다고 하는데요, 당시 규모로는 동양 최대였다고 합니다. 원래 대온실 후면에 평면식 돔식 온실 2개가 더 있었다고 합니다만, 아쉽게도 철거되었습니다.

창경궁 대온실 앞 정원

창경궁 대온실 앞에 정원이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유럽의 미로 정원을 연상하게 하는 멋진 모습입니다. 
대온실 앞에 있는 분수대입니다. 오래된 것이지만 상당히 고급스럽네요. 가까이서 보니 대리석으로 만든 고급 분수대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여기저기 손상된 흔적이 보입니다. 
대온실 내부 모습입니다. 여기저기 다양한 식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뭔가 정리되어 있다기보다 그냥 식물을 늘어놓은 개인 온실 같았습니다.
대온실 천정입니다. 상당히 높고 햇볕도 잘 듭니다. 유럽식으로 아름답게 건축되었네요. 구조물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문득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를 기념해 만든 '그랑 팔레(Grand Palais)'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규모에선 비교되지 않습니다만. (그랑 팔레 플리커)
재미있는 점은 유럽풍으로 만든 대온실에서 한국적인 모습이 보인다는 건데요, 유럽풍으로 제작된 흰 난간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화강암 기둥이 보이십니까? 생뚱맞게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재미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난간 기둥 위에는 원래 화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두어 개를 제외하곤 없어졌더군요. 파손된 흔적인지 도난당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대온실 중앙에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관리에 조금 신경을 썼더라면 아름다운 모습일 텐데, 녹조도 끼어있고 수중식물들도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가슴 아픈 모습입니다. 창경궁 대온실 곳곳에서 이렇게 녹이 슬고 나무 부재가 갈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모습이지 않습니까?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한 이상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20세기 초반에 건립되었고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식물원이었다는 의미 있는 건물을 너무 소홀이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부가 근대 문화유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근대 문화유산의 상당수가 재개발로 사라졌고, 그나마 남은 것조차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근대문화유산에 관한 관심이 넓어지면서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중명전입니다. 

과거 중명전의 모습(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과거 중명전의 모습입니다. 중명전은 1901년 대한제국 시기에 건립된 덕수궁의 별채입니다. 황실도서관으로 이용하려고 만든 곳이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중명전은 위와 같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다가 2007년 2월 사적 제124호로 덕수궁에 포함되면서 완전히 새롭게 변모합니다.

현재 중명전의 모습

1901년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습니다. 내부에 들어가 보니 을사늑약과 연관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렇듯 역사적 의미가 있는 문화유산을 잘 이용하면 많은 시민이 살아 있는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후세에 남길 수 있습니다.

영국 헤리티지재단(http://www.english-heritage.org.uk)

재정 문제로 국가에서 관리하기 어렵다면 민간에서 운영해도 괜찮겠지요. 영국 '영국 헤리티지'재단의 예를 보면 많은 시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구성된 자금으로 근대 혹은 그 이전의 사적을 사들여 직접 관리하고 운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재단은 또한 영국 국민과 영국을 찾은 관광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체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움직임이 있습니다. 문화재에 관한 관심과 체험활동의 수요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자 관련 재단도 생기고 사회적기업까지 생겼습니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도코모모코리아, 코리아헤리티지센터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국고로 운영하긴 어렵습니다. 사회적기업의 형태로 문화유산을 지키고, 역사적 의미를 재발굴하여 후대에 물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은 사회적기업가가 되어라》의 저자 야마모토 시게루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정부는 지원을 목적으로 한 후원단체가 아니다. 비판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도 없다. 민(民)과 관(官) 사이 마음의 거리만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정부를 비판하는 말만 늘어놓는 사람은 소통 방식에 틀린 점이 있다(주관적 견해지만, 특히 단카이 세대에 이런 사람이 많다). 정부는 사회적기업과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파트너다. 비판하거나 진정을 내기보다는 정부가 현재 시애하는 정책보다 더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

우리는 무심코 사회문제를 놓고 나라 탓을 하기 쉽다. 사실 우리가 세금만 내고 공공의 문제를 무관심하게 내던져버리고 살면서 말이다. 소셜 비즈니스에서 정부는 파트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_ 《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 본문 중에서

문화유산에 관한 민간의 관심이 더욱 커져서 근대 문화유산을 비롯한 더 다양한 문화재를 잘 관리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후대에 남겨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문화 강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창경궁 대온실의 미흡한 관리도 개선되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많은 시민이 쉼을 얻는 장소로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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