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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한글을 사랑합시다 2] 한글 푸대접의 역사, 이제는 끝냅시다

by 생각비행 2011. 10. 19.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번 기사(한글 반포 565년, 한글의 현실은?)에서 우리의 글자인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지 알아보았습니다. 또한 한글은 지배층이 아니라 백성의 문자생활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세종대왕의 의지가 담긴 민주글자임을 확인했습니다. 가까운 나라 중국에서 "조선에 사람을 보내 문자를 배워야 한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한글은 배우기 쉽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우수한 문자체계였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한글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오늘은 한글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안타까운 역사를 돌아본 다음 한글을 아름답게 살려 쓰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단체를 여러분께 소개하려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한글을 홀대했는지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창제시기부터 푸대접을 받은 훈민정음

한글,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훈민정음은 창제 이전부터 수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집현전 학자였던 최만리는 한자를 버려선 안 된다며 기존에 사용한 이두(한자의 발음을 따와서 글자를 만드는 방법)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세종대왕은 이런 신료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하고서 서두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훈민정음 서두(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의사)소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그 뜻을 (글자에)실어서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개의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서 날로 씀에 편안하게 할 따름이다.

우여곡절 끝에 반포된 훈민정음에 대한 반응은 계층에 따라 달랐습니다. 지배층인 양반들은 훈민정음이 아닌 한문 위주의 생활을 고수했습니다. 그들은 한글을 언문(諺文, 상말을 적는 문자라는 뜻으로 속되게 이르던 말), 암클(여성들이 쓰는 글)이라고 비하하기까지 했습니다.

반면 여성과 서민층에선 훈민정음을 환영했습니다. 편지나 계약서를 쓰는 데 훈민정음은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궁궐에서 생활하는 궁녀들이 주고받는 편지에 많이 썼다고 합니다. 훈민정음은 처음엔 조금씩 확장되었으나 몇 년 전에 발견된 정조의 어찰을 보면 왕도 훈민정음으로 편지를 썼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겨레의 문자인 한글을 탄압한 일본 제국주의

근대로 넘어오면서 한글은 체계적으로 정비되기 시작합니다.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한글을 '국문'이라고 하고, 모든 법령은 국문을 바탕으로 삼고 한문 번역을 붙이거나 국한문을 섞어서 쓰도록 했습니다. 민간에선 주시경이 《대한국어문법》을 저술하여 한글을 정리했고, 이후 많은 학자가 한글은 지속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조선어학회 같은 모임에서 한글 연구와 보급을 지속함으로써 많은 이가 한글을 깨쳤습니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수난동지회 기념(출처: 네이버 지식사전)


하지만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점령하자 백성의 한글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일제는 한국인을 압박하는 방법으로 1936년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공포했고, 1939년 4월부터는 학교에서 국어과목을 없애고, 신문과 잡지를 폐간시켰습니다. 그 대신 모든 학교에서 일본어로 수업을 받고 '가나'로 된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시기에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집니다. 일제는 한국어 사전 편찬을 주도한 순수 학술단체인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몰아 관련자를 구속하고 혹독한 고문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구속된 33명 중 16명을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한 내란죄'를 적용하여 함흥형무소에 가뒀습니다. 이때 돌아가신 분들도 계십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조선어학회는 해산되었고, 한국어 사전 원고가 증거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여러 부분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도 겪어야 했습니다.

외국어에 밀려 홀대받는 한글

1945년 8월 15일, 감격스러운 해방을 맞이하여 드디어 자유롭게 한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한글을 쓴다고 막을 외부세력도 없고, 한글을 쓴다고 해서 잡아가는 세상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광복 후 66년이 지난 현재 한글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자유롭게 한글을 쓸 수 있는 여건임에도 한글은 영어에 밀려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어 열풍은 어릴 때부터 시작해 12년간 공교육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한국은 원어민 수업, 영어 과외 등으로 한글을 제대로 배우기보다는 영어를 더 열심히 배워야 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영어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합니다.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열심히 영어를 배웁니다. 유명 토익학원에 다니며 높은 토익점수를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에 반해 한글에 대한 관심은 극히 미미합니다. 체계적인 작문 교육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담아 글을 쓰기도 어려워 합니다. 게다가 일본어와 영어의 영향으로 수동형의 언어활용이 급증했고, 영어 단어를 한글에 섞어 쓰기도 하는 등, 한글의 정체성마저 훼손하는 이상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민패트롤' '서울리뉴얼' '시니어패스' 등 이상한 한영혼용 표기를 시나 도 같은 행정기관이 남발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내세우는 구호들.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다.


직장, 군대, 공공단체 등에서 어려운 한자말, 일본어 잔재, 한영혼용 단어 등을 남발하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 특별한 발표를 할 때 'Keynote 한다'는 말을 쓰거나 'Presentation 한다'는 말을 더 자연스럽게 느끼거나, 영어 단어를 섞어서 말하는 것을 고급스러운 언어생활로 착각하는 이도 많습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을 상징하는 구호를 내걸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은 'Hi Seoul - Soul of Asia'라는 영어 구호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한글을 사용하면 왠지 촌스럽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날 한글을 무시하는 세태를 잘 지적한 글이 있어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마더하세요"?... 이건 학대입니다>

한글을 아름답게 씁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글을 아끼고 가꾸는 노력을 이어가는 단체도 있습니다. 한글 관련 단체라고 해서 하는 일이 거창하거나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말글살이를 개선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한글문화연대


먼저 소개해드릴 단체는 '한글문화연대'입니다. 한글문화연대는 외국어 남용으로 오염되어가는 한글을 가꾸어 우리 문화와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1999년 12월에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2000년 2월 정식으로 창립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글문화연대의 활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글맞춤법을 널리 알리고 교육하는 한글맞춤법 교실 운영, 방송에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널리 알리고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한 사람을 뽑아 '올해의 아름다운 언어상' 시상, 문화답사, 한글 관련 전시, 한글무늬 옷 제작·배포와 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한글의 소중함을 알리는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2006년부터는 '우리말 사랑꾼/우리말 해침꾼'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는데요, 우리말 사랑꾼에는 한글을 멋진 디자인으로 승격시킨 디자이너 이상봉 씨를 비롯해 전교생을 이끌고 한글 관련 역사터를 견학시킨 중학교 선생님까지 다양한 분들이 선정되었네요. 우리말 해침꾼에는 〈무한도전〉 프로그램, 강호동 씨, 공정택 전 서울교육감이 선정되었습니다. 통신사인 KT도 선정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Olleh'라는 국적 불명의 신조어를 만들어 홍보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밖에도 한글문화연대는 '새말 찾기 공모전'을 열어 새로운 우리말을 만드는 행사도 개최했으며, 한글무늬 자료집(무료로 이용이 가능)을 만들어 한글을 디자인하고 보급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네이버 한글한글아름답게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누리꾼에게 알리는 데 포털 사이트 네이버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생각비행은 네이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만, 2008년 10월 한글캠페인을 시작한 네이버가 '나눔고딕/나눔명조 글꼴'을 무료로 배포한 일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군요. 단순한 글꼴 배포에 그친 게 아니라 네이버 자체 디자인에도 나눔고딕과 나눔명조 글꼴을 적용하여 많은 사람이 나눔 글꼴을 사용하게끔 유도했습니다. 상업적인 포털 사이트답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했습니다. 

네이버의 '한글한글아름답게' 기획은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고 2009년에 아름다운 한글 손글씨 공모전을 개최하여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 이후 공모전 당선작으로 새로운 한글 글꼴을 만들어 배포하고 한글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최근에는 잉크를 30퍼센트나 절약할 수 있는 '나눔글꼴에코'를 만들어 배포했으며, 누구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아름다운 한글 문서서식을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합리적인 국어 정책 추진에 필요한 체계적 조사, 연구와 언어 규범 보완 및 정비를 수행하고 국가 언어 자원을 수집하여 통합 정보 서비스를 강화함으로써 국민 언어생활의 편익을 증진하며 국민의 원활한 의사소통 증대를 위하여 국어 사용 환경을 개선하고 한국어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외래어표기법, 어휘/용어정보, 표준어규정, 어문규정 질의응답, 온라인 강의, 배움마당 등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표준어 규정, 한글 맞춤법 등의 어문 규정을 준수하여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하는 한국어 사전입니다. 예전엔 민간 출판사나 대학 연구소가 한국어 사전 편찬사업을 주도해왔으나, 기존 한국어 사전에 오른 표제어 표기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고자 표준국어대사전을 편찬했습니다만, 우리는 물론 일본조차 쓰지 않는 낱말(한자말)까지 실어놓은 탓에 한자말 비중을 부풀렸으며 일제가 우리말을 한자말로 바꿔 쓴 낱말을 그대로 실었고, 남북한 언어를 아우르려는 욕심에 1992년에 나온 《조선말 대사전》을 그대로 베껴서 섞어냈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앞으로 더 많은 이가 사용할 표준국어대사전이 그 이름에 걸맞게 유용한 사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말 배움터'는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서 바른 우리 말글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평생교육사이트입니다. 초·중·고등학생들은 배움터와 글쓰기교실, 어문 규정, 철자검사기 등을 통해 바른 우리 말글살이의 바탕을 다질 수 있고, 일반인은 자신이 쓴 글의 잘못이나 일상생활에서 자주 범하는 오류를 교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말과 글의 연구·통일·발전을 목적으로, 1908년 8월 31일 주시경, 김정진 등이 창립한 '국어 연구 학회'를 모체로 탄생한 단체입니다. 한글날 제정(1926),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1933), 표준말 사정(1936),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제정(1940), 초·중등 교과서 편찬(1945), 큰사전 편찬(1957), 우리말 다듬기(1967), 한국 지명 총람 편찬(1986), 한국 땅이름 큰사전 편찬(1991), 우리말 큰사전 편찬(1991), 국어학 자료 은행 구축(1992), 한글학회 한글정보(컴퓨터 통신 서비스) 개설(1994), 국어학 사전 편찬(1995) 등의 일을 해왔습니다. 1996년에는 비영리 학술단체로는 처음으로 누리집(홈페이지)을 만들어 누리그물(인터넷)을 통하여 갖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정보 교환의 마당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정기 간행물로 기관지 한글, 문학한글, 교육한글, 한힌샘 연구, 한글 새소식 등을 펴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한글을 아름답게 살려 쓰자는 노력을 기울이는 단체가 많이 있습니다. 한글날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국가지정 공휴일로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외국어 홍수 속에서 지켜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의 한글을 세계화하는 노력에 대해 다음 번 기사에서 소개하려 합니다. 표음문자로서 어떠한 소리라도 옮겨 적을 수 있는 한글의 우수함이 사라지는 세계 각국의 언어를 보존하고 되살리는 데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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