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문자로 강정마을 상황을 전해듣고 이대로라면 평화비행기와 평화버스가 강정으로 오더라도 제대로 된 행사를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습니다.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바로 강정마을로 향했습니다.
고립된 강정마을
9월 2일 오후 상황입니다. 강정천을 지나는 다리 앞에서 경찰이 통행을 막고 있습니다. 왜 막고 있는지 통행권을 제한하는 이유를 물어도 묵묵부답입니다.
차를 타고 다른 길로 강정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 길은 현재 중덕 삼거리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쇠사슬 투쟁의 현장이기도 한 이곳은 해군기지 건설반대 운동의 핵심부에 해당합니다.
9월 2일 새벽에 고권일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장이 올랐던 망루입니다. 여기서 고 위원장은 “중덕마을을 둘러싼 경찰력이 철수하면 내려갈 것”이라며 “내일 전국에서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를 지키고 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이를 막기 위해 경찰이 구럼비 바위로 가는 모든 길을 차단하고 봉쇄했다 …… 평화적 행사 개최를 약속한 공권력의 파렴치한 거짓말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덕해변으로 가는 길은 펜스로 봉쇄되었습니다. 자연을 지키고자 온몸으로 저항했던 주민과 활동가와 지지자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편파적 여론몰이를 하는 공권력이 결국 힘으로 가로막은 것이지요.
해군, 경찰, 시공사는 무엇이 두려운지 펜스 위로 철조망까지 설치해놓았습니다.
펜스 뒤편으로 범섬이 보입니다. 청명한 하늘과 대조적으로 외롭고 쓸쓸하게 보이는군요.
"공권력 투입 반대, 평화적 해결"이라는 현수막의 문구가 무색한 현실입니다.
놀자 놀자 강정 놀자 행사 준비
9월 2일 해군과 경찰이 단행한 대규모 연행은 9월 3일 평화비행기와 평화버스 행사를 저지하려는 노림수가 있었습니다. 행사를 준비해야 할 핵심 인력이 대거 연행되는 바람에 행사 하루 전 주민과 활동가와 지지자들은 분주히 움직여야 했습니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가운데 저녁이 지나고 날이 밝았습니다.
9월 3일 아침입니다.
마을회관에서 책상과 의자를 나르는 일로 행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할 천막도 설치했습니다.
오전에 체육공원에 쳐놓은 천막과 행사용 집기를 반대편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무대의 방향과 입구 쪽 통행을 고려할 때 반대편에 체험 부스를 설치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 일하는 셈이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묵묵히 일합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데 용역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니까요.
체육공원 바깥에 있는 쉼터에 부녀회 분들이 모여서 행사 준비를 위한 토의를 하고 있습니다.
체육공원 입구에 사진, 걸개그림, 포스터가 들어서니 행사장 분위기가 갖춰지는군요. 평화운동가 최성희 씨가 감옥에서 그린 그림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평화적인 집회를 가로막는 해군과 경찰
행사장 앞으로 경찰이 끊임없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강정천을 지나 해군기지 공사장을 둘러싼 펜스 앞으로 경찰버스가 줄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도로 한 차선을 경찰버스가 완전히 막고 있어서 교통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평화로운 집회를 보장하면 될 일을 폭력시위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저렇게 엄청난 경력을 동원했습니다. 지난 4년간 강정마을에선 폭력적인 집회가 단 한 차례도 발생한 일이 없습니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경찰이 시민의 자유로운 통행을 가로막는 상황입니다. 강정마을에서 불법을 자행하는 이들은 해군과 경찰과 시공사뿐입니다.
체육공원 곳곳에 걸린 현수막입니다. 전국 각처에서 보내는 응원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저들이 다 외부세력입니까? 평화의 섬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염원이 들리지 않습니까?
큰 걸개그림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공식 행사 시작을 알릴 길놀이에 사용할 큰 탈도 보입니다. 어린아이가 걸개그림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평화비행기, 평화버스를 타고 지지방문자들이 도착하다
평화비행기와 평화버스를 타고 온 이들을 환영하려고 마을주민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행사장 입구 맞은편에서 돌고래, 구럼비, 연산호, 붉은발말똥게가 지지방문자를 기다리고 있군요.
드디어 평화비행기, 평화버스를 타고 온 분들이 행사장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이 힘찬 박수로 맞이합니다. 해군기지 건설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대규모 지지방문이 이뤄졌습니다. 마을주민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이 시각 강정천 너머로 경찰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저 많은 경력이 모여드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행사장으로 전국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이 속속 모이고 있습니다.
행사장 입구에서 서성이던 경찰이 갑자기 도열하기 시작합니다. 공식 행사를 알리는 길놀이패가 행사장 입구로 들어오는 길을 경찰이 가로막더니 탈을 탈취하려고 합니다. 죽창처럼 시위 용도로 쓰일 도구를 반입하게 할 수 없다는 논리인데요, 참 궁색한 답변입니다. 평화적인 집회를 가로막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입니다. 이러니 경찰이 욕을 먹는 것 아니겠습니까?
탈을 매단 대나무를 탈취하려는 경찰과 뺏기지 않으려는 길놀이패 사이에 대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취재하는 여러 방송사와 개인 사이에 채증에 열심인 경찰도 보이는군요. 경찰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시위 현장에서 채증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지요.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2일 “집회·시위 현장 채증사진 중에서 범죄행위를 잘 입증할 수 있는 사진을 찍은 경찰관을 6개월에 한 번씩 사기 진작 차원에서 ‘베스트 포토그래퍼’로 선정해 포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더 심각한 일은 무분별한 채증으로 인권침해 논란을 빚고 있는 경찰이 채증사진을 잘 찍은 경찰관을 뽑아 포상했을 뿐 아니라 채증사진 전시회까지 연 것으로 드러나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초상권 침해를 나 몰라라 하며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현실을 좌시해선 안 됩니다.
대치 상황이 길어지자 평화비행기 기획자가 평화로운 행사 진행을 위해 충돌을 중재하고 경찰과 협의하여 길놀이패가 행사장으로 들어갈 수 있게끔 조치했습니다.
다양한 문화체험으로 연대하다
행사장 곳곳에 참가자들이 체험해볼 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함께 어울려 즐기는 가운데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행사장의 열기는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쓴 응원의 글이 마음을 짠하게 합니다. 드디어 공식 행사를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해군기지 백지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풍등을 날렸습니다.
공식적인 행사는 끝났지만 다음 날 새벽까지 난장이 벌어졌습니다. 그동안의 투쟁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다양한 영화 상영도 이어졌습니다. 9월 2일 공권력의 방해 속에서도 '놀자 놀자 강정 놀자'는 흥겨운 시민의 축제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준비하느라 애쓰신 분들, 멀리서 지지방문을 해주신 여러분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10월 1일 전국에서 뜨고 달리고 물살을 가르는 평화비행기, 평화버스, 평화배를 타고 강정마을로 와주십시오! 우리의 연대로 아름다운 섬 제주를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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