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 5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제10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의 《일성록(日省錄)》(국보 153호)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등재명: 인권기록유산- 1980년 5월 18일 군사정권에 대항해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항쟁 관련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총 9건의 세계 문화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은 기록을 꼼꼼히 남기고 이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작업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번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일성록》은 1752년 조선 영조 28년부터 경술국치가 일어난 1910년 순종 4년까지 국왕의 동정과 국정 제반 사항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연대기입니다. 《일성록》은 《조선왕조실록》과는 달리 후대 임금이 열람하고 참조할 수 있어 국정 운영에 도움을 주는 소중한 자료였습니다. 실록 편찬 시 참고하는 사초의 경우 취사선택과 첨삭이 이루어진 반면 《일성록》은 하루하루의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기 때문에 기록유산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나 강탈된 지 145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儀軌)의 사료적 가치는 실로 대단합니다. 화성이 무너진다 해도 다시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온갖 정보를 수록한 《화성성역의궤》, 왕실의 전통과 의식을 언제든 참고하고 재연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기록을 담은 외규장각 의궤는 세계인들이 보고 깜짝놀라는 훌륭한 문화유산입니다.
생각비행은 몇 차례 주말비행 소식에서 145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외규장각 의궤 전시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책을 펴내는 출판사로서 기록 유산에 관한 내용을 독자들께 좀 더 자세히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오늘은 과연 세계기록문화유산은 무엇이고, 어떻게 등재되는지,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등을 찬찬히 소개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찬란한 유산을 남긴 우리 조상의 지혜와 꼼꼼한 기록정신을 되새겨보고,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일반적으로 '유산'이라고 하면 대부분 금전적인 것들을 떠올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유산의 형태는 매우 다양합니다.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평원, 이집트의 피라미드, 호주의 산호초, 남미의 바로크 성당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인류의 유산입니다. 한국에는 아시다시피 해인사장경판전, 창덕궁,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조선왕릉 등이 유명한 문화유산이죠. 이처럼 자연과 문화, 혹은 정신적 유산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는 소중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유산’이라는 개념은 곳곳에 산재한 유산이 특정 소재지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보존하고 후대에 제대로 물려주자는 의도에서 나왔습니다.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유네스코가 발굴 및 보호, 보존하고자 1972년 세계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 약칭 ‘세계유산협약’)을 채택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으려면 세계유산 협약이 규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녀야 하는데, 특성에 따라 자연유산, 문화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합니다.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기준
그렇다면 오늘 소개할 세계기록유산의 등재기준은 무엇일까요? 유네스코에 따르면 세계기록유산은 영향력, 시간, 장소, 인물, 주제, 형태, 사회적 가치, 보존 상태, 희귀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다고 하는데요, 기록유산은 일국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쳐 그 중요성을 인정할만하거나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하는데 두드러지게 이바지한 경우 선정한다고 합니다. 또한 전 세계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 및 인물들의 삶과 업적에 관련된 기록유산도 있습니다. 향후 기록문화의 중요한 표본이 된 경우, 예를 들면 야자수 나뭇잎 원고와 금박으로 기록된 원고, 근대 미디어 등과 같은 매체로 된 기록유산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그러한 사례에 해당합니다).
이와 더불어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는 세계기록유산을 아래와 같은 주요 기준을 통해 선정합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기록물
2011년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물은 총 238건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등록물을 자랑하는 나라는 독일입니다. 무려 13건이 등록된 독일이죠. 그 다음으로 오스트리아가 12건, 러시아가 11건으로 뒤를 잇고 있습니다. 한국은 현재 9건을 등록한 나라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세계기록유산 등록건수를 자랑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국이 7건으로 뒤따릅니다. 과연 세계가 기록유산으로 인정한 한국의 기록물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2회에 걸쳐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을 소개하려 합니다. 오늘은 먼저 조선시대에 간행된 4건의 기록유산을 소개하겠습니다.
1. 훈민정음 (1997년 등재)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과 글자는 '한글'입니다. 조선왕조 4대 임금인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훌륭한 문화유산이죠. 하지만 이러한 훌륭한 문화유산도 한때는 어디서부터 기원하여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모르던 상황이 있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해례는 보기를 들어서 풀이한다는 뜻)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한글의 기원에 대해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1940년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어 간송 전형필은 사재를 털이 그 당시 엄청난 가격으로 이를 입수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도 높게 평가했던 전형필은 한국전쟁 때 이 책을 품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잘 정도였다죠.
《훈민정음 해례본》은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설명한 한문 해설서이고, 거기에 해례가 붙어 있어서 해례본이라고 부릅니다. 이 책에는 세종대왕의 서문(흔히 이야기하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그리고 훈민정음 음가 및 운용법을 밝힌 예의편이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해 순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사실 세계의 많은 민족이 고유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글처럼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이 독창적으로 문자를 만들고 한 국가의 공용문자로 사용하게 한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새로이 만든 문자에 대한 해설을 책으로 출판한 일은 정말로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세계 언어학자들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온 문자를 창제한 원리, 문자 사용에 대한 이론적 정연함과 엄정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을 뿐 아니라 문맹 퇴치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세종대왕상'을 주고 있습니다.
2. 조선왕조실록 (1997년 등재)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시간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관찬사서입니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 있는 방대한 양의 역사서이자 조선시대 당시 정치, 외교, 군사, 제도, 법률, 경제, 산업, 교통, 통신, 사회, 풍속, 미술, 공예, 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는 귀중한 역사적 기록물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초 자료 작성에서 실제 편술까지의 편수 간행작업을 직접하였던 사관은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았습니다. 특히 기초 자료 가운데 사초의 경우, 사관들이 국가의 모든 회의에 빠짐없이 참가하여 왕과 신하들이 국사를 논의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동시에 그 잘잘못 및 인물에 대한 평가, 그리고 기밀사무 등을 직필(빠짐없이 그대로 씀)했다고 합니다. 사초는 사관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었으며, 심지어 왕까지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보관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실록들이 소실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재출간하거나 보수하여, 20세기초까지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 네 곳의 사고에 각각 1부씩 보관했습니다. 정족산, 태백산 사고본은 1910년 일제가 당시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했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그대로 소장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대산 사고본은 1913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어 47책만 남아있었는데요. 지난 2006년 한국으로 환수되었습니다. 적상산본은 구황궁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가져가 현재 김일성종합대학이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사료적 가치는 매우 큽니다. 25대 군주의 실록이며 472년간의 역사를 수록한 것이기에 한 왕조의 역사적 기록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산입니다. 또한 실록 안에 수록된 내용은 정치, 사회, 예술 등을 포괄학 있어서 백과전서적 실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점은 《조선왕조실록》이 역사기술에 있어서 진실성과 신빙성이 높은 역사 기록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관에 대한 독립이 완벽하게 지켜졌고, 비밀 보장이 철저하여 조선시대를 거의 사실대로 볼 수 있는 훌륭한 역사서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디지털화하여 그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열람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보러가기
3. 승정원일기 (2001년 등재)
승정원은 조선 정종대에 창설된 기관으로 국가의 모든 기밀을 취급하는 국왕의 비서실과 같은 곳입니다. 《승정원일기》는 1623년(인조1) 3월부터 1894년(고종31) 6월까지 272년간 승정원에서 처리한 국정 기록과 승선원, 궁내부, 비서감, 규장각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1910년(융희 4)까지의 기록으로 총 3243책으로 된 기록물입니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 최대의 기밀 기록인 동시에 그 사료적 가치는 《조선왕조실록》《일성록》《비변사등록》과 비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을 편찰할 때 기초 자료로 이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실록보다 더 사실에 가까운 자료로 평가됩니다. 원본이 단 1부밖에 없어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죠.
《승정원일기》의 내용은 국정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사실의 기록으로 啓稟(계품 - 임금에게 아뢰는 내용), 傳旨(전지 - 임금이 관청이나 관리에게 내리는 내용), 請牌(청패 - 임금이 급히 만나야 할 신하가 있을 경우, 승정원에 명하여 패를 써서 입궐하게 하던 제도를 패초라고 하는데, 이것을 임금에게 청하는 것), 請推(청추 - 공무상 잘못이나 죄과가 있는 벼슬아치에 대하여 추문하고 고찰할 것을 청함), 呈辭(정사 - 관원이 사정으로 말미암아 임금에게 사직, 휴직, 휴가 등을 청하는 것), 上疏(상소 - 신하가 왕에게 글로서 자신의 뜻을 전하는 것), 宣諭(선유 - 임금의 가르침과 타이름을 백성들에게 널리 공포 하는 것), 傳敎(전교 - 종교를 널리 전도 하는 것) 등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기록 방식은 한 달을 기준으로 책머리에 월간 경연상황, 내전의 동향을 기록하고 다음으로 승정원의 관리 및 당직자의 표시와 출근실태를 표시하고 마지막에 승정원의 업무현황, 왕 및 내전의 문안, 승정원의 인사관계 등의 내용을 실었습니다.
《승정원일기》는 《중국 25사》(역대 중국 역사서 - 3386책, 약 4000만 자)나 《조선왕조실록》(888책, 5400만 자)보다 더 방대한 세계 최대의 연대 기록물(총 3243책, 글자 수 2억 4250만 자)이자 당대의 정치·경제·국방·사회·문화 등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그대로 기록한 조선시대 1차 사료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현재 《승정원일기》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디지털화한 상태이며 인터넷을 통해 그 내용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승정원일기 보러가기
4. 조선왕조의궤 (2007년 등재)
'의궤'는 조선왕조에서 유교적 원리에 입각한 국가 의례를 중심으로 국가의 중요 행사를 행사 진행 시점에서 당시 사용된 문서를 정해진 격식에 의해 정리하여 작성한 기록물입니다. 같은 유교문화권인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의궤의 체계적인 편찬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의궤는 조선시대 600여 년에 걸쳐(1392-1910) 왕실의 주요 행사, 즉 결혼식, 장례식, 연회, 사신영접뿐 아니라, 건축물·왕릉의 조성과 왕실문화활동 등에 대한 기록을 그림으로 남겨놓아 600여 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희소성이 있습니다.
총 3895여 권의 방대한 분량에 달하는 의궤는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시기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 조선왕조 의식의 변화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비교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반차도, 도설 등 행사 모습을 묘사한 시각 콘텐츠는 오늘날의 영상자료처럼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줍니다. 예컨대 정조의 능행도(陵幸圖)는 전 여정을 15.4미터에 달하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시각중심 visual-oriented)의 기록유산은 뛰어난 미술장인과 사관의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가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의궤는 장기간에 걸쳐 조선왕조의 주요 의식을 많은 양의 그림과 글로 체계적으로 담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은 동서양 전 세계를 통틀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기록유산의 가치(outstanding value of documentary heritage)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록도 훌륭한 기록유산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남기는 기록들도 후대에 세계기록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며 웃으실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은 이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에 병원치료기록, 국회 회의록, 피해자 보상자료 외에 시민의 기록과 증언, 시민이 생산한 성명서, 선언문, 취재수첩, 일기 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가 날로 힘을 얻는 이 시대에 기록이란 국가나 언론기관만 남기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남기는 모든 글도 훌륭한 기록물입니다. 한 시대의 궤적을 꿰뚫는 가장 생생한 기록을 지금 여러분이 만들고 계신 겁니다. 다음번 기사에 개인이 남긴 일상의 기록이 훌륭한 문화적 유산이 될 수 있음을 더 자세히 보여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 5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제10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의 《일성록(日省錄)》(국보 153호)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등재명: 인권기록유산- 1980년 5월 18일 군사정권에 대항해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항쟁 관련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총 9건의 세계 문화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은 기록을 꼼꼼히 남기고 이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작업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번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일성록》은 1752년 조선 영조 28년부터 경술국치가 일어난 1910년 순종 4년까지 국왕의 동정과 국정 제반 사항을 기록한 일기체 형식의 연대기입니다. 《일성록》은 《조선왕조실록》과는 달리 후대 임금이 열람하고 참조할 수 있어 국정 운영에 도움을 주는 소중한 자료였습니다. 실록 편찬 시 참고하는 사초의 경우 취사선택과 첨삭이 이루어진 반면 《일성록》은 하루하루의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기 때문에 기록유산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성성역의궤 - 출처 : 네이트 한국학
이뿐이 아닙니다.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나 강탈된 지 145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儀軌)의 사료적 가치는 실로 대단합니다. 화성이 무너진다 해도 다시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온갖 정보를 수록한 《화성성역의궤》, 왕실의 전통과 의식을 언제든 참고하고 재연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기록을 담은 외규장각 의궤는 세계인들이 보고 깜짝놀라는 훌륭한 문화유산입니다.
생각비행은 몇 차례 주말비행 소식에서 145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외규장각 의궤 전시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책을 펴내는 출판사로서 기록 유산에 관한 내용을 독자들께 좀 더 자세히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오늘은 과연 세계기록문화유산은 무엇이고, 어떻게 등재되는지,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등을 찬찬히 소개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찬란한 유산을 남긴 우리 조상의 지혜와 꼼꼼한 기록정신을 되새겨보고,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세계유산 상징
‘세계유산’이라는 개념은 곳곳에 산재한 유산이 특정 소재지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보존하고 후대에 제대로 물려주자는 의도에서 나왔습니다.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유네스코가 발굴 및 보호, 보존하고자 1972년 세계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 약칭 ‘세계유산협약’)을 채택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으려면 세계유산 협약이 규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녀야 하는데, 특성에 따라 자연유산, 문화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합니다.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세계유산의 정의
◎ 문화유산
- 기념물 : 기념물, 건축물, 기념 조각 및 회화, 고고 유물 및 구조물, 금석문, 혈거 유적지 및 혼합유적지 가운데 역사, 예술, 학문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
- 건조물군: 독립되었거나 또는 이어져있는 구조물들로서 역사상, 미술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
- 유적지: 인공의 소산 또는 인공과 자연의 결합의 소산 및 고고 유적을 포함한 구역에서 역사상, 관상상, 민족학상 또는 인류학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
◎ 자연유산
- 무기적 또는 생물학적 생성물들로부터 이룩된 자연의 기념물로서 관상상 또는 과학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것.
- 지질학적 및 지문학(地文學)적 생성물과 이와 함께 위협에 처해 있는 동물 및 생물의 종의 생식지 및 자생지로서 특히 일정구역에서 과학상, 보존상, 미관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것
- 과학, 보존, 자연미의 시각에서 볼 때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주는 정확히 드러난 자연지역이나 자연유적지
◎ 복합유산
-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특징을 동시에 충족하는 유산
◎ 문화유산
- 기념물 : 기념물, 건축물, 기념 조각 및 회화, 고고 유물 및 구조물, 금석문, 혈거 유적지 및 혼합유적지 가운데 역사, 예술, 학문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
- 건조물군: 독립되었거나 또는 이어져있는 구조물들로서 역사상, 미술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
- 유적지: 인공의 소산 또는 인공과 자연의 결합의 소산 및 고고 유적을 포함한 구역에서 역사상, 관상상, 민족학상 또는 인류학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
◎ 자연유산
- 무기적 또는 생물학적 생성물들로부터 이룩된 자연의 기념물로서 관상상 또는 과학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것.
- 지질학적 및 지문학(地文學)적 생성물과 이와 함께 위협에 처해 있는 동물 및 생물의 종의 생식지 및 자생지로서 특히 일정구역에서 과학상, 보존상, 미관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것
- 과학, 보존, 자연미의 시각에서 볼 때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주는 정확히 드러난 자연지역이나 자연유적지
◎ 복합유산
-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특징을 동시에 충족하는 유산
세계기록유산 등재기준
그렇다면 오늘 소개할 세계기록유산의 등재기준은 무엇일까요? 유네스코에 따르면 세계기록유산은 영향력, 시간, 장소, 인물, 주제, 형태, 사회적 가치, 보존 상태, 희귀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다고 하는데요, 기록유산은 일국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쳐 그 중요성을 인정할만하거나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하는데 두드러지게 이바지한 경우 선정한다고 합니다. 또한 전 세계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 및 인물들의 삶과 업적에 관련된 기록유산도 있습니다. 향후 기록문화의 중요한 표본이 된 경우, 예를 들면 야자수 나뭇잎 원고와 금박으로 기록된 원고, 근대 미디어 등과 같은 매체로 된 기록유산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그러한 사례에 해당합니다).
이와 더불어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는 세계기록유산을 아래와 같은 주요 기준을 통해 선정합니다.
★ 주요기준
◎ 영향력(Influence): 기록유산이 일국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쳐 세계적인 중요성을 갖는 경우 ex) 세계 역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 정치, 종교 서적 등.
◎ 시간(Time): 국제적인 일의 중요한 변화의 시기를 현저하게 반영하거나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두드러지게 이바지한 경우 ex) 초기 영화산업의 자료 유산, 독립운동 또는 특정한 시점과 장소의 관습 등과 관련된 내용.
◎ 장소(Place): 기록유산이 세계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던 특정 장소(locality)와 지역(region)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 ex)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기간 동안에 전 세계 여러 지역의 특별히 중요한 장소와 관련되거나, 전 세계 역사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정치, 사회 종교 운동의 태동을 목격하고 있는 기록유산.
◎ 사람(People): 전 세계 역사와 문화에 현저한 기여를 했던 개인 및 사람들의 삶과 업적과 특별한 관련을 갖는 경우.
대상/주제(Subject/Theme): 세계 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주제를 현저하게 다룬 경우.
ex)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도서관에 있는 Radziwill Chronicle (편년사)사업.
형태 및 스타일(Form and Style): 형태와 스타일에서 중요한 표본이 된 경우.
ex) 야자수 나뭇잎 원고와 금박으로 써진 원고, 근대 미디어 등.
◎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하나의 민족 문화를 초월하는 사회적, 문화적 또는 정신적으로 두드러진 가치가 있는 경우.
◎ 영향력(Influence): 기록유산이 일국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쳐 세계적인 중요성을 갖는 경우 ex) 세계 역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 정치, 종교 서적 등.
◎ 시간(Time): 국제적인 일의 중요한 변화의 시기를 현저하게 반영하거나 인류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두드러지게 이바지한 경우 ex) 초기 영화산업의 자료 유산, 독립운동 또는 특정한 시점과 장소의 관습 등과 관련된 내용.
◎ 장소(Place): 기록유산이 세계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던 특정 장소(locality)와 지역(region)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 ex)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기간 동안에 전 세계 여러 지역의 특별히 중요한 장소와 관련되거나, 전 세계 역사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정치, 사회 종교 운동의 태동을 목격하고 있는 기록유산.
◎ 사람(People): 전 세계 역사와 문화에 현저한 기여를 했던 개인 및 사람들의 삶과 업적과 특별한 관련을 갖는 경우.
대상/주제(Subject/Theme): 세계 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주제를 현저하게 다룬 경우.
ex)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도서관에 있는 Radziwill Chronicle (편년사)사업.
형태 및 스타일(Form and Style): 형태와 스타일에서 중요한 표본이 된 경우.
ex) 야자수 나뭇잎 원고와 금박으로 써진 원고, 근대 미디어 등.
◎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하나의 민족 문화를 초월하는 사회적, 문화적 또는 정신적으로 두드러진 가치가 있는 경우.
★ 이차적인 기준(등록보조기준)
- 원상태로의 보존(Integrity): 특별히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경우.
- 희귀성(Rarity): 독특하고 특별히 진귀한 경우.
- 원상태로의 보존(Integrity): 특별히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경우.
- 희귀성(Rarity): 독특하고 특별히 진귀한 경우.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기록물
2011년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물은 총 238건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등록물을 자랑하는 나라는 독일입니다. 무려 13건이 등록된 독일이죠. 그 다음으로 오스트리아가 12건, 러시아가 11건으로 뒤를 잇고 있습니다. 한국은 현재 9건을 등록한 나라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세계기록유산 등록건수를 자랑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국이 7건으로 뒤따릅니다. 과연 세계가 기록유산으로 인정한 한국의 기록물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2회에 걸쳐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을 소개하려 합니다. 오늘은 먼저 조선시대에 간행된 4건의 기록유산을 소개하겠습니다.
1. 훈민정음 (1997년 등재)
훈민정음 해례본 - 출처 : 위키피디아
《훈민정음 해례본》은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설명한 한문 해설서이고, 거기에 해례가 붙어 있어서 해례본이라고 부릅니다. 이 책에는 세종대왕의 서문(흔히 이야기하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그리고 훈민정음 음가 및 운용법을 밝힌 예의편이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해 순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사실 세계의 많은 민족이 고유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글처럼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이 독창적으로 문자를 만들고 한 국가의 공용문자로 사용하게 한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새로이 만든 문자에 대한 해설을 책으로 출판한 일은 정말로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세계 언어학자들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온 문자를 창제한 원리, 문자 사용에 대한 이론적 정연함과 엄정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을 뿐 아니라 문맹 퇴치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세종대왕상'을 주고 있습니다.
2. 조선왕조실록 (1997년 등재)
조선왕조실록 - 출처 : 네이트 한국학
《조선왕조실록》의 기초 자료 작성에서 실제 편술까지의 편수 간행작업을 직접하였던 사관은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았습니다. 특히 기초 자료 가운데 사초의 경우, 사관들이 국가의 모든 회의에 빠짐없이 참가하여 왕과 신하들이 국사를 논의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동시에 그 잘잘못 및 인물에 대한 평가, 그리고 기밀사무 등을 직필(빠짐없이 그대로 씀)했다고 합니다. 사초는 사관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었으며, 심지어 왕까지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보관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실록들이 소실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재출간하거나 보수하여, 20세기초까지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 네 곳의 사고에 각각 1부씩 보관했습니다. 정족산, 태백산 사고본은 1910년 일제가 당시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했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그대로 소장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대산 사고본은 1913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어 47책만 남아있었는데요. 지난 2006년 한국으로 환수되었습니다. 적상산본은 구황궁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가져가 현재 김일성종합대학이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사료적 가치는 매우 큽니다. 25대 군주의 실록이며 472년간의 역사를 수록한 것이기에 한 왕조의 역사적 기록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산입니다. 또한 실록 안에 수록된 내용은 정치, 사회, 예술 등을 포괄학 있어서 백과전서적 실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점은 《조선왕조실록》이 역사기술에 있어서 진실성과 신빙성이 높은 역사 기록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관에 대한 독립이 완벽하게 지켜졌고, 비밀 보장이 철저하여 조선시대를 거의 사실대로 볼 수 있는 훌륭한 역사서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디지털화하여 그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열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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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승정원일기 (2001년 등재)
승정원일기 - 출처 : 네이트 한국학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 최대의 기밀 기록인 동시에 그 사료적 가치는 《조선왕조실록》《일성록》《비변사등록》과 비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을 편찰할 때 기초 자료로 이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실록보다 더 사실에 가까운 자료로 평가됩니다. 원본이 단 1부밖에 없어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죠.
《승정원일기》의 내용은 국정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사실의 기록으로 啓稟(계품 - 임금에게 아뢰는 내용), 傳旨(전지 - 임금이 관청이나 관리에게 내리는 내용), 請牌(청패 - 임금이 급히 만나야 할 신하가 있을 경우, 승정원에 명하여 패를 써서 입궐하게 하던 제도를 패초라고 하는데, 이것을 임금에게 청하는 것), 請推(청추 - 공무상 잘못이나 죄과가 있는 벼슬아치에 대하여 추문하고 고찰할 것을 청함), 呈辭(정사 - 관원이 사정으로 말미암아 임금에게 사직, 휴직, 휴가 등을 청하는 것), 上疏(상소 - 신하가 왕에게 글로서 자신의 뜻을 전하는 것), 宣諭(선유 - 임금의 가르침과 타이름을 백성들에게 널리 공포 하는 것), 傳敎(전교 - 종교를 널리 전도 하는 것) 등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기록 방식은 한 달을 기준으로 책머리에 월간 경연상황, 내전의 동향을 기록하고 다음으로 승정원의 관리 및 당직자의 표시와 출근실태를 표시하고 마지막에 승정원의 업무현황, 왕 및 내전의 문안, 승정원의 인사관계 등의 내용을 실었습니다.
《승정원일기》는 《중국 25사》(역대 중국 역사서 - 3386책, 약 4000만 자)나 《조선왕조실록》(888책, 5400만 자)보다 더 방대한 세계 최대의 연대 기록물(총 3243책, 글자 수 2억 4250만 자)이자 당대의 정치·경제·국방·사회·문화 등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그대로 기록한 조선시대 1차 사료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현재 《승정원일기》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디지털화한 상태이며 인터넷을 통해 그 내용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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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선왕조의궤 (2007년 등재)
위판조성도감의궤 - 출처 : 네이트 한국학
의궤는 조선시대 600여 년에 걸쳐(1392-1910) 왕실의 주요 행사, 즉 결혼식, 장례식, 연회, 사신영접뿐 아니라, 건축물·왕릉의 조성과 왕실문화활동 등에 대한 기록을 그림으로 남겨놓아 600여 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희소성이 있습니다.
총 3895여 권의 방대한 분량에 달하는 의궤는 왕실의 주요한 의식이 시기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 조선왕조 의식의 변화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를 비교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반차도, 도설 등 행사 모습을 묘사한 시각 콘텐츠는 오늘날의 영상자료처럼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줍니다. 예컨대 정조의 능행도(陵幸圖)는 전 여정을 15.4미터에 달하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시각중심 visual-oriented)의 기록유산은 뛰어난 미술장인과 사관의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가치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의궤는 장기간에 걸쳐 조선왕조의 주요 의식을 많은 양의 그림과 글로 체계적으로 담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은 동서양 전 세계를 통틀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기록유산의 가치(outstanding value of documentary heritage)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록도 훌륭한 기록유산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남기는 기록들도 후대에 세계기록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며 웃으실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은 이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에 병원치료기록, 국회 회의록, 피해자 보상자료 외에 시민의 기록과 증언, 시민이 생산한 성명서, 선언문, 취재수첩, 일기 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가 날로 힘을 얻는 이 시대에 기록이란 국가나 언론기관만 남기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남기는 모든 글도 훌륭한 기록물입니다. 한 시대의 궤적을 꿰뚫는 가장 생생한 기록을 지금 여러분이 만들고 계신 겁니다. 다음번 기사에 개인이 남긴 일상의 기록이 훌륭한 문화적 유산이 될 수 있음을 더 자세히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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