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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포항 앞바다에서 석유 난다고? 대놓고 나라 살림 거덜 내려고 하나?

by 생각비행 2024. 6. 10.

지난 6월 3일 뜬금없이 우리나라는 산유국(?)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말만 들으면 그렇다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을 열었습니다. 직접 국정 현안을 발표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출입 기자단을 모았죠. 국정브리핑 시작 8분 전에 공지하면서 말입니다. 헐레벌떡 모인 기자단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꺼낸 말은 동해에서 석유가 난다는 갑작스러운 내용이었습니다.

 

출처 - KTV

 

윤 대통령은 "동해에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유수 연구기관과 전문가 검증도 거쳤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가 최대 29년을 쓸 수 있는 천연가스, 4년 넘게 쓸 수 있는 석유량이라면서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개발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도 더 많은 탐사 자원량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미 동해 심해 석유 가스전에 대한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약 4분 동안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어떤 질문도 받지 않은 채 자리를 떴습니다.

 

출처 - 뉴스1

 

에너지 담당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는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이 깜짝 발표는 대통령실의 지시사항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산자부는 한국은 이미 95번째 산유국이며 4500만 배럴 생산 경험이 있다는 설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동해 심해에 있는 이 유전의 시추 성공 확률을 20%라고 밝혔습니다. 옛날부터 '기름 한 방울 안 나는~~'으로 시작하는 어르신들의 나라 걱정, 신세 한탄을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되어 그 한 맺힌 마음을 풀어드릴 수 있다면 나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번 유전 발표는 그런 부푼 희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닙니다. 시추 확률 20%를 국민에게 이야기하기 이전에 정말 유전이 있기는 한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의구심이 풀리지 않을 정도로 모든 일이 불투명하고 엉망진창으로 진행되고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출처- 뉴스토마토

 

일단 윤석열 대통령의 접근법 자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총선 참패 직후 20%가 겨우 넘는 레임덕 지지율을 보이는 시점에 자신이 나서서 하는 첫 국정브리핑 자리였습니다. 단군 이래 민족의 염원인 산유국이 된다는 호재가 사실이라면 공치사도 하고 꿈에 부푼 얘기를 하는 게 자신은 물론 향후 국정 운영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텐데요, 그는 어떠한 질문도 받지 않고 4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혼자 떠들고 떠났습니다. 정말 좋은 일이라면,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요?

 

출처 - 전북일보

 

뭐, 정치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라서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칩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검증했다는 '유수의 연구 기관과 전문가 검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수준입니다. 윤 대통령이 의뢰를 준 그 '전문 연구 기관'은 미국계 지질탐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액트지오(Act-Geo)'라는 업체입니다. 이 회사의 분석을 근거로 경북 영일만 앞바다에 석유-가스가 무진장 매장돼 있다고 발표한 건데요, 이 액트지오의 직원은 1명이며 본사 주소지는 가정집으로 드러났습니다.

 

출처 - 구글

 

미국 인구조사국에 등록된 기업 정보를 확인한 결과 액트지오의 직원 수는 1명이고 연방 정부에 보고된 연평균 매출은 2만 7701달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4000만 원도 채 안 되는 1인 기업이었습니다. 직원 1명은 창업자인 지질학자 빅토르 아브레우 박사 자신이며 회사 주소지는 그의 집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주소지는 미국 휴스턴 지역 부동산 매물 사이트에 월세 7000달러의 임대 매물로 나와 있었답니다. 액트지오는 미국 텍사스 당국에 법인세를 못 내서 3년 동안 법인 자격도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는 상태였고요.

 

출처 - 뉴스버스

 

그런데 미국 기업정보사이트에 이 회사의 지난해 연 매출이 530만 달러, 그러니까 약 70억 원으로 찍혀 있었습니다. 4000만 원 매출이 고작이던 1인 기업이 1년 만에 70억 매출을 올린 회사로 변신한 겁니다. 이 극적인 매출 상승은 한국 동해 석유 프로젝트를 수주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한국 정부의 의뢰비가 그 매출액의 전부 아니냐는 의구심이 듭니다. 이 때문에 해당 회사가 다른 목적을 위해 세워진 페이퍼 컴퍼니가 아니냐는 의혹도 연이어 제기됩니다. 심지어 2017년 설립된 액트지오, 미국 공식 법인명 '아브레우 컨설팅 앤 트레이닝'이란 회사는 텍사스 주정부와 세무국에 자신들의 업종을 '직업 훈련과 관련 서비스'라고 신고했습니다. '지리 컨설팅'을 부업종으로 등록했고요. 자기네 나라에 직업 훈련 회사라고 등록한 후 매출이 없어서 법인세도 못 내던 회사가 갑자기 동해에 석유가 무진장 묻혀 있을 거라고 발표하며 석유 탐사 전문 기업으로 등극하는 현실을 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습니까?

 

출처 - JTBC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액트지오의 창립자인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은 한국에 입국해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자기네가 다양한 국가,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며 회사 주소지가 자택인 이유는 컨설팅 업무에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카메라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했죠. 그 와중에 "20%의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말인즉슨 80%의 실패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면서 실패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을 분명히 짚었습니다. 이건 마치 석유가 없거나 채굴에 실패해도 내 탓은 아니라는 얘기로 들리는데, 너무 황당한 일을 겪다 보니 그의 말을 꼬아서 들은 걸까요?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정부와 국민의힘, 그리고 한국석유공사는 액트지오가 세계 최고의 탐사 기업이라며 어떻게든 방어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액트지오는 법인세도 못 내 법인 자격에 제한이 있는 상태였는데 우리나라 정부가 국책 사업을 의뢰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걸까요? 이에 대해 한국석유공사는 2023년 3월부로 체납된 법인세를 모두 납부해 자격에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액트지오에 의뢰비를 주고 의뢰한 게 2023년 2월입니다. 시점을 견줘서 보면 우리나라가 일을 의뢰하지 않았다면 법인세를 낼 수 없었겠죠. 우리나라 세금으로 미국 기업이 체납한 법인세까지 대신 내주면서 받은 보고서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출처 - MBC

 

심지어 동해 심해 탐사 데이터는 액트지오에서 만든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가진 데이터를 제공하고 액트지오는 그걸 분석해서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국석유공사에 통보했을 뿐입니다. 이건 뭐 타짜들이 하는 사기에 가까운 행태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의혹이 불거지자 한국석유공사는 액트지오가 소재한 텍사스주법에 따라 행위능력 일부가 제한된 상태에서도 계약 체결은 가능하다는 변명까지 대신해줬습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계약하는 데 텍사스 주법이 언제부터 우선시됐는지 잘 모르겠군요. 경쟁 입찰을 통해 탐사 업체를 선정했다면서 대체 왜 세금도 못 내는 법인이랑 일을 도모해야 하는 걸까요? 나라 장터 기록을 비롯해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액트지오를 뽑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이번 일은 국민을 상대로 주가조작 및 사기를 치려고 했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사실 '산유국 사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보수 정권이 사기를 치는 방식 중 하나였으니까요. 1975년 긴급 조치 9호를 선포하고 유신 독재를 공고히 하려던 박정희는 이듬해인 1976년 갑자기 포항 영일만에 석유가 나왔다고 발표합니다. 국민은 열광했고 유신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이 포항 석유설은 명백한 거짓이었죠. 포항에서 경제성 있는 석유가 나온다는 뚜렷한 증거도 없었고, 발표 전에 조금 나온 건 원유가 아니라 경유라고 보고를 받았는데도 질 좋은 석유가 나왔다고 국민을 속였으니까요. 당시 박정희의 딸이었던 박근혜는 연말 기자 회견에서 새해엔 기름이 콸콸 쏟아졌으면 하는 발언으로 국민의 기대에 불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모두 헛된 망상이었을 뿐 석유는 없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이번 윤석열의 석유 발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건 이명박이 저지른 자원외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한국석유공사는 대통령이던 이명박의 명에 따라 물 98%에 원유 2%로 쓸 수도 없는 하베스트 폐유전을 인수했습니다. 이명박은 대통령 임기 내내 해외 자원 개발을 핑계로 수십 조의 국가 예산을 빼돌렸습니다. 이 자원외교 비리의 여파로 잘 나가던 한국석유공사는 41년 만에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한 해 이자로 5000억을 내야 할 처지에 처했는데 돈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영일만 유전을 터뜨린 것도 어떻게든 세금을 받아 메우려는 계획이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제기될 지경이죠.

 

출처 - MBC

 

그런데 이런 의혹이 단순한 의구심이 아니라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가 포항 영일만 일대 심해 탐사 사업에 대해 '더 이상 가망이 없다'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우드사이드는 2023년 8월 22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반기 보고서에서 더 이상 가망 없는 광구를 퇴출시켰다며 트리니다드 토바고 심해 6광구, 캐나다, 대한민국, 미얀마 A-6광구에서 공식 철수한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시사IN

 

우드사이드는 지난 2007년부터 영일만 일대 지역인 동해 8광구와 6-1광구 북부지역을 탐사해온 회사입니다. 2019년 4월 9일 한국석유공사와 맺은 계약에 따라 영일만에서 석유만 나온다면 그 지분의 50%를 가져갈 수 있다는 조광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업으로서 가망이 없다고 보고 나간 겁니다. 우드사이드는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로 연 매출이 23조 원에 이르는 초거대 기업이죠. 자, 이제 모든 조각이 맞춰졌습니다. 15년 동안 직접 영일만을 조사하고 석유가 나오면 50%를 가져갈 수 있다는 계약까지 했던 연 매출 23조의 초거대 기업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철수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반면 액트지오는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우리 정부가 넘긴 자료를 분석해 석유가 있다고 통보했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이 회사는 그 광구에 대한 지분도 권리도 없는 곳이고, 연 매출 4000만 원도 안 돼 법인세를 몇 년간 내지 못하던 1인 기업입니다. 상식적으로 어떤 기업의 말을 믿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액트지오의 보고서가 우드사이드의 결론을 압도적으로 뒤엎을 수 있는 강력한 증거를 포함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액트지오의 창업자는 우리나라에 직접 와서 실패할 확률이 80%로 압도적으로 높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나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우리나라 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액트지오의 판단이 맞다고 극구 옹호하고 있습니다. 국민을 우롱하는 것도 모자라 나라 살림을 아예 말아먹겠다는 발악 아닙니까?

 

 

윤석열 대통령의 짧은 국정브리핑으로 석유 관련 기업의 주가가 요동쳤습니다. 부인뿐 아니라 본인도 주가조작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현 정부의 구성원 면면을 보면 검사들이 더 늘었을 뿐 사실상 이명박 시즌2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이명박이 자원외교로 해먹은 수십 조를 자기네도 똑같이 꿀꺽하고 싶은 것뿐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왜 벌어졌는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울산매일

 

산업통상자원부는 6월 7일 <액트지오(Act-Geo)사(社) 대표, “이제 시추할 시점(It's time to drill)”>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안덕근 장관이 "동해 심해 가스전 프로젝트가 갖는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자신이 가진 역량과 전문성을 최대한 동원하여 성공적인 개발을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하는「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전략회의」를 6월 중에 개최하여 동해 심해 가스전의 성공적 개발 방안을 논의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의 말, "20%의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말인즉슨 80%의 실패 가능성이 있다는 뜻"과 "이제 시추할 시점" 사이에서 우리는 대체 어떤 맥락을 읽어야 할까요? 정부는 이번 일과 관련된 나라 장터 입찰 내역, 한국석유공사가 받은 보고서 등을 명명백백히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탄핵 열차의 질주는 더 거세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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