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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SK그룹 회장 최태원-아트센터 나비 관장 노소영 이혼 소송, 개인사보다 군사독재 정경유착에 집중해야

by 생각비행 2024. 6. 3.

SK그룹 회장 최태원과 아트센터 나비 관장 노소영, 이 두 사람의 이른바 세기의 이혼이 연일 화제입니다. 2심 판결은 1심 판결을 뒤집고 SK주식 가치까지 분할 재산에 포함시켰습니다. 1심에서는 최태원이 어머니로부터 받은 미술품과 동거인 혼외자의 학비, SK 주식은 빠졌는데, 2심에서는 이 모든 게 재산 분할 대상이라고 한 겁니다. 이로써 최태원은 부인이었던 노소영에게 1조 3808억 1700만 원의 재산분할, 거기에 더해 위자료 20억 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재산 분할 규모나 위자료나 모두 사법 사상 최대 규모에 해당합니다.

 

출처 - 한국경제

 

부자나 유명인의 이혼은 일반 국민이 알 바 아닌 개인사입니다. 하지만 이번 최태원-노소영 이혼은 결이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이 이혼 재산 분할 판결에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군사독재의 마지막 대통령인 노태우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이혼의 2심 재판부는 노소영의 아버지인 노태우가 사돈인 최종현 SK 전 회장에게 300억 원을 지원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경유착을 통해 지금의 SK가 되었기 때문에 재산 분할에 회장인 최태원이 소유한 SK그룹 주식 역시 재산 분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최태원과 노소영이 결혼하던 1980년대를 지나온 분들이라면 SK의 전신인 선경이 <장학퀴즈> 앞뒤의 광고로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디스켓을 팔던 기업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까지는 10위 권 밖에 있는 기업이었습니다. 그런 선경이 재계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이 되는 데는 군사독재의 지원이 컸습니다.

 

 

직물회사로 시작한 선경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본격적인 대기업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사실 이때도 말이 많았죠. 3000억 될까 말까 한 선경이 1조가 넘는 대한석유공사를 어떻게 인수할 수 있느냐고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가 공사였던 유공을 선경에 넘기라고 했기 때문에 가능해졌습니다.

 

출처 - 매일경제

 

1992년에는 대한텔레콤을 통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했는데, 이때도 정경유착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습니다. 여론에 밀려 사업권을 반납했는데, 이때 토해낸 게 017의 신세기통신이 됩니다. 하지만 SK는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이동통신시장에 기어이 진입하고 맙니다. 그 후 SK텔레콤은 이동통신시장을 독식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SK가 이동통신사, 에너지, 반도체를 소유하며 재계 2위 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은 노태우라는 독재자의 뒷배경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두 사람이 결혼해 지원이 들어간 1991년이면 짜장면 한 그릇이 1000~1500원 하던 시절입니다. 그때의 300억은 지금의 1500억 정도 된다고 볼 수 있겠죠.

 

출처 - JTBC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된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이 보관해온 약속어음과 메모에 의하면 '선경 300억 원, 최 서방 32억'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SK의 300억과 별도로 최태원 역시 32억을 받아먹었다는 얘깁니다. 이번에 선택적으로 제출된 증거만 해도 이럴진대 저런 지원이 과연 한 번으로 그쳤을까요?

 

출처 - KBS

 

이 밖에도 메모에는 '1999.2.12. 현재 현금상황'이란 제목으로 SK에 대한 지원 금액 외에도 금고, 방, 별채 그리고 1억 원, 5억 원, 10억 원이라고 적은 걸로 파악됐으며 이 외에도 적혀 있는 돈을 모두 더하면 9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나왔다죠. 13년 전 노태우 추징금 수사 당시에도 검찰에 압수가 안 된 메모가 이번에 딸의 이혼 재판에서 자발적으로 제출된 겁니다. 검찰은 그간 대체 뭘 했는지 어이가 없습니다. 노소영 측은 이미 30년 전 일이고 추징금을 다 냈기 때문에 이미 고인이 된 노태우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지는 못하리라고 판단해 공개했을 테니 더 열불이 납니다.

 

출처 - KBS

 

국민을 총칼로 짓밟던 독재자가 '통치자금'이라는 이름으로 혈세를 빨아 조성한 비자금 중에 공개한 것만 5000억 원입니다. 그걸 전부 상환해도 모자랄 판국에 일부를 추징금으로 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재산을 잃을 것 같으니 비자금 조성과 정경유착 증거까지 내밀며 이혼 소송을 하고 있으니 국민이 보기에 정말 어이가 없는 일 아닙니까?

 

출처 - YTN

 

이 때문에 이혼 소송인데도 2심 판결문은 '현대사 다시 읽기' 수준으로 6공화국 시절을 살핀 판결문이라는 촌평이 나올 정도입니다. 노태우가 SK그룹이 성장하기까지 유무형적 기여와 후광에 관해 훨씬 많은 사실과 주장, 판단을 망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200페이지가 넘는 판결문을 50분 동안 읽었다고 합니다. 판결문의 비공개 신청이 기각되자 최태원은 날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부부 생활 중 상간녀와 저지른 볼썽사나운 행위들을 보자면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겁니다.

 

출처 - KBS

 

한편 이번 일을 보면서 정말 무서운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삼성입니다. 몇 년 전 이와 같은 이혼 소송은 삼성에서도 있었습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 간의 이혼 소송이었죠. 당시 남편인 임우재 몫으로 141억 원의 재산 분할액이 확정됐지만 현재까지도 판결문 열람은 봉쇄돼 있습니다. 심지어 법원 내 판사들의 판결문 열람도 봉쇄돼 있다고 하죠. 법원 관계자는 내부 전산망에 판결문을 올리지 말라는 요청은 당사자여도 법적 권한이 없는 요청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재판장의 재량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재판장이 삼성의 편의를 성심성의껏 봐줬기 때문에 다른 판사들조차 판결문을 볼 수 없게 됐다는 얘깁니다. 아무리 개인 간의 이혼에 관한 일이라지만 사법기관의 판결문은 일종의 공문서이기도 할 텐데 법적 권한이 없는 요구까지 들어줘가며 판례로도 참고할 수 없게 판결문을 비공개로 한다는 건, 국민의 법 감정으로는 당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번 최태원-노소영 같은 판결이 났다면 삼성 일가에서는 얼마나 많은 정경유착 실태가 드러났을까요?

 

출처 - MBC

 

최태원-노소영 이혼 다툼으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군사독재가 저지른 전횡, 정경유착, 부유층의 도덕적 해이 등 수많은 치부가 드러났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회가 특별법을 만들어 비자금을 환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특별법이 제정되더라도 환수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특별법을 만들면 시효 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도, 당사자와 증거가 없어서 수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개인의 이혼 소송이라는 틀에 갇혀 노태우 비자금 재수사 혹은 진실을 파헤쳐볼 여지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답답합니다. 아버지의 불법 비자금 덕에 받게 된 1조 3800억 원을 과연 노소영의 정당한 몫으로 볼 수 있을까요? 세기의 이혼 재산분할금에 대한 사회 환원이 이뤄져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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