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린이날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부모님에겐 가장 바쁜 하루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이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물을 기대했을 텐데요, 다들 즐거운 하루 보내셨는지요? 아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주셨나요? 아이를 둔 부모님이라면 어린이날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으셨겠지요? 올해는 또 무슨 선물을 해야 하나, 아이와 함께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셨을 테니까요. 오죽 답답했으면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로 '어린이날갈만한곳'이 올랐을까요?
상업주의에 매몰된 어린이날
21세기는 실로 문화의 시대입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놀이동산, 테마파크 등이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문화상품은 단연 '뽀로로'입니다. <뽀롱뽀롱 뽀로로>는 아이코닉스가 기획하고 오콘, SK브로드밴드, EBS가 공동 제작한 풀 3D 애니메이션으로 엄청난 시쳥률을 자랑하면서 출판, 완구, DVD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사계절 내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극지방의 어느 눈 속 마을에 여러 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펼치는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줄거리를 이룹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뽀로로는 '뽀통령'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캐릭터입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5월 4일, 뽀로로테마파크가 엄청난 화제였습니다. 뽀로로를 캐릭터로 활용해 놀이시설과 다양한 장난감을 갖춘 뽀로로테마파크가 입장 인원을 최대 400명으로 제한한 탓에 줄을 서도 못 들어가는 진풍경이 벌어졌기 때문이었죠. 아이들이 정신을 놓을 정도로 좋아한다지만, 비싼 입장료 탓에 적잖은 불만도 들려옵니다. 어른 6000원, 2세~13세 어린이 1만 6000원으로 아이들 입장료가 훨씬 비쌉니다. 부모와 아이 한 명이 입장한다면 2만 8000원을 내야 하고, 자녀를 두 명 둔 가정이라면 4만 4000원을 내야 하는 셈이죠. 입장 후 2시간이 넘어가면 10분당 어른 500원, 어린이 1000원의 초과요금을 부과한다고 하니 불만이 터져 나올 만하네요.
이제 돈 없으면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로 대접받기조차 어렵습니다. 저출산 시대라 한 자녀만 둔 가정이 많고, 예전과 달리 경제력도 받쳐주니 오로지 최고의 것으로 아이를 떠받드는 세상이니까요. 여러분은 '소황제세대'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는지요? 중국 정부가 인구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1973년부터 '한 자녀 갖기' 정책을 시행한 이후 독자로 태어나 '황제'처럼 온갖 응석을 부리며 자라난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청소년을 지칭하는 문화 용어입니다. 풍요로운 경제적 기반이 있는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성장하여 중국에서는 떠오르는 주류 소비계층으로 대두했습니다. 중국 기업이나 중국에 진출한 많은 기업이 이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군요. 삼성이나 LG 같은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도 중국의 '소황제'를 주목하여 타깃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떠받드는 문화는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저출산 시대를 맞아 자녀를 하나 혹은 둘만 낳고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사회 풍조가 일반화하면서 '엔젤 산업(angel industry)'은 날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엔젤 산업은 영유아(1살부터 취학 전까지의 아동)를 대상으로 하는 산업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아동 인구가 감소 추세에 있음에도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이면에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강력한 소비 세력인 ‘듀크족’과 조기교육 열풍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 엔젤 산업은 교육, 문화 영역은 물론 어린이 전용 백화점, 사진관, 치과, 미용실, 액세서리 가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어린이
TV와 인터넷은 디지털 혁명으로 급변하는 우리 삶의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무지막지한 영상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피가 낭자한 영상만이 폭력적인 걸까요? 아닙니다. 눈만 뜨면 신체를 과도하게 노출한 가수와 연예인이 등장하고,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곧 인기로 이어지는 세상이다 보니 이젠 '영상 폭력'을 재정의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어린이들이 볼만한 프로그램은 나날이 줄어드는 실정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순수하고 맑은 마음을 전해주는 동요가 아닌 빠른 비트, 현란한 음악, 영어가 난무하는 댄스 그룹의 노래에 열광합니다.
어린이들이 꿈꾸는 직업도 시대와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변신을 거듭해왔습니다. 1980~1990년대 아이들은 장래희망으로 대통령, 판사, 군인 같은 직업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그런 장래희망은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수직적 사회구조 속에서 권력과 부를 가져다줄 것으로 인식되었던 직업은 급변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어린이들에게 더는 ‘동경’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한국 어린이의 장래희망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2007년부터 연예인이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2007년 야후코리아 조사를 보면 가수가 1위를 차지한 이래 지금까지 연예인이 단연 선두를 지키고 있습니다.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멋져 보여서’라는 대답이 압도적입니다. 이에 대해 아동학자들은 “억눌린 욕구를 발산하고자 하는 심리와 화려함에 대한 동경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합니다만, 그렇게 전문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눈만 뜨면 보고 듣는 게 연예인 관련 소식이다 보니 당연한 일 아닐까요? 어린이의 장래희망을 묻는 또 다른 설문조사 자료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 1만 478명 가운데 무려 41.6퍼센트가 아이돌 가수를 꼽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매체생태학자인 닐 포스트먼 교수는 아동기의 생성과 소멸을 정보환경과의 관계를 통해 고찰하면서 텔레비전 시대의 도래가 낳은 변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책 《The Disappearance of Childhood》를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1987년에 분도출판사에서 《사라지는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닐 포스트먼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사회적인 위험을 심층적으로 탐구하여 텔레비전을 시작으로 영상매체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TV와 인터넷이 쏟아내는 엄청난 영상에 매몰되다시피 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그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어린이날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요즘 '어린이날' 하면 큰 선물을 떠올리거나 평소 가기 어려운 장소에 온 가족이 나들이하는 날 정도로 그 의미가 굳어지고 있습니다만, 과연 어린이날을 이렇게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게 당연한 일일까요? 미래의 동량인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이 왜 생겨났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신 부모님이 과연 몇 분이나 계실지 궁금합니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고 유쾌한 추억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야말로 살아 있는 공부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어린이날의 즐거운 기억을 잊어버리기 전에 간략하게나마 어린이날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해주시는 건 어떨까요?
세계의 어린이날, 대한민국의 어린이날
우리나라는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기념하고 있는데요, 과연 그 시작은 언제였고 또 어떤 의미로 어린이날을 기념한 것일까요? 일반적인 유래를 살펴보면 1919년 삼일운동을 계기로 어린이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주고자 진주를 시작으로 각 지역에 소년회가 창설되기 시작했고, 1922년 4월 소년운동 단체, 신문사, 동경유학생 등이 모여 논의한 결과 5월 1일을 어린이날(소년일)로 정하고 기념식이 열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인 1923년에 각 소년운동 단체가 모인 조선소년운동협회가 구성되어 5월 1일 어린이날 행사를 전국적으로 개최했다고 합니다. 이날 설립된 단체가 바로 그 유명한 '색동회'입니다. 이후 5월 1일이 노동절과 겹친다는 이유로 5월 첫째 일요일에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해방 이후 1946년에 부활하여 1961년 '아동복지법'이 공포된 다음부터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날의 아버지, 소파 방정환
소파(小波) 방정환
청년 시절 생활비 조달을 위해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 취직했으나 그곳이 조선인들의 토지를 수탈하는 기관이었기에 곧 사직하고 천도교 기관과 관계를 맺었다고 합니다. 여기엔 부친이 천도교 신자였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인내천 사상'에 공감했다는 이유도 한몫했지요.
이후 방정환은 일본 유학길에 올라 아동 문학과 아동 심리학을 공부합니다. 1920년~1923년 유학 기간에 천도교 잡지인 《개벽》에 계급투쟁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성격의 우화들을 연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같은 잡지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했습니다. 이 글에서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유학 시절 외국동화를 번역한 책인 《사랑의 선물》을 출간하기도 했는데요, 살아생전 유일한 단행본입니다. 이 책을 펴낸 이유는 당시 조선의 어린이들이 누릴 만한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의 영향으로 어린이가 읽을 만한 책을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반면, 조선의 어린이들은 그런 혜택을 전혀 누릴 수 없는 상황이었죠. 이에 방정환은 조선의 어린이들의 인권과 그들이 누려야 할 권리에 관해 관심을 두고 어린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어린이에게 꿈을 준 잡지 《어린이》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방정환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강연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강연은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자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파하는 도구였습니다.
색동회 회원들
1923년 한국 최초의 순수아동잡지인 월간 《어린이》가 창간됩니다.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시작한 잡지였으나 예상 외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엽서에 이름과 주소를 적어서 보내면 무료로 잡지를 보내준다고 선전했지만 겨우 8명만 신청할 정도였다니 상황을 짐작할 만합니다. 당시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로 말미암아 극도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굶주리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독서란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방정환은 재미있는 구연동화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특유의 입담으로 잡지를 전파하면서 극복해냅니다.
같은 해 5월, 일본 도쿄에서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단체인 색동회가 창설됩니다. 이 단체의 이름은 동요작가 윤극영이 어린이가 입는 예쁜 색동저고리를 떠올리며 제안한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색동회의 조직으로 월간 《어린이》는 탄력을 받아 아동문학가의 요람이 되어 이원수, 마해송 같은 작가들이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1931년 7월 23일 동화집필, 구연동화, 어린이대상 출판과 같은 지나친 활동으로 건강이 나빠진 방정환은 구연동화를 하던 중에 쓰러집니다. 경성제국대학병원(현재 서울대학병원)으로 옮겼으나 고혈압으로 끝내 숨을 거두고 맙니다. 입원해서도 간호사들에게 동화를 들려줄 만큼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그는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어린이에게 줄 최고의 선물,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
어제 자녀나 조카, 손자, 손녀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주셨나요? 생각비행은 어린이날을 맞아 과연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뭘까 하고 고민하다가 하나의 답을 찾았습니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책입니다. 다양한 단체에서 좋은 책을 많이 소개하고 있으니 생각비행은 조금 다른 접근으로 두 권의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요즘 지구촌이다 뭐다 해서 영어 조기교육 광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국어 교육엔 얼마나 관심을 두십니까?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국어 실력이 좋은 아이들이 영어도 잘한다고 합니다.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때에 한글 맞춤법을 제대로 익힌다면 나중에 아이가 성장했을 때 가장 좋은 선물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아이들의 관심을 끌 만큼 재미있는 책을 소개해야겠죠? ^^
한글 맞춤법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책
(기사 원문 보기: 어린이 한글 맞춤법 관련 책)
- 쌍둥이 형제와 문어 선장의 맞춤법 대결투 / 김정신 / 그림 한상언 /한솔수북
‘쌍둥이 형제와 문어 선장의 맞춤법 대결투’는 쌍둥이 형제 ‘자음이’와 ‘모음이’가 국어 시험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다른 세계에 들어가면서 겪는 사건·사고를 담았다. 이 세계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문어 선장과 지팡이 사나이. 문어 선장은 원래는 해적이었는데, 배가 가라앉아 목숨을 잃었다가 대왕 문어의 몸을 빌려 문어 선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문어 선장은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세상을 지배하며 영원히 살고 싶은 생각에, 맞춤법에 맞게 글자를 익히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돌가루의 예언에 따라 맞춤법을 잘 알 만한 아이들을 잡아들인다. 쌍둥이 형제와 함께 문어 선장에 맞서 문제를 풀어가면서 우리말 실력을 기를 수 있다. 뒷부분에는 ‘우리말에 남아 있는 일본어 찌꺼기’를 수록했다.
- 국어 교과서도 탐내는 맛있는 맞춤법 /장수하늘소 /그림 윤정주 / 웅진주니어
글을 쓸 때 지켜야 하는 규칙을 뜻하는 맞춤법은 원리와 원칙만 알면 우리말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맛있는 맞춤법’은 우리말 맞춤법에 대한 지식을 재미있는 만화로 풀어냈다. 각 장마다 어린이가 자주 헷갈리는 맞춤법을 비교해 올바른 쓰임새를 알려준다. 덕분에 읽는 독자는 만화 속 캐릭터와 함께 맞춤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책은 아무리 공부하고 응용하고 활용하려고 노력해도 헷갈리기 일쑤인 우리말을 요소별로 정리한 맞춤법 안내서이다. 어린이는 만화를 통해 올바른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우리말의 쓰임새를 엿보고, 그 옆장에 정리된 ‘우리말 규칙 알기’와 ‘잘못 쓴 우리말 찾기’를 통해 올바른 맞춤법을 이해할 수 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영국의 유명한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무지개>라는 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어른이 쉽사리 망각하는 순수한 가치와 상상력을 어린이가 지니고 있음에 착안한 내용이겠지요. 하지만 요즘 어린이들은 어떻습니까? 안타깝게도 앞서 살펴본 것처럼 소비문화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요즘 어린이가 아이답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합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활동했던 시기에 어린이가 즐길 만한 문화가 너무 적었다면, 요즘은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는 문화가 너무 많고 상업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기교육 탓으로 어린이들이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런저런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착잡한 마음마저 듭니다. 과연 방정환 선생님이 오늘날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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