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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남양유업의 패악과 갑질, 이대로 둘 때 아니다!

by 생각비행 2021. 10. 14.
"여성 직원에게 임신 포기각서를 받았다"

 

조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인가 싶으시겠지만 아닙니다. 2021년 우리나라 국정감사 도중에 나온 증언입니다. 증언의 대상은 숱한 문제로 사회적 질타를 받았던 남양유업입니다. 분유와 우유를 파는 기업이 주요한 고객이기도 한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출처 - SBS

 

지난 10월 5일 국정감사에 남양유업의 홍원식 회장과 피해를 본 직원 최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이날 국회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최모 씨는 "내가 회사에 입사할 때는 여성 직원에게 임신 포기각서를 받았다"라고 증언했습니다. 남양유업의 홍 회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유도 최모 씨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었죠. 최모 씨는 지난 2002년 남양유업에 입사해 2015년 육아휴직을 하고 이듬해 복직했습니다. 이때부터 최모 씨에게 시련이 닥쳤습니다. 책상이 한쪽으로 치워지고 경력과 관련 없는 이상한 업무를 배정받았을 뿐 아니라 지방 근무 등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입사할 때 임신 포기각서를 받는 남양유업 분위기상 2015년 육아휴직을 쓴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어서 고민 끝에 애초 계획보다 3개월이나 늦게 육아휴직을 쓰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육아휴직 신청은 전자 문서로 결재가 완료됐지만 이후 수기로 신청서를 다시 올리라며 꼬투리를 잡고 회사 측은 최모 씨를 압박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남양유업 측은 최모 씨의 증언이 사실이 아니라며 법적 대응으로 옥죄려고 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지난 9월 7일 최모 씨의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자 남양유업 측은 육아휴직을 사유로 부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다며 반박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남양유업은 2013년 6월 여직원이 결혼할 경우 계약직으로 고용 관계를 바꾼 뒤 임금을 깎을 뿐 아니라 각종 수당마저 주지 않는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여성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성장해온 회사가 내부에서는 여성을 소모품으로 쓰고 버리는데, 남양유업 측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 리 없죠.

 

출처 - SBS

 

그런데 충격적인 건 언론을 통해 나온 녹취록을 보면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이 이런 갑질에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입니다. '빡세게 일을 시키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강한 압박을 해서 지금 못 견디게 하라'라고 말이죠. 그러고는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게 갑질을 하라며 꼼꼼하게 지시까지 했습니다.

 

출처 - SBS

 

피해자인 최모 씨는 입사 6년 만에 최연소 여성 팀장 자리에 오를 만큼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던 직원입니다. 새벽부터 자정 넘어까지 일할 정도로 회사에 모든 것을 바치며 열정적으로 일했습니다. 그토록 열심히 일하고 능력과 열정을 겸비한 직원을 우대해주지는 못할망정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사용했다고 불이익을 주었으니, 남양유업은 대체 어디까지 썩은 걸까요?

 

출처 - 한국여성노동자회

 

우리 사회에서 '오너 리스크'가 인구에 회자하는 일이 많지만, 남양유업의 경우 근본 자체가 틀려먹었습니다. 최모 씨는 회사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했지만 항소심에서는 패소해 현재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6일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남양유업에 대해 조만간 수시 근로감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MBC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감염병인 코로나19로 수많은 사람이 시름하던 시국에 남양유업은 자기네 제품인 불가리스가 코로나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며 소비자를 우롱하며 주가를 조작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홍원식 회장은 지난 5월 초 사퇴하겠다고 발표하고서는 사실상 회장직을 유지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회사 자금을 유용하여 물러났던 두 아들까지 이사로 복직시켰습니다. 

 

출처 - 한국여성민우회

 

갑질 문화가 기본인 남양유업의 패악은 내부 직원들까지 농락하는 수준입니다. 남양유업 같은 불량한 회사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시점입니다. 《갑의 횡포, 을의 일터》의 저자는 '을'이 옆에 있는 다른 '을들'을 마주 보고 함께 조직을 이루거나 연대한다면, 그래서 을들이 질주를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질문합니다.

 

 

이 시대의 을들은 성과주체로서 성공도 실패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라고 믿으며 끊임없이 앞만 보고 내달립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을들은 학교나 회사 같은 조직에서 성적이나 성과로 서열을 매기는 무한경쟁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갑의 횡포 속에서 을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서로를 내몰고 상호 변절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최근 인기를 구가하는 <오징어 게임>은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에서 을들은 협동보다는 생존을 우선적인 가치로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으로만 자신을 인식하는 을이 성과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일어나는 착시효과 때문이죠. 급변하는 흐름 속에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을들은 하루하루가 공포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갑의 횡포에 눈감기보다는 현실을 똑바로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떠야 할 때입니다.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김 군이 사망한 이후로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노동의 개인화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을들은 균열일터라고 할 수 있는 노동의 외주화에 휩쓸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갑의 횡포에 의해 노동자의 근무여건이 나빠지고,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노동 강도는 나날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더는 안 됩니다. 을들이 연대하며 사회문제 해결을 국가에 더욱 강력하게 요구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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