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 : [주식 이야기] 원래부터 주식은 천재지변 같은 극단적 위험 때문에 생겼다
일본 대지진과 주가의 상관관계를 말씀드리면서 주식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간단한 역사를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천재지변 같은 극단적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고수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투자의 일환으로 주식을 시작했다는 내용이었죠. 그렇다면 그런 위험천만한 투자를 바탕으로 설립된 최초의 주식회사는 무엇일까요?
향신료, 애증의 기호품
이전 기사에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1600년대 당시 유럽은 기술의 발달로 이른바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바다로 나가 무역을 했습니다. 거대한 함선과 무역선을 이용하여 아프리카, 아메리카, 그리고 동아시아와 교역해 막대한 부를 얻기 위함이었죠.
다양한 향신료. 15세기에 이 정도의 향신료를 가졌다면 섬 하나를 사고도 남았을 것이다.(출처: 엔사이버 백과사전)
이러한 상황에서 항해기술의 발달, 잇다른 아프리카, 인도 항로의 개척-포루투갈의 바르톨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z)의 희망봉(남아프리카 공화국) 발견,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의 인도 발견-은 많은 유럽인을 흥분시켰습니다. 이후 유럽 각 국가들은 앞다투어 함대를 만들고 신항로를 개척했습니다. 유럽에서 선봉에 선 나라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였는데요, 두 국가의 식민지 쟁탈전이 얼마나 심했는지 교황이 양국 간에 토르데시야스 조약(동쪽은 포르투갈, 서쪽은 에스파냐가 차지하도록 인정한 조약)을 맺게 하여 중재에 나서기도 합니다. 그만큼 향신료는 당시에 큰 돈을 거머쥘 수 있는 황금알 낳는 거위와 같았죠.
동아시아에 등장한 서양인, 그리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발견한 후, 1511년 포르투갈은 말라카(말레반도 끝에 있는 항구 도시)공략하여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진출합니다. 1513년에는 중국과 자바섬에도 포르투갈 선대를 파견했는데요, 테르나테 섬(몰루카 제도의 섬 가운데 하나. 인도네시아 최북단에 있는 섬)에 도착한 이들은 포르투갈 군의 성채를 축조하고 그곳에서 향신료를 가져왔습니다. 몰루카 제도는 정향과 육두구의 산지였기에 이곳을 향료 제도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이후 이곳에 에스파냐의 마젤란 선단이 도착하면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대립이 심해졌습니다. 1600년대에 들어 포르투갈의 지배력이 약화되자 네덜란드인들은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동인도 회사 본부(출처: 위키피디아)
그 이전에는 네덜란드인들이 향신료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얻었으나 포르투갈이 에스파냐와의 분쟁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지배권이 약화되는 상황을 틈타 네덜란드인들은 본격적으로 동아시아로 진출합니다. 이때 세운 회사들이 바로 동인도회사입니다. 그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향료 무역이라는 큰 유혹으로 말미암아 10여 개의 회사가 난립했습니다. 이는 기업 간의 불이익을 초래하여 동아시아에서 경쟁하던 에스파냐에 점차 밀리는 형국을 빚었습니다. 이에 1602년 정부에서 나서 10개의 기업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로 통합하기에 이릅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바타비아(자카르타, 인도네시아 수도)에 총독정청을 두어 본격적인 동아시아 향료무역을 독점합니다. 진입 당시에 있었던 포르투갈, 영국 세력을 모두 축출하여 17세기에는 동양 무역을 관할하는 최고의 지위를 확립하고 최대의 무역회사로 성장합니다.
그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일본과 무역을 한 유일한 국가였습니다. 동아시아에 진출했던 에스파냐, 포르투갈은 로마 카톨릭 교회 선교 활동으로 말미암아 도쿠카와 막부와 충돌이 잦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신교를 믿었던 네덜란드는 선교 활동을 하지 않았고, 이에 도쿠카와 막부는 나카사키(長崎) 앞에 데지마(出島)라는 인공 섬을 만들어 제한적으로 무역을 개방합니다. 이로써 일본은 난학(蘭學)이라는 이름의 서양 학문을 접하였고, 네덜란드는 당시 국제 결제 수단이었던 은화의 수입원을 마련했습니다. 벨테프레(박연)과 하멜이 조선에 들어온 것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일본과 교역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주식의 관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주식은 과연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앞서 이야기했지만, 포르투갈의 동아시아 지배권이 약해지자 네덜란드는 동아시아 진출을 도모했습니다. 네덜란드 왕실과 상인연합은 향료 무역에 나설 회사를 만들고 대선단을 꾸리기 시작하죠. 하지만 동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해선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네덜란드에서 배로 몰루카 제도까지 가는 건 엄청난 비용을 요구합니다. 대규모의 무역선을 건조해야만 했고, 선원들을 모집하고 선원들을 먹일 식량, 그리고 그 지역에 정착하기 위한 재반 물품들을 구입해야 했으니까요.
1623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채권.(출처 : 위키피디아)
그런데 이런 발상에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투자한 돈에 대한 이익을 분배할 때, 누가 얼마나 투자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투자자가 한두 명이 아닌 수백, 수천 명이나 되니 정확한 이익 분배는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이에 동인도회사는 투자받은 돈을 모두 한 곳에 모으고, 그것을 자본금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자본의 소유에 대한 권리를 보여주는 종이를 발급합니다. 자본금에 대비해 얼마만큼 투자했는지 증명하는 종이, 즉 주권·주식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런 일이 또 발생할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투자한 어떤 사람이 갑자기 돈이 궁하여 자신이 투자한 돈 가운데 일부를 돌려받고 싶어할 수 있습니다. 또 동인도회사가 크게 발전할 것으로 생각하여 더 많은 주식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도 생기겠죠. 이런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만나, 한 사람은 주식을 팔고 한 사람은 주식을 사겠죠. 하지만 그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거래를 원하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면, 더구나 서로 사는 지역이 다르다면 얼마나 불편할까요? 이런 번거로움을 해결하고자 특정한 장소를 정해 주식을 서로 거래하도록 정했습니다. 증권거래소의 시작이었던 것이죠. 암스테르담에 있는 증권거래소가 바로 그곳입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주식'이란 개념으로 투자자를 모으고 성공을 거두자, 유럽의 여러 왕실은 앞 다투어 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합니다. 여러 나라에 동인도회사가 생기게 되었죠. 이렇게 각 국가에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어 유럽은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주식이 생겨나게 된 짧은 역사를 돌아봤습니다. 주식투자를 하는 분들 가운데 과연 그 시작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그냥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주식투자를 한다면 수익을 거두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면 그 시장이 돌아가는 원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초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생각비행에서 《이렇게 하면 나도 주식왕》을 출간했으니 앞으로 개미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전하겠습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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