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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변화하는 가족의 개념, 가정의달에 돌아보는 '구하라법' 확정

by 생각비행 2021. 5. 3.

지난 4월 27일 구하라법 도입이 확정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 것으로 정부는 자녀 양육 의무를 소홀히 한 부모의 경우 상속에서 배제하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시행합니다. 자녀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모가 자식의 재산을 상속받는 일은 비양심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것이죠. 이 법은 유명 걸그룹 멤버였던 고 구하라의 친오빠가 문제를 제기하여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죠. 2019년 11월 고 구하라의 친모는 어린 남매를 두고 20여 년 동안 연락조차 하지 않다가 한류스타였던 딸(구하라)이 사망하자 친모라며 나타나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습니다. 참 파렴치한 일이 아닐 수 없죠.

 

출처 - 연합뉴스

 

친부는 재산 상속 지분을 바로 포기한 반면 아이들을 나 몰라라 했던 친모는 법정 대리인까지 동원해 재산의 50퍼센트를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구하라의 친오빠인 구 씨는 광주지방법원에 친모와 유가족 간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구하라법 입법을 국회에 청원했죠. 당시 현행법에서는 가족을 살해하거나 유언장을 위조하는 등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상속결격 사유를 인정했습니다. 이 법을 청원한 고 구하라의 재산 분쟁은 친모 4, 오빠 6의 지분으로 판결이 났습니다. 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 정도가 한계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구하라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법으로 앞으로 다른 이의 억울함은 막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가족의 형태와 의미, 구성 등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급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은 '전원일기' 하던 시절 수준에 멈춰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 구하라의 사례처럼 가족이 아닌 사람들마저 분노하게 되고 답답함을 느끼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이 때문인지 예전엔 꺼내지 못했던 논의가 속속 펼쳐지고 있습니다.

 

출처 - MBC

 

정부가 내년부터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기로 한 가운데 서울시가 5월부터 전국 최초로 부양의무제를 폐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 시민은 가구 소득과 재산 기준만 충족하면 자녀 등 부양 능력이 있는 가족이 있더라도 서울형 기초보장 수급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내년부터는 전국으로 확대되겠죠. 가족 구성원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천륜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법이라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이 제도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생계가 어려워 끼니를 못 챙길 정도여도 서류상으로 자식 등 부양가족이 존재하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수십 년 전에 연락이 끊겼거나 생사조차 모르는 경우라도 말입니다. 부양의무자 제도라는 개념 자체가 시대에 맞지 않았습니다. 자식이든 부모든 가족을 돌보는 게 법적 의무 사항으로 강제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면 사실상 가족은 파탄이 난 것이겠지요. 그런 개개인이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해줄 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이런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야 말로 공적 부양과 복지 혜택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상황이어도 가족 일을 가족이 책임지도록 했던 것입니다.

 

출처 – 서울시

 

이제는 부양가족 유무에 상관없이 생계가 어려운 당사자에게 초점을 맞춰 복지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이런 곤경에 처했던 2300명 정도가 5월부터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입니다. 물론 종전과 같이 세전 연소득이 1억 또는 부동산 9억을 초과하는 고소득, 고재산 부양의무자가 있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3월 혼인 신고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버지 성을 우선 따르도록 한 민법의 부성 우선주의 원칙이 헌법상 혼인, 가족생활 기본권과 인격권,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됐습니다. 앞선 구하라법과 부양의무제 폐지는 시민들의 중지가 모인 결과입니다만, 이 헌법 소원은 한발 더 나아가 가부장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다양한 논쟁을 불러올 것으로 보입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시민활동가 부부는 구시대적인 가족제도에 종점을 찍을 시간이라며 수많은 소수자를 괴롭혀온 견고한 정상가족 프레임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내기 위해 부성 우선주의 원칙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장경태 의원 트위터

 

현재 민법에 의하면 "자(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성을 나을지 안 나을지도 모를 혼인신고 때 정해야 하는지, 이를 번복하려면 정정 신청 정도가 아니라 소송을 불사해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애초 아이가 성을 선택할 수 있게 하지 않고 모의 성을 따를 때만 별도로 체크하게 하는 것은 남성을 '기본'으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이 아니고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죠.

 

출처 - KBS

 

사실 이런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닙니다.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지난해 5월 부성 우선주의 폐지를 권고했고 국회에도 같은 취지의 민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습니다. 지난 27일 여성가족부가 자녀의 성 결정 방식을 부모가 협의할 수 있도록 법 개정 검토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얘기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의식의 변화 속에서 제기된 것입니다.

 

출처 - 스브스뉴스

 

일부 극우 보수 단체와 언론들은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고 난리들입니다. 예를 들어 한교총은 전통적 가정과 가족의 해체 및 분화를 가속화하며 다양한 동거인에 대한 분별없는 보호와 지원계획은 전통적 혼인과 가족제도에 대한 해체를 의도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그들의 입장을 보면 놀랄 일도 아니죠. 지난 4월 28일 《매일경제》의 사설인 <어머니 姓 선택 가정기본계획 이렇게 불쑥 제기해도 될 일인가>를 보면 참 웃깁니다.

 

앞으로는 자녀 출생신고 시점에서 자녀의 성을 협의해 결정하도록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가족 구성 형태가 빠르게 바뀌어온 현실을 반영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맞는 말이긴 하다. (중략) 그렇다 해도 우리 사회의 기초단위이자 수백 년 동안 유지돼 온 가족제도를 '깜짝 쇼' 하듯 바꾸려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근엄한 척하고 있지만 언론사의 사설의 주장이란 게 '맞는 말이지만 그냥 싫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반박할 근거나 명분이 없는데 단지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온 가족제도를 위해 계속 과거에 머무르겠다는 얘기입니다. 마치 1990년대 폐지된 동성동본 결혼금지 폐지 때를 보는 느낌이네요. 당시에도 동성동본혼 금지 조항을 폐지하면 근친혼이 판치고 가족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한다고 보수 단체와 언론들이 나발을 불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20년밖에 안 됐지만 지금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제도가 있었다는 걸 TV 드라마를 보고서야 알 정도죠.

 

출처 - SBS

 

앞으로도 가족의 형태와 개념은 계속 변할 겁니다. 그에 따라 법도 변화해야 합니다. "혼인, 가족생활이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한다"는 헌법 조항이 있는 한 가장 먼저 존중해야 할 것은 가족 구성원인 개인일 것입니다. 그 개인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형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족의 의미 아닐까요? 가족 개념의 변화를 좀 더 유연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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