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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여성 혐오와 젠더 갈등을 넘어 약자 연대로

by 생각비행 2021. 4. 22.

4.7 재보궐선거의 여파로 다시 한번 여성 징집과 연관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 청원은 이미 1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국방부는 사회적 합의가 먼저라고 선을 그었습니다만, 이 논란은 다른 청원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성징병 대신에 소년병 징집을 검토해 주십시오'라는 청원입니다. 한국전쟁 때도 학도병이 있었던 걸 감안해 병력 자원이 부족하다면 중고등학생도 징집하라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이 청원을 올린 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정신이 온전한 상태가 아닌 건 분명합니다. 지구 어딘가에서 갈등과 내전 등의 상황에 내몰려 죽어가고 있을 소년병 문제를 생각한다면, 국내의 젠더 이슈와 관련하여 자극적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청원에 대해 동의를 주도하는 남초 커뮤니티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페미가 역풍을 맞게 하려는 것이죠.

 

출처 - 부산일보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국에 살면서 병역 의무와 관련하여 억울함을 느끼는 남성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복무를 마친 분들이라면 국방부와 군대가 사람을 어떻게 굴리는지 경험하셨을 테니 긴말이 필요 없겠지요. "군대 갈 땐 국가의 아들, 사고 날 땐 당신의 아들"이라는 분노 섞인 표현이 괜히 나온 건 아니겠죠.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 가운데에는 일본군과 군부독재를 거치며 군대에서 유래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전히 군대에서 학습되는 것들도 많고요. 하지만 군대 내에서는 국가를 위한 다는 명분으로, 제대한 뒤에는 조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치장되곤 합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군대를 정상화하자거나 입대를 보이콧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국가와 국방부를 상대로 싸워야 할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소년병 징집 청원을 들먹이며 여성도 군대 가라는 식으로 싸움의 방향을 잘못 잡으니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죠.

 

 

리로이 존스의 지적대로 노예 생활이 길어지면 노예들끼리는 쇠사슬을 자랑거리로 삼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을 구속하는 압제자를 상대로 사슬을 끊어내려고 싸우는 게 정상인데도 말이죠. 이처럼 '내가 군복무를 하니 너도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식의 병역 의무 논란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성들이 성평등을 외칠 때마다 남성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얘기가 바로 '군대' 문제이다. 군복무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반면 성차별을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문제인데, 이둘을 과연 대등한 문제로 볼 수 있을까? 과연 여성이 군대에 의무적으로 가게 된다고 한들 성차별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까? 나는 아닐 거라고 본다. (중략) 평등해지기 위해서는 여성이 남성과 똑같아져야 하는 것도, 특별한 배려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남성이 기준이 되는 시스템을 다른 측면에서 바로보고 이를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 위에서 남성들이 억울함을 주장하는 편이 옳다고 봅니다. 이는 남성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핵심은 우리 사회가 지극히 남성을 '기본값'으로 놓고 있는 남성 중심주의 사회이며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비단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지금의 세계가 여성 착취의 기반 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출처 - MBC

 

현실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4월 초 하나은행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하나은행 지점장이 대출 상담을 한 여성 고객을 식당으로 불러 술을 따르라고 강요했던 사건 말입니다. 상담을 해주겠다는 얘기에 여성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혹시라도 대출 승인이 될까 싶어 기뻐하며 나갔다고 하죠. 그런데 지점장은 횟집에서 고객에게 반말로 술을 따르고 마시라고 강요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지점장은 여성 고객을 접대부로 쓰려고 했던 겁니다. 여러 정황상 그 지점장은 대출을 미끼로 한두 번 여성 고객을 농락했던 게 아닐 겁니다. 일이 커지자 지점장은 자기 부인까지 앞세워 용서를 빌게 했습니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죠.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운 상황에서 생계를 위해 대출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한둘이 아니겠지요. 그런데 같은 고객인데 접대부 취급을 받는 일은 거의 여성에게만 일어납니다. 이런 사회가 과연 정상적일까요?

 

출처 - KBS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장경훈 하나카드 사장이 공식 회의 자리에서 "카드는 룸살롱 여자가 아닌 같이 살 아내를 고르는 일"이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일자 결국 물러난 일 말입니다. 하나은행과 하나카드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미흡한 인권 의식을 가진 남성들이 권력과 위계를 이용하여 여성을 희롱하고 농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건만 우리 사회는 이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남성 중심주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출처 - JTBC

 

지난 3월 논란이 불거진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은 또 어떻습니까? 동아제약은 면접 자리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여자는 군대 안 갔다 왔으니 남자들보다 월급을 적게 받아야 한다고 운운했습니다. 이 질문은 공통 질문도 아니었고 직무와도 관계가 없었는데 왜 이 질문을 굳이 여성 면접자만 받아야 했을까요? 이로 인해 불매 운동이 불거지자 동아제약은 인사팀장을 보직 해임하고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다고 하죠. 그저 면접관 개인의 일탈로 꼬리를 자른 겁니다.

 

출처 - 뉴스1

 

반면 성추행 가해자들과 2차 가해자들은 잘 먹고 잘 삽니다. 안희정 전 지사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한 김지은 씨를 모욕하는 댓글로 벌금형이 확정된 안희정 전 지사의 측근은 서울 송파구 정무직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죠. 올해 1월부터 송파구 정책연구단 팀장, 6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판결까지 나온 성폭행범을 비호하고 본인 또한 2차 가해로 벌금형으로 유죄를 받았는데 민간 기업도 아닌 공무원으로 다시 일할 수 있다니 기가 막힙니다. 상황이 이러니 아무리 선량한 남성이 많다고 한들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방어운전을 잘하는 운전자가 도로에 많다 해도 몇몇 난폭 운전자들 때문에 움츠러드는 경험은 다들 해보셨을 줄 압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남성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쉬쉬하며 넘길 일이 아니라 구조적인 진단과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요? 

 

출처 - MBC

 

여성 혐오 반달리즘의 한 형태는 지난 3월 세종대 철학과 온라인 수업에 난입한 외부 남성들의 분탕질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보겸의 '보이루'가 여성혐오 표현이라는 논문을 쓴 윤지선 교수의 강의였습니다. 신 남성연대라는 유튜브를 비롯해 일베 등 여성 혐오에 사로잡힌 남성들이 온라인 수업에 침입해 온갖 욕설과 여성 혐오 용어를 쏟아내며 수업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경찰은 모욕, 업무방해,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온라인 수업을 이용한 여성 혐오적인 반달리즘이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던 터라 걱정이 더 커집니다.

 

출처 – 노컷뉴스

 

여기에 더해 '허버허버, 오조오억개' 등 SNS에서 쓰이던 용어들을 갑자기 '남혐 용어'로 규정하며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 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건지 눈앞이 막막해집니다. '김치녀, 된장녀' 등은 명확하게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기 위해 일베에서 생겨난 용어이지만, '허버허버'는 2019년부터 쓰인 신조어로 당시 중앙일보 네이버 블로그 포스트에서는 해당 단어가 '급히'라는 뜻의 영단어 'Hubba-hubba'에서 유래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오조오억개' 역시 한 팬이 아이돌 멤버를 찬양하는 댓글에서 발전한 것이고요.

 

출처 - JTBC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혐오에 기반한 젠더 갈등이 청년 세대의 잘못된 공정성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공정성은 사회의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능력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애초 남성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등하게 돌려놓자는 움직임은 남성들로서는 당연히 누려왔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당연해지지 않는 세상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노예제도가 사라지자 자신들의 재산을 국가가 강탈해갔다고 분노하던 노예 주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울어진 운동장 시절의 잣대로 공정성을 주장하면서 군복무 문제를 젠더 갈등으로 비화시키는 측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된 공정성 문제로 인한 갈등은 여성을 넘어 성소수자, 장애인, 저학력자,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해 점점 더 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론을 비롯한 정치권은 이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논란을 부추기는 실정입니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없는 자인 우리는 각자의 사슬 자랑은 그만하고 '사슬을 끊기 위한 연대'를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여성 혐오와 젠더 갈등을 넘어 '약자를 위한 연대'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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