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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일본 원전 사태로 본 정경유착과 민영화의 비극

by 생각비행 2011. 3. 21.

일본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일본 관동지방이 시끄럽습니다. 지진해일 탓에 많은 사람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원자력 발전소 손상으로 방사능이 유출되어 공포는 더욱 확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언론에서 간간이 다루고 있듯이 이번 일본 원자력 발전소 사태를 보노라면 뭔가 확연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 사이에서 드러나는 뭔지 모를 불협화음입니다. 지진해일이 발생한 이후 일본 정부가 발표한 정보는 시시각각 달랐습니다.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이에 최근 도쿄에서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과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둘째, 전력 공급 문제입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계획 정전을 시행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엄청나게 큽니다. 그러니 관동지방의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해도 타지방의 전력을 끌어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하기까지 일본 시민은 물론 이번 사태를 주시하는 전 세계인이 의문을 품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죠.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정계와 제계의 유착에서 비롯한 사고 은폐, 결국 방사능 유출이라는 큰 사고로 이어져

도쿄전력은 일본 도쿄 지역과 그 주변 지역에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는 민영회사입니다. 1951년에 설립된 도쿄전력은 일본 내 11개 전력회사 주식 가치 총액 가운데 3분의 1을 차지하는 큰 회사죠. 게다가 일본에 있는 52기 원자력 발전소 가운데 가장 많은 17기를 운영하는 기업이기도 합니다.

후쿠시마 원전(출처 : 연합뉴스)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17기 원자력 발전소 가운데 이번에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은 1971년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기술로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1976년부터 이번 지진해일로 피해를 보기 전까지 크고 작은 사고가 잦았다고 하는군요. 특히 2007년 내부 비밀 문건이 공개되면서 알려진 '임계사고'는 일본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임계사고란 핵연료의 연쇄 반응이 커져 시설 손상과 작업자에게 방사선 피해가 생기는 큰 사고입니다. 하지만 이런 큰 문제를 도쿄전력은 29년간 은폐해왔습니다. 이런 큰 사건을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은폐할 수 있었던 걸까요?

이에 대해 도쿄전력과 일본 정계의 오랜 유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장정욱 마쓰야마 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민중의 소리》와 나눈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도쿄전력이 도요타와 함께 엄청난 정치적 힘, 막강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며 “나머지 전력업체를 모두 합쳐도 도쿄전력에 대항하지 못할 정도의 파워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회의원 가운데 <원자력 마피아> <원자력족> <전력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심지어 민주당 에너지 담당 관료 가운데 전력회사 출신이 여럿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도쿄전력의 잦은 사고는 정계와 재계의 유착으로 말미암아 은폐되거나 별다른 처벌 없이 지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이번 지진해일 피해에서도 그런 모습이 그대로 반복되었습니다. 도쿄전력은 원전 피해 상황을 축소, 은폐하면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만, 초기 대응에 실패한 탓에 큰 화를 자초했습니다. 도쿄 전력은 사태를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직원을 철수하려 했다고 하는데요, 이 사실을 알게된 간 나오토 총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하는군요.

撤退などはあり得ない。 覚悟を決めてください。撤退したときは東電は100%潰れます。
- (직원들이) 철수한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각오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직원들이 발전소에서 ) 철수하면 도쿄전력은 100퍼센트 도산합니다.

민영회사를 총리가 도산시킨다는 말은 큰 논란을 빚을 수 있습니다. 공권력 남용의 문제로 비화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의 극단적인 발언이 나올만큼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도쿄전력 측의 무모한 행동에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정경유착에 찌들어 시민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에게 묻는 책임 말입니다.


주파수 문제로 전력을 공급 받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 민영화의 병폐가 드러나다

일본은 지진 피해로 말미암아 계획 정전을 시행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고 하니 이번 지진 피해로 전력 공급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계획 정전을 알리는 도쿄 전력 홈페이지 공지사항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이번에 피해를 본 곳은 관동지역입니다. 관서지역이나 중부지역은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의 여유 전력을 일시적으로 공급받았다면 계획 정전과 같은 사태로 번지지는 않았을 텐데요, 왜 전력을 공급받지 못했을까요?

문제는 도쿄전력에 있었습니다. 간사이 전력을 비롯한 다른 곳의 전력 주파수와 도쿄 전력의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공급받기 어렵다고 합니다. 전압이나 전류라는 용어는 알아도 전력 주파수라는 개념은 조금 생소하실 텐데요, 전력 주파수는 전력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발전소에서 만드는 전기의 주파수는 60Hz/s입니다. 그러니 공장이나 가전제품 모두 60Hz/s에 맞게 제작해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주파수의 편차가 크면 과열 같은 문제가 생겨 가전제품이 쉽게 고장난다는군요.

한국전력이 기준으로 삼은 양질의 전기는 '일정한 전압, 일정한 주파수, 무정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와 다릅니다. 관동지역은 50Hz/s를, 관서지역은 한국과 같은 60Hz/s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관동지역 후쿠시마에 전력을 공급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군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변전소 설비를 갖추고 있긴 하나, 그 용량이 적어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국가에서 전력 관리를 총괄하지 않고 민영회사에 맡겼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봅니다. 일본은 그동안 동, 서를 구분하여 관리해왔습니다(일본 철도 JR도 동과 서로 나뉘어 있음). 이런 관례가 전력 표준화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았다 싶습니다. 일본 원전 사태는 국가 기간 산업을 민영화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는지를 극단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최근 한국도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원전 사태로 민영화 문제를 타산지석으로 삼야야 할 듯합니다.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일본은 이번 대지진으로 엄청난 일을 겪었습니다. 지진해일이라는 자연재해는 막기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원전 사고는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영화된 전력 공급회사는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 급급했으며,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을 지기는커녕 어처구니 없는 행동으로 국가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하게 되는 인재로 발전되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부는 경쟁력 강화와 효율성이라는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많은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일본 국민은 대재앙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뉴얼 강국이라는 일본도 피하지 못한 대자연의 힘을 한국이라고 피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습니까. 이명박 정부의 국가적 위기 관리 능력은 천안함 사태, 연평도 사태, 구제역 파동 등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음을 만천하게 드러냈습니다. 
이제 우리가 풀 숙제가 남았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의 후손을 위해 우리는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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