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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논란, 무엇을 의미하나?

by 생각비행 2020. 6. 26.

지난 23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기막힌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를 그만두라는 청원이었는데요. 하루 만에 20만 명이 동의할 정도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청원은 소위 취준생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었다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화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해프닝입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며 1900여 명의 보안검색 요원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온 게 원인이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청원인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들어가려고 스펙을 쌓고 공부하는 취준생들, 현직자들이 무슨 죄냐면서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게 해주는 게 평등이냐고 항의했습니다. 취준생들은 인천국제공항에 들어가려고 대학 나와 수년을 공부하고 있는데 누구는 알바하다 정규직이 된다며 억울한 감정을 표출했습니다. 그러면서 청원인은 이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취준생에 대한 역차별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발했습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이번 해프닝은 출처가 의심스러운 소스에서 나온 글이 애초 원인이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취준생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글은 오픈카톡방에 올라왔습니다. 이번에 정규직이 된 알바생들이 우린 대학 등록금에 5년이란 시간 그냥 벌어서 개꿀이다, 취준생들은 왜 공부하고 대학 가나 몰라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애초에 이게 진짜 정규직이 된 사람이 쓴 글인지, 정확한 출처가 어디인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습니다. 오픈카톡방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방이기 때문이죠.

 


출처 - 경향신문


 

항공보안법상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이번에 직고용을 하겠다고 발표한 보안검색, 공항소방대, 야생동물통제 등의 분야는 애초 알바생이 일할 수 있는 직군이 아닙니다. 항공보안법이 정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협력사 직원이 되려면 법에 정해져 있는 훈련 지침과 교육 등을 이수하고 국토교통부 인증평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안검색 분야의 경우 현장에서 단독으로 일하려면 입사 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례로 제1터미널 근무 중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통계를 낸 결과 3년 이상 근무한 이들이 72%가 넘었습니다. 10년 이상 근속한 사람도 17%에 달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알바생은 누굴 지칭하는 걸까요? 가짜뉴스를 만들고 퍼뜨리는 알바생들을 말하는 걸까요?

 

 

출처 - 연합뉴스 TV

 


연봉에 대한 논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 직고용된 비정규직들은 고용안정성 측면에서 상황이 나아졌을 뿐, 연봉은 그대로입니다. 취준생들이 그렇게 들어가고 싶다던 인천국제공항공사의 5급 대졸 신입사원 초봉은 2019년 기준 4589만 원입니다. 전체 직원 평균 보수는 8398만 원에 달합니다. 높은 보수와 고용안정성 덕분에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공기업 1위입니다.


출처 - 뉴스타파


 

그렇지만 이번에 직고용되는 보안검색 노동자의 연봉은 인천국제공항공사 평균 연봉의 절반도 안 되는 3630만 원입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항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폭발물 처리반도 비정규직 신세입니다. 공항에 널려 있는 카트를 정리하는 노동자들은 쉴 틈 없이 일하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야간에는 몸을 누일 자리 하나 없이 일해도 최저시급 수준의 임금만 받습니다.

 


출처 - MBC


 

이번에 청원을 올린 사람을 비롯해 가짜뉴스에 애먼 불만을 터뜨린 취준생들 중에 남들의 절반도 안 되는 연봉에 위험하고 고되지만 비정규직에 최저시급인 일자리에 가고 싶었던 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불만을 제기한 취준생들치고 이런 일자리를 원해서 대학 가서 취업 준비하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근본적으로 노력과 성과의 기준이 공채, 시험, 학벌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출처 - YTN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논란은 클릭질 장사를 위해 가짜뉴스와 선동을 아무런 검증 없이 그대로 실어나른 기레기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취준생들, 공항의 기존 직원들, 그리고 나아가 우리 모두의 의식이 드러난 직업의 귀천 의식과 계급에 대한 욕망은 참 부끄러운 것이 아닌가 싶어 생각이 깊어집니다. 사무직으로 펜대 굴리는 사람은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보다 연봉이 높아야만 하고 직급도 더 높아야만 하는 걸까요? 비정규직이 감히 정규직이 되는 걸 넘보면 안 되는 걸까요? 학벌을 타파하자면서 대졸자의 취준은 고졸자의 취준보다 존중받아야만 하는 걸까요? 더러운 세상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런 질문 앞에 얼마나 떳떳합니까?


출처 - 연합뉴스


 

자기 밥그릇을 챙기고 걱정할 수밖에 없는 취준생의 어려움을 잘 압니다. 하지만 세상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면 어떤 선동에 놀아날 수 있는지 이번 논란에서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심지어 이번 논란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취준생의 밥그릇을 침해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한편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기존 정규직 노조가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노동자와 협의 없는 일방적 정규직 전환이란 반발 속에 직고용 직원 수가 한꺼번에 늘면서 앞으로 주도권 싸움을 우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번 정규직 전환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진정까지 국가인권위에 접수되는 등 외부의 비판도 계속되고 있죠. 을들이 연대하기는커녕 기득권, 주도권 다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갑의 횡포, 을의 일터》의 저자는 을이 재생산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청사회에서 을은 이중의 착시효과를 통해 재생산된다.
을은 자발적으로 각자도생하는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남는다.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간파한 것처럼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의 성과사회에서는 성과주체인 개인은 자기를 착취하면서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려고 매진한다. 이러한 자기 착취의 동력은 할 수 있다는 믿음, 즉 긍정성의 과잉이다. 할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부정된다. 모든 개인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결국 자기 탓이다.
이 시대의 을들은 성과주체로서 성공도 실패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고 책임이라 믿으며 끊임없이 앞만 보고 내달린다. 을들은 학교나 회사 같은 조직에서 성적이나 성과로 서열을 매기는 무한경쟁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집단 전체가 그저 맹목적으로 앞으로만 내달리다가 절벽에 떨어져 죽고 마는 아프리카의 스프링폭스라는 산양들처럼.
만약 ‘을’이 옆에 있는 다른 ‘을들’을 마주 보고 함께 조직을 이루거나 연대한다면, 그래서 을들이 질주를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 하청사회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하청사회에서는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여전히 굴러가고 있다.

 

 

취준생들은 무한경쟁 시대에서 어떻게든 나만 정규직이 되려고 하기보다 주위에 있는 사람이 함께 일할 동료일 수 있다는 연대의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기존 직장인들도 사내 경쟁에서 이겨서 살아남는 승리자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정규직일 수 있는, 그리고 나아가 정규직/비정규직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사회, 누구나 일한 만큼 같은 임금을 받고 같은 대우를 받는 사회를 꿈꿔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사회를 취준생에게 물려주지 못한 기성세대는 책임을 통감하고 사회의 변화를 위해 더 힘써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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