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2일, 전태일 열사 49주기를 하루 앞두고 서울 청계천 전태일다리에 민주노총이 모였습니다. 1970년 국가와 기업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외침을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은 2020년 11월 전태일 열사 50주기까지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작은사업장 노동자 권리찾기에 돌입한다고 밝혔습니다. 대기업은 구색이나마 근로기준을 갖추고 있지만 노동자의 절대다수가 근무하고 있는 중소기업 등 작은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노동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근로기준법이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차별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이유 따위 없습니다.
출처 – 노동과 세계
부당한 노동 현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국제노총(ITUC)의 세계 노동권지수(Global Rights Index)가 가장 낮은 나라로 우리나라는 6년 연속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한국은 2014년부터 연속 5등급을 받았는데 5등급은 세계에서 노동권이 가장 취약한 국가를 말하며, 법에 권리가 명시돼 있지만 노동자는 이런 권리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독재정권과 불공정한 노동 관행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라고 하죠. 국제노총의 세계 노동권지수 최저 등급은 우리나라보다 한단계 더 아래인 5+ 등급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총 6단계인 것이죠. 하지만 5+ 등급은 내전이나 군대 점령 상황으로 노동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에 해당합니다. 나라꼴을 갖췄다면 우리나라가 받은 5등급이 최하위 등급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민영화 반대파업 노동자 대규모 해고,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징역형 등이 우리나라가 5등급을 받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출처 - 전태일재단
이런 열악한 노동 환경에 의한 피해는 한국 국민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미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일하기 시작한 지 12일밖에 안 된 20대 네팔 이주노동자가 조형틀에 깔려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6월에는 광주 서구의 한 호텔 공사장 13층에서 베트남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고 7월에는 목동 빗물 펌프장 수몰사고로 미얀마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9월에는 경북 영덕의 오징어젓갈공장 폐기물 지하 탱크에서 이주노동자 4명이 질식사하기도 했죠.
출처 - 서울신문
막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안전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안전 조치가 미비한,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현장에 고용되어 일하기 때문에 이런 사고들은 예정되어 있던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안타까운 죽음을 마주한 우리 사회의 변화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인 박영선은 내년부터 적용되는 주52시간제 확대 시행과 관련해 사과 아닌 사과를 해 구설에 올랐습니다. 본인도 본회의장에서 주52시간제 확대시행에 찬성 투표를 했는데 지금은 국회에서 좀 더 심도 있는 논의를 했어야 했다며 이를 반성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아울러 연구개발 등 창조적인 일을 하는 연구소나 방송사 등에서 하루 8시간이라는 근무시간을 지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며 이런 부분에 예외규정을 두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이런 소리를 공개석상에서 한다는 건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자유한국당은 거론할 가치가 없죠. 주52시간제 보완책이라며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을 만지작거리면서 유연근로제의 추가 확대까지 논의하고 나서면서 노동계와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탄력근로제를 막아야 할 판국에 자유한국당은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며 선택근로제 확대와 특별연장근로 기준 완화까지 요구해 경총의 나팔수임을 자인했습니다. 오래 일하기만 하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둘째 치더라도, 원래 의미에서 한참 벗어난 유연근로제까지 꺼내 노동자를 갈아넣어 기업을 위하겠다는 저의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아연실색하게 됩니다.
출처 - 뉴시스
민주노총이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전태일 열사 49주기 전날, 고 김용균 씨는 '법적으로' 사망자가 됐습니다. 충난 태안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망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용균 씨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위험의 외주화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한 도급 제한과 안전조치 위반 사업주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이른바 김용균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지난해 12월 10일 사망한 지 338일 만에 김용균 씨는 법적으로도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출생신고를 했던 어머니는 아들의 사망신고도 자신의 손으로 해야만 했습니다. 아들의 이름이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던 어머니는 아들의 사망과 관련한 진상규명만 됐지 책임자 처벌 등 문제 해결은 아무것도 된 것이 없다며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49년 전 근로기준법 준수를 바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가 있었지만 노동 현장은 고 김용균 씨의 죽음이 시사하듯 위험의 외주화와 노무비 착복 같은 노동자 착취 행태가 횡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출처 - 경향신문
정부는 지난 9월 24일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 비준안을 의결했습니다. 1991년 ILO 가입후 핵심협약 8개 중 4개만 비준했었는데 이번에 나머지 결사의 자유 협약과 강제노동 금지 협약까지 모두 의결한 것입니다. 이 협약과 충돌하는 노조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도 모두 개정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국회에서 의결이 되어야 최종 효력이 발생하는데 자유한국당과 재계는 반대로 일관하고 있죠. 내년이면 전태일 열사 50주기입니다. 전태일 열사와 그 뒤를 이은 노동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날은 대체 언제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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