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노동 권하는 사회에서 벗어나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21년부터 지하철 탑승 시위를 해오고 있습니다. 2006년 1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이 시행되었으나 장애인 이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 보강 노력이 미흡한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이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누리는 사회는 모두에게 이로운 사회입니다. 그런데 장애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다룬 언론 기사를 보면 부정적인 댓글이 넘쳐납니다. 일상에서 불편하고 불쾌했던 경험이 반영된 결과겠지만 장애인 관련 이슈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문제에서 약자가 약자를 비방하고 손가락질하는 일이 만연하다면, 그 사회는 ‘해석노동’에 길든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해석노동은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판단하려는 습성이며, 나를 타자에게 대상화하여 스스로 타자에게 종속시키려는 성향이 습성화된 심리노동을 뜻합니다. 조직에서 상급자는 하급자의 존재감을 의식하지 않지만, 하급자는 상급자의 지시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상급자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며, 상급자의 기분을 살피기 일쑤입니다. 

2017년 5월 이른바 ‘노 룩 패스(no look pass)’ 논란이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이 입국할 때 공항에서 대기 중이던 관계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캐리어를 휙 밀어 넘기는 갑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노 룩 패스 당사자는 가방만 건네면 그만이었겠지만 해석노동자는 캐리어가 굴러서 올지, 손으로 건네질지, 김무성 의원의 동태를 주시해야 했습니다.

크리스티안 케이서스는 ‘거울뉴런’을 발견함으로써 사람이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은 인간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인입니다. 하지만 해석노동을 강요하는 문화가 강한 조직에서는 공감을 악의적이고 전략적으로 해석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구로 삼을 위험성이 상존합니다. 경쟁이나 서열을 중시하는 조직에서 공감의 노력이 좀처럼 아래를 향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권위에 대한 복종과 순응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해석노동에 익숙해지면서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사고가 편협해지기 쉽습니다. 해석노동을 수행하는 당사자는 해석노동의 수혜자인 상급자를 비판하기보다 자신보다 약한 동료나 하급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불합리한 행태를 그대로 전수합니다. 해석노동이 작동하는 구조에서 가장 두려운 지점이지요.

《해석노동》은 해석노동의 개념을 제시하고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해석노동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1장에서는 해석노동의 개념을 소개합니다. 2장에서는 일상에서 해석노동을 유발하는 사례를 다루고, 해석노동을 조장하는 여건을 확인해 봅니다. 3장에서는 공감을 통해 해석노동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모방이며, 해석노동의 확산이 인간의 공감력을 발판으로 이루어짐을 설명합니다. 공감의 어두운 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죠.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공감 격차에 관해 설명합니다. 해석노동 수혜자와 해석노동자 사이에는 공감 격차가 존재합니다. 하급자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그 입장에 서본 경험이 없는, 해석노동의 수혜자일수록 꼰대거나 갑질을 하는 사람일 가능성 농후합니다.

해석노동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상급자에 대한 심리적 동조를 통해 동료나 하급자에게 불합리한 책임을 전가하거나 동료 간에 반목이 형성되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조직은 해석노동을 경감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고, 개인은 해석노동을 단호히 거부할 때 심리적 마취 상태에서 각성할 수 있습니다.
  

 

지은이 

양정호
정책학 전공, 행정학 박사. 중앙대 행정대학원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에서 송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전공의 영향으로 사회과학 및 산업재해와 관련한 노동 문제를 주로 고민하면서 공부하고 있다.
연구 논문으로 〈조직의 엔트로피식 처방에 대한 시스템 사고 분석: 산업재해 신속보상을 중심으로〉, 〈전문가 의사결정의 인지적 인과지도에 관한 연구: 세월호 참사 구조 과정을 중심으로〉, 〈정책 딜레마 해소 도구로서의 특례제도 형성 연구: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적용 특례제도를 중심으로〉,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제도의 확장을 위한 제언〉 등이 있고, 저서로 《하청사회》, 《문명사회? 문맹사회!》(공저), 《인구 전쟁 2045》(공저) 등이 있다.

 

차례 

책머리에

1 해석노동이란 무엇인가
해석노동의 개념
소드방놀이
해석노동과 감정노동 
해석노동과 눈치 

2 일상 속 해석노동
학폭과 부대 내 가혹행위 
과잉 해석노동자 이근안 
노동조합과 해석노동 
조직 내 성적 괴롭힘 
해석노동 수혜자의 노 룩 패스 
대학의 서열〓미래의 서열
학벌주의라는 경쟁 필드의 낙오자 특성화고교생
은폐되는 산업재해
〈금쪽같은 내 새끼〉 속 해석노동
의전이라는 노동
해석노동으로 바라본 최저임금 인상 논란
‘불쉿 잡’과 해석노동
해석노동과 성인지 감수성

3 공감과 해석노동
공감의 원리
공감의 양면성 
공감의 수단인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공감의 어두운 면 
해석노동 권하는 공감 
조직에서 공감의 의미 

4 해석노동에 맞서기
젊은 리더의 늙은 갑질 
이명박과 문재인의 공감 격차 
각성한 시민과 새로운 리더의 출현을 기원하며 

세밑한파와 함께 2018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연초에 계획한 바를 다 이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비행이 주목한 일들을 중심으로 2018년을 정리하며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출처 - JTBC


적폐의 9년을 청산하고 신년을 맞이하는 마음 : https://ideas0419.com/789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사실상 파기, 이제 다시 시작! : https://ideas0419.com/792


2018년의 시작은 적폐청산이 포문을 열었습니다. 새해가 되자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적폐 중 하나이자 온 국민에게 큰 모욕감을 안겼던 12.28 한일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파기되었죠. 우리나라 정부가 알아서 엎드린 이면 합의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제2의 한일협약이라는 비유가 비유가 아니게 되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출처 - JTBC


이명박 일가를 향하는 검찰의 칼끝 : https://ideas0419.com/800

이명박, 검찰 가는 길 : https://ideas0419.com/821

이명박 “내 전 재산은 집 한 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 https://ideas0419.com/872

다스는 넉넉히 MB의 것 – 1심 판결을 보는 우리의 자세 : https://ideas0419.com/886

박근혜 징역구형과 이명박 검찰 소환이 의미하는 것 : https://ideas0419.com/814

최순실 징역 20년, 국정농단 심판 이제부터 시작이다! : https://ideas0419.com/804


연초의 가장 큰 이슈는 다스의 주인이 이명박으로 밝혀졌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일가를 향하던 검찰의 칼끝이 드디어 혐의들을 잡아내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연루자들을 잡아넣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박근혜는 징역 33년, 이명박은 징역 15년을 받은 상태로 항고 중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이재용 집행유예 – 재벌의 3.5 법칙은 아직도 통하는가? : https://ideas0419.com/801

다스 소송비 대납으로 특별사면 거래한 삼성 : https://ideas0419.com/807

문제는 재벌 개혁! 삼성 분식회계 사건을 보는 시선: https://ideas0419.com/836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 결론, 핵심은 삼성 경영권 승계 문제 : https://ideas0419.com/897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유지, 결국 또 삼성 봐주기인가? : https://ideas0419.com/905


하지만 이런 적폐청산의 흐름 속에서도 삼성의 이재용은 집행유예로 석방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삼성공화국임을 방증하는 사건은 또 있었습니다. 이재용의 삼성그룹 승계를 위한 고의 분식회계로 상장이 중지되었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19일 만에 주식거래가 재개되어 재벌개혁의 길이 멀고도 험하다는 씁쓸한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죠.


출처 - 더 팩트


반복되는 재벌의 갑질, 우리의 대응은? : https://ideas0419.com/831

최저임금법 개정안 논란, 노동계 목소리 경청해야! : https://ideas0419.com/843

최저임금을 둘러싼 을들의 전쟁 : https://ideas0419.com/858

위기의 한국 경제?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 https://ideas0419.com/870

굴뚝 위에서 맞이한 크리스마스, 최장기 고공농성 언제 끝날까? : https://ideas0419.com/910


어디 삼성뿐이겠습니까? 한진그룹 산하 대한항공 조현아의 갑질을 시작으로 올 한 해도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의 갑질에 대한 사회적 폭로가 이어졌습니다. 재벌과 결탁한 보수 언론은 최저임금제와 소득주도성장에 흠집을 내기 바빴지만, 정작 한국 경제를 망치고 있는 주범이 누구인지 삼척동자도 똑똑히 알 수 있는 한 해였죠.


출처 - Psychology Today


미투(#MeToo) 운동의 확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 https://ideas0419.com/803

혜화역 시위와 낙태죄 폐지, 여성 인권 신장 계기 되길 : https://ideas0419.com/840

안희정 1심 무죄 판결을 보는 우리의 자세 : https://ideas0419.com/868

82년생 김지영 영화화로 더 선명해진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 https://ideas0419.com/877

2018년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본 책, 82년생 김지영 : https://ideas0419.com/909


2018년의 화두이자 시대정신이라고 할 만한 사건은 미투운동에서 촉발된 페미니즘의 확산입니다. 검찰 내부의 성폭력, 성추행이 폭로되어 사회 전반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다양한 여성 혐오 사건은 수많은 여성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은 출판계에 오랜만에 등장한 밀리언셀러가 되었고 대출 순위 역시 1위를 기록하는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성주의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대한 백래시 등이 더해져 성별 간 논란이 증폭되었지만, 이는 대한민국이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제3차 남북정상회담 성공리에 이루어지길! : https://ideas0419.com/816

4.27 판문점 선언, 이대로 평화협정까지 이어지길! : https://ideas0419.com/835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세계평화의 길 여나? : https://ideas0419.com/845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과 6.13 지방선거 결과를 보는 자세 : https://ideas0419.com/847

한눈에 보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 통일로 미래로! : https://ideas0419.com/878

남북 철도 공동조사 – 분단 이후 처음으로 두만강까지 달린다 : https://ideas0419.com/902


한편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남북/북미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전쟁 위기론이 고개를 들었는데,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급진전된 남북/북미 관계가 평화협정으로 이어진다면 유라시아 철도를 통해 한반도와 대륙이 연결되어 대한민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초석이 되겠지요. 번영은 평화라는 토대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 밖에 알라딘 창작블로그와 다음 아고라가 서비스 종료를 선언하고 실버 세대가 유튜브의 주요 이용자가 되는 등 미디어 환경의 급변을 체감하는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과연 2019년은 우리에게 어떤 한 해로 다가올까요? 힘들었던 기억과 나쁜 기억은 모두 과거에 남겨두고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2019년에도 생각비행은 좋은 정보를 공유하며 사회에 필요한 책을 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관심으로 함께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인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국세청이 개혁의 첫 타깃으로 갑질의 온상이었던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를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공정위가 BBQ 치킨을 대상으로 고강도 사정의 칼을 뽑아 들자 치킨값 인상을 바로 철회하기도 했죠. 한편 검찰은 20대 여직원을 강제로 추행한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의 최호식 회장과 갑질 및 횡령 논란이 있는 미스터피자의 정우현 회장에 대한 수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최 전 회장은 지난달 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일식집에서 20대 여직원 A 씨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혐의(강제추행)와 이후 A 씨를 강제로 호텔로 데려가려 한 혐의(체포)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 전 회장이 피해 여직원과 3억 원에 고소 취하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죠. 지난 21일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해 합의한 것이 아니라 사업 매출상 불이익 등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어쩔 수 없이 합의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성추행은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있어야 조사할 수 있는 친고죄가 아니라는 입장에서 경찰은 조사를 진행하여 지난 23일 강제 추행 등의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동종 전과가 없고 합의가 이뤄져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구속영장을 반려하고 불구속 수사하도록 지휘했습니다. 이에 경찰은 보강 수사를 거쳐 지난 28일 기소의견으로 최 전 회장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있는 자들의 갑질은 우리 사회에 깊고 넓게 박혀 있어 힘겨운 싸움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출처 - JTBC


한편 피자업계에서 유명한 미스터 피자의 정우현 회장은 가맹점에 치즈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동생 아내 명의로 된 회사를 끼워 넣어 50억 원대의 '치즈 통행세'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부당한 갑질에 항의해 탈퇴한 가맹업자들에게는 치즈 구매를 못 하게 방해하고 인근에 직영점을 개설해 덤핑 공세로 보복 출점을 한 혐의도 받고 있죠. 이뿐이 아닙니다. 정 회장은 미국 국적인 딸을 비롯해 친인척을 그룹 직원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30~40억 원대의 급여를 받게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 회장은 현재 배임, 횡령 등 총 100억 원이 넘는 금액에 대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서울대도 갑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대학과 대학원 역시 위계와 위력에 의한 갑질이 일어나기 참 쉬운 장소입니다. 지난 4일 서울대 2017년 2학기 강의계획 명단에 H 교수의 전공 수업 강의 시간과 장소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가 학생들에게 갑질과 폭언을 일삼은 사실이 확인돼 지난달 학교 인권센터로부터 정직 3개월의 중징계 권고를 받은 사실이 있고, 학생들과의 분리 조치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서울대 측은 징계위원회가 최종 징계 결정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버젓이 강의계획을 잡아줬습니다. 3개월 정직은 파면, 해임 다음으로 무거운 중징계입니다. 이미 확인된 사실까지 애써 무시해가면서 제 식구 감싸기에 열을 올리는 당국의 모습이 참 가관입니다.


출처 - 일요신문


전국 단위의 크고 높은 곳만 갑질을 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청년창업 성공신화로 잘 알려진 농수산식품유통업체 '총각네야채가게'의 갑질이 폭로되었기 때문입니다. 총각네야채가게의 이영석 대표는 직원 및 가맹점주들에게 폭언 및 강압을 일삼은 것은 물론 보복출점과 물품 밀어넣기 등 가맹점에 할 수 있는 온갖 갑질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대표는 트럭 행상으로 시작해 맨주먹 성공신화를 이뤄낸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죠. 그의 일대기가 드라마와 뮤지컬 등으로까지 제작되기까지 했습니다. 밑바닥부터 올라온 그가 자신을 믿고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대기업 프랜차이즈식 갑질을 벌여 파산시켰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총각네야채가게 사건은 우리 사회에 갑질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게 해주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갑질' 하면 대한민국 국회가 빠질 수 없겠죠. 지난 3일 국회 설비과는 직원 내부게시판에 의원회관 승강기 이용 안내문을 올려 청소 노동자들이 작업할 때나 물건을 옮길 때 비상용 승강기를 이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의원회관 내 비상용 승강기는 전체 26대 승강기 중 4대에 불과합니다. 신문 배달같이 청소 노동자들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줄이 늘어서 청소 노동자들의 작업에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게 됩니다. 시행 이틀 동안 실제로 그랬다고 하죠.


출처 - 오마이뉴스


그나마 익명의 자보에서 국회의 갑질을 조금이나마 희석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승강기 갑질 논란이 알려지자 국회 내 과반수의 엘리베이터에 위와 같은 자보가 붙었습니다. A4 크기의 용지에 의원실을 위해 애쓰는 노동자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며 엘리베이터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어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든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는 말도 함께 적었습니다. 표창원 국회의원을 비롯한 여러 국회의원이 승강기 자보에 호응했습니다. 결국 국회 설비과는 청소 노동자들에게 비상용 승강기만 사용하라던 갑질 공지를 삭제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최근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횡포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면서 가맹사업법의 형사처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처리한 가맹사업법 위반 행위는 총 407건이었으나 형사 처분 중 하나인 고발 결정이 내려진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합니다. 과태료 부과가 108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고 42건, 시정명령 40건 등이었다고 하죠.


유명무실했던 공정거래위원회가 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취임하면서 프랜차이즈의 갑질을 뿌리 뽑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맹본부와 점주 사이 계약 내용을 폭넓게 공개하는 정보 공개를 통해 시장과 사회가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만들고, 가맹점주들이 모인 사업자 단체의 역할 강화를 통해 가맹본부와 협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서울경제

 

《서울경제》 보도에 따르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선두로 재벌개혁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갑질’과 관련한 분쟁조정 처리 건수가 급증했다고 합니다. 올해 상반기 분쟁조정 건수는 1242건으로 971건이었던 전년 동기에 비해 28퍼센트 증가했고, 접수된 건수도 1377건으로 2016년(1157건)보다 19퍼센트 늘었습니다. 분쟁조정이 성립된 사건은 모두 644건으로 피해구제 성과는 414억 원에 달했습니다.


처리 건수가 많이 늘어난 분야는 일반 불공정거래 분야와 프랜차이즈 등 가맹사업 거래 분야였습니다. 가맹사업 거래 분야 처리 건수는 356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52퍼센트 증가했고, 접수 건수도 처리 건수와 같은 356건으로 26퍼센트 늘어난 수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공정거래조정원 관계자는 "경제·사회적 약자 보호가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가맹점주 등 영세 소상공인들이 갑을 간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경향이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 전역에 깊숙이 박힌 갑질 행태를 단속만으로는 근절하기 어렵습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사회적 연대와 참여가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갑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을들은 국회 승강기에 붙은 자보의 문구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미안한 마음 절대 가지시면 안 됩니다." 을들이 연대하여 필요한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을 기억하는 1주기 추모식이 지난 지난 5월 28일 있었습니다. 하루 12시간 2교대라는 살인적인 근무에 쫓긴 스무 살이 채 안 된 하청노동자의 유품 가운데에는 컵라면 하나가 있었습니다.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던 그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이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죠.

 

출처 - 오마이뉴스

 

사실 김군의 죽음은 예상치 못한 참사가 아니었습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하청사회》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김군 사망사고 1년 전 강남역에서도 비슷한 사망사고가 있었습니다. 원칙적으로 스크린도어 점검은 2인 1조로 진행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김군처럼 한 사람이 담당하고 있었죠.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점검 업무를 수주한 하청업체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극도로 인력을 축소한 상태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2인 1조 점검이란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구의역 지하철 사고와 관련한 기본 근로 조건을 보면, 49개 역사의 스크린도어를 관리하는 직원은 6명으로 1명당 5개 역을 담당하는 셈입니다. 하나의 역을 점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개 두세 시간인데 반해 하루 평균 고장 신고는 40여 건에 달했습니다. 여름철과 겨울처럼 온도가 급격히 변하는 계절에는 최대 하루 200여 건 가량의 신고가 접수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서울메트로는 유사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며 비정규직 근로자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서울시와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구의역에서 김군 혼자 스크린도어 점검 작업을 하고 있을 당시 서울메트로에서는 김군이 작업 중이라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청사회에서는 힘없는 을들에게 이러한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갑이 비용 절감을 위해서 시행하는 외주화란 결국 ‘위험의 외주화’를 포함하거나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청년 김군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서울시에서 8월까지 서울교통공사 등 투자출연기관에서 근무 중인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개선했다는 게 고작 고용기간만 연장하고 처우는 비정규직 그대로인 무기계약직이어서,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중규직'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죠.

출처 - 경향신문

 

'위험의 외주화'는 지하철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도처에는 위험을 하청업체로 떠넘기는 외주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1주기 추모 행사가 있던 지난 5월 1일에는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면서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사망한 작업자 6명은 모두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이었고, 중경상을 입은 25명 역시 대부분 협력업체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정규직 근로자가 휴식하는 법정공휴일에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쉬지 못하고 근무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죠. 또한 5월 20일에는 인천공항에서 변전설비 정기점검을 하던 부산지하철공사 소속 간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 3명이 감전사고로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우리 사회 노동의 현주소가 드러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재난의 현장에 본청의 정규직은 존재하질 않습니다.

 

출처 - JTBC


첨단산업에 속하는 스마트폰 제조 현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전자, LG전자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젊은이 6명이 업체의 관리 소홀과 보건 조치 미흡으로 생산공정에서 쓰는 독극물인 메탄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시각을 잃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 노동자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불법 파견이기까지 했습니다. 앞날이 창창한 20대가 시력을 잃은 것만이 아나라 심한 경우 뇌손상까지 입었다고 합니다.

 


출처 - JTBC

 

지난 6월 9일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총회에서는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실무그룹이 조사한 국내 대기업들의 인권 침해 현황을 담은 보고서가 제출되었습니다. 유엔 측은 메탄올 피해자 사례와 노조 탄압 등을 언급하며 원청 대기업들이 인권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6명의 노동자가 시력을 잃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사이 본청의 정규직들은 과연 어떻게 지냈을까요? "이게 나라냐?" 싶을 정도로 별탈 없이 지냈습니다.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건의 경우 크레인 신호수로 일한 1명만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을 뿐 원청업체 관련자에 대한 영장은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스마트폰 공장 메탄올 실명 사건의 1심 판결은 불과 일주일 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 중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6명이 눈을 잃고 뇌 손상을 입었지만 불법 파견과 메탄올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실명의 책임이 있는 업체 사장까지 모두 집행유예와 수십 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불법 파견사업주들도 집행유예에 끽해야 벌금 100만 원이 다였습니다.

 

6명이 앞을 보지 못하는 채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제대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는 이상한 노동 현실이 계속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이기에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제도와 장치를 불합리한 규제라고 우기는 기업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뉴시스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 자리에서 영상메시지를 통해 제도는 물론 관행까지 바꿀 근본적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산업 현장의 위험을 유발하는 원청과 발주자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외주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원청과 발주자의 책임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긴 하나, 이런 내용은 다른 정권에서도 한 적이 있습니다. 말보다 실행이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산업재해를 당하는 노동자 중 하청업체 노동자 비율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인 만큼,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사람이 먼저다'라는 그들의 슬로건을 실행으로 증명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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