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미지가 사실 자체보다 더 큰 진실을 드러낸다"
1953년 3월 2일 밤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이 쓰러졌습니다. 심각한 뇌졸중의 고통이 그의 육체로 퍼져나갔고 측근들은 하나둘 긴급히 모여들었죠. 쓰러진 절대 권력자의 모습을 보며 그들은 극도로 혼란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어요. 모인 측근 중 누구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스탈린을 재빨리 치료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스탈린 주위에서 우리는 전부 집행유예 중이나 다름없었다.”라는 흐루쇼프(당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 스탈린 사후 공산당 서기장)의 고백처럼 스탈린은 측근 대부분을 숙청 대상자로 위협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공포 상황에서 최고 권력자가 쓰러졌으니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상상이 가시죠? 그들은 일부러 아무런 처치도 하지 않은 상태로 스탈린을 장시간 방치했습니다. 뒤늦게 공포에 떨며 도착한 의사들은 스탈린을 살리기 위한 어떤 조치도 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출간된 《스탈린의 죽음》은 스탈린이 쓰러지고 난 뒤 장례식과 그 이후의 권력 다툼을 함축적 언어와 강렬한 색채, 온갖 음모에 둘러싸인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들과 겁에 질린 얼굴들을 개성 넘치는 캐리커처로 드러낸 그래픽노블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파비앵 뉘리와 티에리 로뱅은 증명된 사실과 있음직한 일, 상상과 상징을 뒤섞으며 사실 일부를 바꾸고 전개 양상을 압축시켜 사건을 변주함으로써 스탈린 유혈통치와 크렘린궁을 둘러싼 암울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인상적으로 재창조했습니다. 때로는 사실 자체보다 강렬한 색채, 이미지 하나가 더 큰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으로 실감하실 수 있습니다.
"권력을 향한 광기를 포착한 그래픽노블"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이 죽어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스탈린 시대의 소련, 그가 쓰러지자 베리야, 흐루쇼프, 말렌코프 등 측근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를 시작합니다. 파비앵 뉘리는 이 잔인하고 광기 어린 암투의 한가운데서 시각적 스토리텔링으로 불길하고 불안한 시간을 함축적 언어로 포착했어요. 티에리 로뱅 역시 공포와 욕망으로 일그러진 군상의 모습을 강렬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들은 사실과 해석이 뒤섞인 장면들을 대사 하나하나, 그림 하나하나에 조화롭게 녹이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그들은 겁쟁이이며 술주정뱅이였던 스탈린의 아들 바실리를 무기력하게 그렸습니다. 독선적이고 야비한 베리야를 원숭이 얼굴로 묘사하여 혐오감을 일으키게 했고, 권력을 향한 욕망에 눈이 먼 측근들을 일그러지고 비굴한 얼굴로 표현했지요. 공포에 질식할 것 같은 표정의 군인과 평범한 사람들을 마르고 왜소하게 그리고, 혁명이 소수 엘리트의 아집과 탐욕으로 변질됐는지 모르고 지도자를 잃은 슬픔에 빠진 민중의 모습을 순박한 얼굴로 시각화했습니다. 많은 기사와 외교문서, 정치적 관례에 따라 쓴 역사서보다 사실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탄생한 이 한 권의 그래픽노블이 정확하고 깊이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만화는 역사의 깊이 있는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이를 재구성합니다. 만화에서 중요한 점은 사실의 정확성이 아니라 시각의 진실성입니다. 《스탈린의 죽음》은 사실에서 받은 영감과 파편화된 자료들을 기초로 자유롭게 구성하여 쓰러진 독재자 스탈린과 철권통치로 암울한 사회 분위기, 측근들의 권력을 향한 광기 등을 박진감 넘치게 연출하고 있어요. 이 책을 읽은 아만도 이아누치 감독(2009년 정치 풍자 영화인 〈In the Loop〉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으며 미국 정치 풍자 코미디 TV시리즈인 〈VEEP〉를 제작하며 유명해졌죠)은 "읽기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영화 버전을 만들고 싶어졌다"라고 고백했습니다. 2017년 그는 이 책을 원작으로 동명의 블랙코메디 영화를 만들어 토론토국제영화제 시사회에서 평단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누리꾼들로부터 많은 별점을 받았죠. 이 영화가 오는 4월 18일 〈스탈린이 죽었다〉라는 제목으로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의 원작인 《스탈린의 죽음》을 보는 순간 1953년 3월 소련의 두렵고 암울한 분위기에 빠져드실 겁니다. 최고 지도자 스탈린의 죽음을 둘러싼 배신과 광기로 혼란스러운 소련의 정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요. 강렬한 한 편의 첩보영화를 보는 느낌을 주는 이 책이 세부 사건보다 진실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저자
파비앵 뉘리
1976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크리스티앙 로시가 그림을 그린 인기 시리즈 《W.E.S.T.》에 공저자로 참여하며 만화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미국 만화가 존 캐서데이와 함께 작업한 《I Am Legion》 3부작을 포함해 15편의 그래픽 노블을 단기간에 성공으로 이끌었다.
티에리 로뱅
1958년 프랑스 담리에서 태어났다. 랭스 미술학교 재학 중 만화와 인연을 맺었다. 역동적인 레이아웃과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한 채색으로 자신만의 그래픽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파비앵 뉘리와 함께한 작품 《스탈린의 죽음》과 《차르의 죽음》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옮긴이
김지성
영어교재 출판사에 다니며 영어 원서를 즐겨 읽다가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스탈린의 죽음》을 번역하며 노동자, 농민의 열망이 만들어낸 혁명이 소수 엘리트의 아집과 탐욕으로 어떻게 변질됐는지 깨달았다.
김미정
이화여자대학교 불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불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현재는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파리의 심리학 카페》 《라루스 청소년 미술사》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찾아서》 《재혼의 심리학》 《알레나의 채소밭》 《기쁨》 《고양이가 사랑한 파리》 《미니멀리즘》 《페미니즘》 등이 있다.
차례
제1장 고통
제2장 장례식
발문
작품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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