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혜화역을 중심으로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붉은 옷을 입고 광장으로 나섰습니다. 내로라하는 노조 조직이나 즐거움을 위한 페스티벌도 만 명 정도가 모이기는 쉽지 않죠. 그런데 혜화역에 모인 이들은 SNS 등을 통해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모인 여성이었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남성이 피해자였던 홍대 몰카 범죄 수사의 편파성을 규탄하는 한편 한국 사회에서 성별에 따라 사건의 해결 방식과 걸리는 시간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현실에 대한 항의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때문에 모임의 대표 구호가 "남자만 국민이냐? 여자도 국민이다!"였습니다.
출처 - KBS
미투 폭로에 이어 이번 대규모 시위가 진행된 이유는 여성의 절박한 위기감과 평소에 느껴왔던 차별감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습니다.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몰카 범죄를 걱정해야 하는 여성들은 홍대 남성 몰카 사건처럼 누가 범인일지 뻔히 보이는 사건조차 접수가 힘들다고 토로합니다. 유명 유튜버 한 명도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에서 성추행과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런데 기사의 헤드라인은 여성이 찍혀도 몰카녀 사건, 여성이 찍어도 몰카녀 사건으로 달리는 현실입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질리지 않은 여성이 있을까요? 이번 혜화역 집회를 주도한 운영진들조차 한꺼번에 터져 나온 여성의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놀라워했고 최종적으로 1만 2000여 명이나 나와서 함께 시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최근 여성 인권에 대한 의식이 고양되고 사회적 변화가 조금씩 이뤄지기 때문인지, 오는 24일 낙태죄 헌법 위배 여부에 대한 공개변론을 앞두고 여성가족부가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정부 부처가 공식적으로 의견서를 내기는 처음입니다. 헌법재판소에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식 의견서를 제출한 것입니다. 여가부는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 형법이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 임신, 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재생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2년 헌재는 낙태죄에 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지만 당시 합헌 4, 위헌 4로 간신히 합헌 판결이 났던 만큼, 이번에는 위헌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습니다. 2017년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 약 합법화 및 도입을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한 바 있습니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현행 법제에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으며 이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에 왔다고 말하며 임신중절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보완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그런데 법무부는 이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 적용과 변화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법무부다운 입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유가 해괴합니다. 24일 공개변론을 앞두고 작성된 법무부의 변론요지서를 보면 이 논란을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전제하고 낙태를 원하는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을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폄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강간이 아닌 다음에야 남녀가 성교를 한다는 건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라는 말인데요. 법무부 입장은 한마디로 성교만 하고 책임은 안 지겠다는 점이 못마땅하다는 식으로 보입니다.
여러 부분에서 허점이 보이죠. 우선 조국 수석의 말대로 왜 그 책임을 낙태죄란 형태로 여자만 져야 하는가부터 볼 수 있겠습니다. 법무부의 말대로라면 임신은 여자와 남자의 공동 책임일 텐데 말이죠. 또한 1970~1980년대 산아제한, 특히 심각한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낙태된 여자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는 국가가 낙태를 조장했거나 적어도 보고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이 되는데 왜 생명권의 무게가 그때와 지금이 달라져야 하는 건지도 이상합니다. 나아가 산아제한처럼 임신과 출산을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통제하는 쪽으로 나아갈 여지가 있어 더욱 위험한 발상이기도 합니다.
출처 - KBS
오는 26일에는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성차별적 수사 규탄을 위한 시위가 다시 열린다고 합니다. 지난주보다 더 대규모 시위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사회는 개개인이 당하는 부당한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바뀝니다. 이 시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현실이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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