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민주주의를 확립한 국가인 영국에서 국회의원이 총과 칼에 맞아 죽는 일이 벌어져 지구 반대편에 사는 우리에게까지 큰 충격을 주었죠. 지난 6월 23일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를 앞두고 잔류를 지지하던 조 콕스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이 집회 준비 중 52세 남성의 테러로 숨졌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총격을 가한 후 잔인하게도 여러 차례 칼로 찔렀다고 하죠.
조 콕스 의원을 습격한 자는 살인을 저지른 후 "Britain first"(영국이 우선이다)를 외쳤다고 합니다. 'Britain first'는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를 지지하는 극우정당(영국 저항군)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 정당은 이 테러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으나, 적어도 살인자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광적으로 지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판에서 법원 서기가 이름을 묻자 "내 이름은 반역자에게 죽음을, 영국에 자유를"이라고 답했을 정도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조 콕스 하원의원 피습 사건 직후 브렉시트 찬반 진영 모두 캠페인을 전면 중단했으나 3일만인 지난 19일 재개했습니다. 대체 브렉시트가 뭐기에 민주국가의 의원이 살해당하고 온 세계가 예의주시하는 걸까요? 브렉스티를 두고 찬반 양쪽은 왜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는 걸까요?
출처 - 한국일보
사실 용어 자체는 간단합니다. 브렉시트는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입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현실 정치과 경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느냐 마느냐로 독일 경제성장률이 0.3퍼센트 감소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코스피는 2180선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합니다. 뉴욕증시는 하원의원 살해사건 후 브렉시트 반대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지자 우려 완화로 인해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이처럼 전 세계가 브렉시트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비롯한 브렉시트 반대파, 그러니까 영국이 EU에 남아야 한다는 측은 무엇보다 좋든 싫든 세계 각국과 긴밀하게 연결된 경제 문제를 걱정합니다. 캐머런 총리는 BBC 방청객 질의응답 프로그램에 출연해 브렉시트 시 영국 경제가 위축돼 세금 인상과 복지 축소 등 비상 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영국이 EU를 떠나면 재정에 구멍이 뚫리고 영국 경제에 심대한 타격이 올 것이며 이 여파가 그대로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주장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17일 보고서를 통해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내년 영국 경제는 0.8퍼센트, 3년 뒤에는 5.5퍼센트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프랑스 경제장관도 브렉시트가 일어날 경우 영국은 고립되고 보잘것없는 소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이탈리아 총리는 브렉시트를 투표에 부친 것 자체가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영국이 EU를 탈퇴할 경우 독일은 25억 유로를 추가로 더 부담해야 합니다. EU 전체적으로 4700억 유로의 국내총생산 감소가 예상된다고 하니 EU로서는 영국의 브렉시트 문제로 눈에 쌍심지를 켤 만합니다.
출처 - 노컷뉴스
이에 맞서 영국이 EU를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브렉시트 찬성파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을 중심으로 국토 안보와 이민자 문제 해결을 위한 결집을 주장합니다. IS로 인한 난민들과 테러로 전 유럽이 얼마나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지를 보면 가볍게 넘길 주장은 아닙니다. 존슨 전 시장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실은 기고문에서 EU에 잔류하게 되면 국경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게 된다며 남부 유럽에 몰려든 이민자들로 인해 그들이 얼마나 혼란에 빠졌는지 보지 않았느냐고 주장했습니다. EU에 남아 있는 한 EU의 결정에 따라야 하므로 영국의 국토 안보와 사회적 혼란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의 밀입국과 이민자 난민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출처 - 한국경제
최근 전 유럽을 휩쓴 극우정당의 득세처럼 브렉시트 찬성파의 의견에 힘이 좀 더 실리는 추세였습니다. 조 콕스 의원 피살 사건 이전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 의하면 브렉시트 찬성이 반대보다 3퍼센트 정도 앞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요?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한 광적인 테러리스트의 살인으로 인해 여론은 뒤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콕스 의원 피살 사건 이후 부동층이 움직이며 브렉시트에 반대하고 영국이 EU에 잔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목받으며 찬성보다 3퍼센트 앞섰습니다.
이제는 영국 언론들도 공개적으로 브렉시트 찬반 지지를 표명하며 국론이 양분되고 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와 《더 타임스》, 보수 성향의 《메일 온 선데이》 《옵서버》가 브렉시트 반대 EU 잔류를 공개 지지했습니다. 반면 《선데이 타임스》와 《선데이 텔레그래프》는 브렉시트 찬성 EU 탈퇴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브렉시트 반대와 찬성의 포인트 차가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1~3퍼센트포인트밖에 안 나지만 모든 여론조사 결과가 브렉시트 반대로 돌아선 것을 시점으로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끼칠 영향에 대한 보고서들이 힘을 얻어 브렉시트 반대가 조용히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16일 있었던 콕스 의원의 추도식에서 영국 사회는 21세기의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며 그를 기렸습니다. 캐머런 영국 총리, 코빈 노동당 당수, 외무담당 벤 의원 등 고위 인사들의 조문도 줄을 이었죠. 그동안 무한경쟁으로 치닫던 보수당과 노동당은 콕스 의원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수백 년 동안 여야가 따로 앉던 전통을 깨고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사당에서 여야 및 각 정당이 자리 구분 없이 섞여 앉았습니다.
한편 조 콕스 의원의 거주지가 템스 강에 있는 보트하우스인 것으로 알려져 세간의 관심을 증폭시켰는데요, 보트하우스는 보트를 개조해 강 위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집을 말합니다. 침실과 화장실은 물론 부엌도 있습니다. 영국의 보트하우스족은 3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원래 이런 보트는 부유층의 여름 별장이었으나 지금은 영국에서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중산층이나 젊은 세대들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방 두 개인 소형 보트하우스의 한 달 월세가 런던 시내 임대료의 절반도 안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콕스 의원이 살았던 커뮤니티는 소형 보트하우스와는 좀 달랐습니다. 콕스 의원이 5년째 살았던 공동체는 '허미티지 무링스'라고 하는데, 19척의 보트에서 50명이 함께 거주했다고 합니다. 템스 강변의 부유층 주거단지와 붙어 있는데 비영리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 공동체의 주민 의장인 앤 웨인라이트는 “조는 이곳에서 5년째 살고 있다. 운하 근처에서 살다가 첫째를 낳을 때 가족적인 분위기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고 전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콕스 의원이 살던 '보트 마을'은 현재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채 이웃들이 그의 보트하우스를 관리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살던 곳은 온통 꽃과 사진, 초, 추모글로 덮여 있습니다. 조 콕스 의원의 한 이웃은 "그는 30분이나 걸리는 의사당까지 항상 자전거를 이용했다"면서 "바빠도 이웃을 위해 시간을 내주고 힘들 때도 늘 미소를 잃지 않아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즐거움을 줬다"고 회고했다죠.
콕스 의원의 죽음은 브렉시트 찬성파들의 캠페인이 영국 국민과 이민자를 구분 짓고 편 가르는 데만 중점을 둔 것 아닌가 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도심의 의회광장에 마련된 추모소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글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단어가 '증오'였다고 합니다. 콕스 의원의 사진 앞에 "우리는 그녀를 죽인 증오에 맞서 단결해야만 한다"고 쓴 큼지막한 종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어떤 문제든 찬반양론으로 갈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조 콕스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의 죽음은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기고, 영국 국민은 브렉시트 찬반 투표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에 이어 브렉시트에 이르기까지 영국도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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