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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3분 권력분립 강의

by 생각비행 2015. 12. 28.

국회선진화법 주역이 직권상정을 요구하는 기막힌 현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모자라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인 삼권분립에도 마수를 뻗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지난 15일 정의화 국회의장을 직접 만나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지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나 노동5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법, 테러방지법 등의 직권상정을 요구했습니다. 일반 해고와 같은 독소 조항이 가득 담긴 하나같이 악법들인데, 국회선진화법 등으로 날치기가 어려워지자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하여 얼른 통과시키라고 종용한 것이죠. 

 

잘 아시다시피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낸 주역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예산안이 날치기 통과되고 국회에서 대립과 마찰, 폭력이 난무하하면서 여론이 등을 돌렸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당시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정치 쇄신안을 내놓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국회선진화법이었죠. 이 법안의 골자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정의화 국회의장은 새누리당 출신이면서도 선거법 단 하나만 직권상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나머지는 직권상정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그렇게도 직권상정을 원한다면 청와대에서 법적인 명분을 제시하라면서 거부의 뜻을 밝혔습니다. 같은 새누리당은 직권상정을 거부한 정의화 국회의장에 대해 '직무유기' '해임결의' 등의 언사를 동원하며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새누리당의 비난에 대해 말을 함부로 배설하듯 하면 안 된다고 격노했습니다. 지난 24일 보도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기국회 폐회를 앞두고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 등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에 정의화 국회의장은 법률 전문가들에게 자문까지 한 결과 현재로써는 직권상정 요건이 안 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민주주의란 힘이 절차에 의거해 행사되는 과정을 골자로 하는데, 이를 무시하는 정치 형태를 우리는 흔히 '독재'라고 부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요청'이라는 겉모습을 취했다고는 하나 현 정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행적을 비추어볼 때 사실상 국회의장에게 내리는 명령과도 같아 보입니다.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오늘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삼권분립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볼까 합니다.



미국 헌법과 프랑스대혁명


우리나라에서 '삼권분립'이라고 주로 표현하는 권력분립은 한 개인이나 집단에 힘이 집중되지 않도록 나누어 구분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존 로크가 행정과 입법의 이권분립을 주장한 바 있고, 몽테스키외에 의해 입법, 행정, 사법이라는 삼권분립의 틀이 잡혔는데요, 그 목적은 상호 견제와 세력 균형을 유지하여 권력의 남용을 막고 권리의 보장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권력분립은 근대적 의미의 헌법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1787년 필라델피아 비밀헌법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


 1787년 세계 최초로 미국이 헌법에 삼권분립을 명시하고 이에 따라 사법부를 독립시켰다고 합니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은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고 규정했죠. 1789년은 프랑스대혁명이 시작된 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권력분립은 법치와 민주주의의 모태가 되는 근대적 헌법의 공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부회 모습을 그린 그림


근대적 의미에서가 아니라면 프랑스대혁명 이전에도 권력분립과 유사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삼부회인데요. 프랑스의 귀족, 고위 성직자, 평민, 이 세 신분의 대표자가 모여 중요 의제에 관해 토론하던 신분제 의회를 말합니다. 200여 년간 유명무실했던 삼부회가 1789년 세금징수 문제로 국왕 루이 16세에 의해 다시 소집되었습니다. 루이 16세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남편으로 당시 프랑스는 누적된 권력 과시와 사치 그리고 미국 독립전쟁 지원 등으로 재정이 파탄 상태였습니다.

 

이에 대해 근대적 인권 개념에 눈뜬 평민 대표는 봉건적 특권의 축소와 폐지를 요구하며 앞선 문제에 대해 삼부회에서 다수결로 표결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귀족과 성직자 두 신분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삼부회 자체를 해산해버렸죠.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사 시간에 배워 우리가 잘 아는 대로입니다.

 

혁명에 필요한 무기를 탈취하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파리 민중을 그린 그림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민중이 혁명에 가담한 까닭은 일시적인 불만이나 부르주아의 선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사람들은 불평등한 사회체제에 저항하는 사회개혁 의지를 품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파리 시청 앞 광장에 모여 국왕과 의회에 음식을 요구하는 생존권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국왕이었던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죠. 왕정하에서도 말입니다. 하물며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두말할 필요없이 국민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잘 모르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국민에게 있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권리를 짓밟고, 공권력을 동원해 시민을 사찰하고, 무고한 이를 간첩으로 조작하며, 비판 세력은 종북 몰이로 탄압하고, 세월호 참사 당일 자신의 7시간 행적을 감추기 위해 사이버상 검열을 강화하는 조처를 강제했을 뿐 아니라 급기야 민중총궐기에 나선 시민을 테러리스트에 비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친일, 독재의 역사를 정상으로 생각하기에 뉴라이트 사관에 입각한 국정교과서를 만들고자 그토록 노력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여,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행정부의 수반이면서도 선거부정과 부정헌법개정을 저질러 사법부와 민주주의를 유린한 행위로 하야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에서 배우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프랑스대혁명에서 삼권분립과 민주주의에 대해 좀 배우기 바랍니다. 그 목 부지하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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