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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신입사원에게 희망퇴직 강요하는 2015년 대기업의 자화상

by 생각비행 2015. 12. 22.

부쩍 추워진 연말, 술잔을 기울이던 젊은이가 하나둘 눈물을 떨궜습니다. 기천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 대출, 100개가 넘는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 수많은 낙방의 쓰디 쓴 현실을 뒤로하고 '헬조선'에서 '노오오오력'을 한 끝에 이름 있는 대기업에 취직한 것도 잠시. 평생 직장일 줄 알았던 대기업에서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쫓겨나야 하는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올해 2월, 9월, 11월에 이어 올해 들어 네 번째 퇴직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 회사에서는 이미 6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고 합니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냐고요? 아닙니다. 〈미생〉의 장그래가 그렇게도 바라던 어엿한 정규직이었습니다. 숫한 젊은이를 벼랑 끝으로 내몬 기업은, TV와 신문 광고마다 '사람이 미래다'라고 그렇게도 홍보하던 두산 그룹의 두산인프라코어였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29살에 명퇴당하는 날, 회장 아들은 전무 승진

 

두산인프라코어는 인력 조정의 일환으로 지난 8일부터 18일까지 국내 사무직 3000여 명 전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습니다. 이번 퇴직 신청에 20대 사무직 직원과 신입사원마들이 포함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작년에 그룹 공채로 입사해 두산인프라코어로 배치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에 다니는 사원들은 SNS나 게시판에 29살에 명퇴당하는 경험을 다 해본다며 어이없어 하거나 야구선수에겐 100억 원을 쥐여주면서 두산맨이 되려고 들어온 신입사원들은 갖은 협박과 회유를 일삼으며 추운 날 쫓아낸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심지어 23살 여직원조차 퇴직 압력을 받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산인프라코어의 사내 분위기는 흉흉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두산 그룹은 우리나라 재계 10위권의 내로라하는 기업이지요. 프로야구팀과 중앙대학교를 소유한 기업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유명합니다.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사람이 미래다'란 슬로건을 내세운 두산 그룹 광고를 다들 한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 광고를 만든 두산 계열의 광고사 오리콤의 박서원 부사장(36)은 신입사원들이 쫓겨나던 때 두산면세점 최고전략책임자(CSO, 전무)로 승진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짐작하신 대로 그는 두산 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간 두산을 떠나야 했던 사원들이 제조업, 건설업 기반인 회사가 광고와 홍보에만 신경을 쓴다며 하소연한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아무튼 두산 그룹은 자신들의 고객이자 인재인 젊은이들의 뒷통수를 제대로 갈긴 셈입니다.

 

출처 - 한겨레

 

관련 소식이 언론에 알려지자 재계 관계자뿐 아니라 두산 그룹 내에서도 성토의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20대 사원까지 퇴직 신청 대상인 경우는 IMF 이후 처음인 것 같다며 신입 사원들까지 내보내다니 이러다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 어린 비판도 나왔습니다. 한편 겨우 교육해서 일 좀 맡길 만한 직원들을 내보낸다는 건 그룹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는 얘기가 되므로, 그런 상황에서 인력 수요 예측에 실패한 수뇌부의 실책을 질책하며 앞으로 누가 두산에 지원하겠느냐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애초 두산인프라코어의 사업상 부진함에 대해 책임져야 할 이는 신입사원이 아니라 임원, 나아가 오너 일가입니다. 물론 제조업, 건설업의 불황 이면에는 세계적인 불경기가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생각비행에서 작년에 상세히 알려드린 내용처럼 두산인프라코어는 되지도 않는 기술력으로 섣불리 방산사업에 뛰어들었을 뿐 아니라 국책 연구비를 횡령하는 등 방산 비리의 한 축이기도 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예전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박근혜 정부 방산비리 척결, 말뿐인 추악함http://ideas0419.com/508

 

여기에 더해 경영진의 잘못된 비전으로 중국에 무리한 투자를 한 결과 중국 경기 침체 등으로 크나큰 사업적 손실을 보았습니다. 제조업 기반의 B2B 기업이면서 이미지 광고와 홍보에 열을 올려 쓸데없는 지출은 늘어만 갔죠. 이 때문에 두산인프라코어는 올해 3분기 누적 2465억 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는데요, 이는 2년 전의 두 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이런 손실을 낸 것이 과연 신입사원의 탓이겠습니까? 온갖 비리와 잘못된 비전 설정, 무능한 경영이 불러온 결과에 대해 왜 임원진과 오너 일가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겁니까?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사재를 털어서라도 열심히 일한 인재들을 붙잡아 손실을 줄여야 할 것 아닙니까? 사람이 미래라면 말입니다.

 

20대 신입사원들까지 희망퇴직 대상이라는 사실이 일파만파 번져 비난이 쇄도하자 두산 그룹 박용만 회장은 1~2년 차 신입사원은 회망퇴직을 받지 말라며 급하게 불을 끄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단골 메뉴인 간보기를 이제 대기업 회장이 따라 하는 꼴이죠. 원칙이 있어서 기업적으로 희망퇴직이 꼭 필요한 조처였다면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관철하는 것이 회장의 역할일 텐데, 욕을 먹을 게 걱정이어서 희망퇴직을 없었던 일로 되돌린다면 애초에 왜 추진했던 걸까요? 이처럼 사람을 아낄 줄도 모르면서 '사람이 희망이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은 경영진의 실책은 어떻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걸까요? 헌법의 정신을 유린하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현재의 정국처럼 회장의 말 한마디에 기업의 미래가 좌지우지되는 현실이 참으로 걱정되는군요. 결국 지난 7년간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만든 두산 그룹의 이미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습니다.

 

 

무늬는 희망퇴직, 실상은 강제퇴직 

 

희망퇴직은 스스로 원해서 회사를 나간다는 뜻이지만, 대한민국에서 회사의 구조조정의 한 방편으로 활용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21일 JTBC 보도에 따르면 SC은행에선 지난 15일 961명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나갔다고 합니다. 40대 이상, 근속기간 10년 이상 직원들이 주 대상이었습니다. 국민은행 1122명 등 7개 주요 시중은행에서 올해에만 3200여 명이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났습니다. 2년 전 970여 명에서 지난해 1850여명으로 늘더니 올해 1.7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조선업계 상황은 더 나쁘다고 합니다. 현대중공업에서 연초 1100명이 나갔고 삼성중공업은 퇴직 신청을 아예 상시로 접수 중이라고 하니까요. 삼성그룹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희망퇴직'이란 말을 쓰지 않을 뿐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계열사에서 올해 5700명이 회사를 나갔다고 합니다.

 

생각비행은 <취업하려면 정치적 신념마저 포기하라는 헬조선의 자화상>이라는 기사에서 아모레퍼시픽이 취업 대상자의 채용 면접에서 국정교과서 찬반을 물어 물의를 일으켰던 사실과 국내 최대 통신사 SK의 앱스토어인 T스토어를 운영하는 SK플래닛이 개인정보 취급방침을 개정하면서 이용자의 사상과 신념, 노동조합, 정당의 가입, 탈퇴, 정치적 견해 등에 대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해 큰 논란을 야기했던 사실을 비판하면서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치적 성향과 신념조차 내팽개쳐야 하는 헬조선의 실상을 보여드린 바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한편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청년인턴 정규직 전환 채용 실적’ 자료에 의거해 지난해 고졸을 포함한 청년 인턴을 뽑은 공공기관 중 3분의 2가 단 한 명도 정규직 전환을 해주지 않은 사실을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생색내기용으로 뽑아 정규직이 될 수 있다며 희망고문을 하고 열정페이를 요구하면서 쏙 빨아먹고 먹고 버린 셈이죠. 공공기관조차 이런 상황인데 사기업이 이를 제대로 지킬 리 만무합니다. 두산인프라코어, 아모레퍼시픽, SK플래닛 등 대기업의 만행이 이를 증명하지 않습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동개혁은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입니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박근혜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비롯한 노동개혁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최경환 부총리를 비롯해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임금피크제 도입이 마치 백년지대계라도 되는 듯 연일 입에 올리면서 임금피크제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식 같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파렴치범이라도 되는 양 몰았죠. 그토록 청년들의 일자리 마련에 열을 올리던 정부가 최근 줄줄이 일어나는 사기업의 청년 희망퇴직 같은 말도 안 되는 상황에는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것일까요? 정부의 무계획과 빈곤한 철학에는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CJ 그룹 이재현 회장 실형 확정에 갈팡질팡

 

이렇게 경제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얼마 전 CJ 그룹 이재현 회장의 실형이 확정되었습니다. 횡령과 탈세 등의 혐의로 집행유예 처분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과 벌금 252억 원이 선고되었죠.

 

출처 - 머니투데이

 

CJ 그룹은 그동안 이재현 회장의 실형을 막기 위해 노골적으로 박근혜 정부에 아부하는 광고를 수도 없이 찍어냈습니다. CGV에서 영화를 볼 때 나오는 속칭 '국뽕' 광고들입니다. CJ E&M의 음악축제인 MAMA에도 뜬금없이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해 창조경제를 설파한 일도 있었죠. 게다가 CJ 그룹이 이번 재판으로 내는 홍보 자료도 이상했습니다. 이재현 회장은 지병이 있어 수형 생활을 하면 위험하다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경영을 위해 선처가 필요하다고 했으니까요. 건강 상태가 수형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라면 대체 어떻게 시시각각 변모하는 시장 상황 속에서 글로벌 대기업을 제대로 경영할 수 있단 말입니까? 대기업의 경영을 해낼 수 있다면 수감 생활을 못 버틸 리 없죠.

 

출처 - 유튜브

 

전경련과 경제 신문들은 경제인 기죽이기로 인한 경제 침체가 걱정된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최태원 회장이 구속되어 경영에 참여할 수 없었을 때 SK 계열 기업의 실적은 오히려 오르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 대기업 오너 일가 중에 경영다운 경영을 하는 이가 과연 몇이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더구나 대기업 오너(사실상 '오너'란 표현 자체가 한국 기업문화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만)들의 작태가 정확히 박근혜 정부의 모순과 무능 그리고 파렴치함을 따라가고 있으니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의 삶이 이렇게 팍팍한 것 아니겠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정부든 기업이든 언제쯤 책임을 지는 리더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2015년 마지막 달에 한국 경제의 현실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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