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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메르스 정국에 묻혀서는 안 될 전교조 법외노조화 사태

by 생각비행 2015. 6. 9.

지난 7일 참여연대와  은수미 국회의원실이 공동으로 진행하여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정부의 메르스 확산에 대한 대응 실패로 민심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국 19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70퍼센트가 정부 대책을 불신했고, 88퍼센트가 메르스 감염 지역, 병원 정보를 진즉에 공개해야 했다고 보았습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점차 늘어나는 가운데 사회적 불안 심리 또한 진정되지 않고 있는 형국입니다.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도 문제였지만,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적 차원에서 집중 보도에 신경을 기울였어야 할 신문과 방송이 공포를 조장하면서 국민의 혼란을 부추긴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오늘은 메르스 정국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우리가 지나쳐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 하나를 살펴보려 합니다. 바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법외노조화 사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조사에서 전교조 법외노조화 문제에 대해서는 조사자 중 반대가 40.9퍼센트, 찬성이 30.2퍼센트, 잘 모르겠음 28.8퍼센트로 반대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거꾸로 가는 노동계, 사법계의 시곗바늘과 인권 문제

 

보수정권의 눈에서 벗어난 전교조를 분쇄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는 2013년 10월 해직교사가 전교조에 가입한 것 등을 이유로 삼아 전교조를 교원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에 전교조는 고용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법률적 근거가 없다면서 취소 소송과 함께 효력정지를 신청합니다. 2014년 6월 1심 재판부가 고용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전교조는 합법노조로서 그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 상황에 몰렸습니다. 그런데 2014년 9월 2심 재판부가 효력정지와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항소심 선고까지 합법노조로서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죠.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애초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판단하면서 근거로 삼은 교원노조법 제2조는 '교원이란 초중등교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원을 말하며 해고된 사람은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판정이 있을 때까지만 교원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교원노조법 제2조는 노동자의 단결권을 침해하고 헌법상 과잉금지원칙과 평등권에 위배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그렇기에 2014년 서울고등법원(이하 서울고법)이 교원노조법 제2조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이죠.

 

그런데 지난 5월 28일 헌재가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합헌을 선고하면서 전교조는 법적 지위를 상실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이 합헌, 1명이 위헌 의견을 내어 합헌으로 결정한 것이죠. 이번 헌재의 결정은 '해직된 교원은 노조원이 아니다'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로써 헌재는 전교조를 사실상 법외노조로 인정한 셈이나 다름없습니다. 

 

출처 - 한겨레

 

헌재는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해직조합원이 조직의 자주성을 해친다는 논리를 들먹였습니다. 그러나 조합원이 6만 명에 달하는 전교조에 단 9명의 해직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를 합법노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논리는 궁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작년 말,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며 대한민국 정부(법무부 장관)가 청구한 통진당 해산 청구에 대해 재판관 8 대 1의 의견으로 해산 및 소속 국회의원 5인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린 헌재의 선고를 기억하시는지요? 당시 유일하게 소수 의견(마이너리티 리포트)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이석기 등의 일부 세력의 활동을 통진당이라는 정당 전체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라며 기각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통진당은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만 3만 명이 넘는 탄탄한 정당인데 문제를 일으킨 몇몇의 행동을 통진당이라고 하는 3만 명 전체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논리를 제기한 것이죠.

 

김이수 재판관은 이번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헌재에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그는 교원노조법 제2조의 입법 목적이 다른 행정 수단과 결합하여 노조의 자주성을 보호하려는 데 있다면서, "해당 법률 조항은 교원노조의 자주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조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헌재의 결정대로라면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하고 설립을 취소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시도가 오히려 전교조의 자주성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걸까요?

 

전교조는 물론 야권은 헌재의 결정이 민주주의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린 폭거라며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노조의 자주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고, 노동권에 대한 보편적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결정이기 때문에 스스로 노동탄압 국가라는 증명을 한 셈이라는 겁니다. 조직에 9명의 해직자가 있다고 해서 6만 명의 조합원이 있는 노조를 법 밖으로 몰아내도 되는 걸까요? 부당한 처우를 받은 교사를 보호할 수단이 공식적으로 법의 인정을 받은 노조인 전교조였건만, 이제 그런 보호의 테두리마저 끊길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

 

설상가상으로 지난 6월 2일 대법원 1부는 고용부의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전교조의 신청을 받아들인 서울고법의 결정을 파기환송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에 지난 5월 28일 헌재의 결정이 영향을 미친 겁니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가 교원노조법 제2조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합헌으로 결정했다"며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사유가 인정된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행정소송법 제23조에서 정한 집행정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교원노조법 제2조 합헌 결정 이외의 사유로 법외노조 통보 효력을 정지할 것인지는 서울고법이 다시 심리하게 됩니다. 대법원이 "나머지 재항고 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 결정을 파기한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서울고법의 파기 환송심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헌재의 합헌 결정에 대법원의 원심 파기까지 더해져 서울고법이 전교조의 합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더구나 파기환송 사건은 원심 결정을 내린 서울고법 행정7부가 아닌 다른 재판부가 맡을 가능성이 큽니다.

 

전교조가 박근혜 정부의 무력화 시도대로 합법적 지위를 상실하여 법외노조가 된다면 교육부는 노조 전임자들을 교단으로 복귀시켜 전교조를 붕괴하려 하겠지요. 이와 더불어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사무실 퇴거 등의 조처로 전교조를 해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총력투쟁에 나서고 국제사회에 호소해 힘을 빌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처음부터 가시밭길 걸은 전교조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 못 하고 슬퍼하는 아이들... 26년 전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전교조는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전국교사협의회가 모태입니다. 1989년 7월 1일 당시 문교부는 교사의 노조 결성 행위가 불법이라며 1527명에 이르는 교사를 파면·해임했습니다. 26년 전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풍경은 이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입니다.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기치로 내세우고 참교육을 표방했던 수많은 전교조 선생님이 교단을 떠나야 했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선생님을 잃어야 했습니다.

 

해직교사 1329명은 1994년 교단으로 돌아갔지만, 합법화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었습니다. 시민사회의 촉구와 국제노동기구(ILO)의 전교조 노조 인정 권고안을 채택하는 등 국제사회의 지지까지 이어지자 1999년 교원노조법이 국회에서 통과됩니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불법으로 내몰린 지 10년 만인 1999년 7월 6만여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합법노조로 공식 인정받게 됩니다. 선생님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사회적 연대 속에서 전교조는 촌지 근절과 부패사학 척결운동 등으로 사회적 지지를 받으면서 한국교총과 더불어 교원단체의 양대산맥을 형성하게 되었죠. 

 

그런데 2006년 교원평가 등에 반대의 뜻으로 집단 연가투쟁을 벌이고, 2008년 이른바 '광우병 파동' 당시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데 앞장서는 등 전교조가 강경 노선을 유지하며 정치 이슈에 힘을 기울이는 사이 내부의 반발도 있었고 정권의 탄압·회유로 말미암아 회원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위기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전교조는 어려움 속에서도 인권과 민주주의와 참교육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출처 - 경기일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교조와 교육부를 중심으로 갈등은 다시 고조되었습니다. 2008년 일제고사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전교조 교사 12명이 파면·해임됩니다. 2010년에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의 규약을 문제 삼고 나섰습니다. 고용부는 이 규약을 바로잡으라고 명령했고 전교조가 이를 거부하며 시정명령 취소소송을 합니다. 이때부터 정부와 전교조 사이에 소송전이 시작되었죠. 2012년 대법원에서 패소한 전교조가 2차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자, 정부는 2013년에 규약을 시정하지 않으면 법외노조 통보를 하겠다고 최후통첩합니다. 이때부터의 상황은 앞서 정리한 바와 같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한겨레

 

헌재가 교원노조법 제2조 합헌 결정을 내린 지난 5월 28일은 전교조의 26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생일에 사형선고를 받은 셈입니다. 아이들의 교육과 권리를 위해서도 교사의 권리를 지킬 보루인 전교조가 필수적입니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인 교육을 맡은 교사의 노동권이 인정받지 못하는데 다른 노동권이 인정받을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자주성 원칙에 따라 조합원 자격은 노조 스스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에 확립된 기준입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노조의 조합원 자격은 노조가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할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습니다. 헌재에서 소수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이 교원노조법 제2조가 원래 입법 목적과 달리 이번 사례처럼 행정관청이 재량을 남용하는 근거로 악용되어 교원노조의 자주성과 단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고 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앞으로 전교조와 고용부는 법외노조 통보가 적법한지를 두고 공방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헌재가 이번 결정이 고용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적절했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 이래 박근혜 정부까지 사회 곳곳에서 노동 탄압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험난한 시국을 헤쳐나갈 전교조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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