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보도

김영란법 국회 본회의 통과, 그 의미와 향방

by 생각비행 2015. 3. 11.

김영란법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하지만 시행되기도 전에 비난과 법 개정에 관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김영란법 자체가 위헌이라는 의견마저 제기합니다. 그런데 반부패 개혁을 추진 중인 중국 시진핑 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상하이 인민검찰원장과 이야기하는 중 한국의 김영란법을 호평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정작 이 법안을 제안했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이번에 통과된 법이 반쪽짜리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현재 정치, 언론, 기업 등 전방위에 걸쳐 혼란의 중심에 있는 김영란법은 과연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아울러 비슷한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이 법안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에 관해서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부정 및 청탁 금지의 토대가 되는 김영란법


이 법안은 2012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자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었던 김영란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의미합니다. 원래는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하지만 3년여의 세월을 거치는 사이 국회에서 여야 간 신경전과 각계의 이해관계 등이 맞물려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원래의 취지가 왜곡되었다고 비판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이 정도 법안이나마 통과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평하는 측도 있습니다.


 

출처 - JTBC


통과된 법안대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과 이사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분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제대로만 시행된다면 부정부패 방지에 상당히 강력한 영향을 발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파급력을 고려했기 때문인지 유예 기간을 1년 6개월로 넉넉하게 두어 2016년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김영란법에 통과에 따른 각계각층의 반발


 그렇지만 이번 법안 통과와 관련하여 각계각층의 입장에 따라 반발, 비판, 아쉬움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우선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이 법을 제안하고 이름을 내건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은 최초 발의했던 법안에서 핵심 사항이 여럿 빠진 반쪽짜리 법안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특히 전관예우 등 공직자의 사익 추구 행위를 금지하는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빠졌다며 "반부패 정책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아쉽다"고 밝혔습니다. 이해충돌 방지 규정은 국회에서 여야가 끝까지 충돌했던 요소 중 하나로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해 입법예고안에는 있었으나 최종 법안에서는 빠져버린 조항입니다.


출처 - YTN


이 조항은 공직자의 공적 수행이 사적인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장관이 본인의 자녀를 특채 고용하는 등 공직자로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 반부패 정책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겠습니까? 

 

이와 더불어 부정청탁의 개념이 포괄적인 개념에서 15가지의 구체적 유형으로 축소된 점, 부정청탁 대상이 공직자 등의 가족에서 배우자로 축소 된 점 등도 원안과 달리 김영란법이 반쪽짜리 법안으로 의미가 퇴색했다고 보는 근거가 됩니다.

 

출처 - 세계일보


김영란법이 건전한 정책 제안이나 친교 유지마저 저해한다는 기업의 주장은 구태의연함으로 치부해도 무방하겠지만, 현재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언론인과 사립 학교 임직원처럼 민간인이 포함되는 부분은 사실 미묘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후보자였을 당시 유출된 녹취록 파문 당시 기자들을 압박하는 방편으로 김영란법 통과가 사용되었듯이, 자칫 이 법을 이용한 정부의 언론 통제 및 민간기업 통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부분이 김영란법이 통과되자마자 대한변호사협회를 중심으로 위헌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데요, 실제로 법안의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원안의 공직자 외에 사립 학교 교원이나 언론인 등 적용 대상이 사회적 합의와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급하게 확대된 면이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끊고 공직과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이 정도의 극약 처방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며 공감대가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김영란법에 대해 국민의 69.8퍼센트가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을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 바람직하다고 답변한 조사 결과가 그 방증입니다.

출처 - MBN


이완구 녹취록 파문 당시 현장에 참석한 기자가 기사화하고자 했어도 각 언론사의 데스크에 막혀 결국 다른 방송사에서 기사가 나온 현실을 현실을 생각하면 위헌 논란을 떠나 언론이 이런 상황을 자초한 면이 큽니다. 철마다 드러나는 사학 재단의 비리를 생각하면 말할 것도 없지요.


이런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 그리고 김영란법의 부작용에 대한 걱정 등으로 법 개정부터 위헌 심판까지 각계각층의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한 외국의 부패방지법들


김영란법에 해당하는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요?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은 훨씬 더 엄격합니다. 다만 범위는 공직자에 한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처 - KBS


로비가 합법화되어 있긴 하지만 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한 뇌물 부당이득 및 이해충돌 방지법을 입법한 미국은 고의성 있는 뇌물과 없는 금품수수를 구분하여 뇌물의 경우 징역 15년, 벌금으로 뇌물 수수액의 3배를 물리는 식으로 엄격히 처벌합니다. 로비가 합법이긴 하지만 공직자와 만날 때는 일시와 사유를 기록해 이를 공중에 공개해야 합니다.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경우에도 정부 이외의 다른 곳으로부터 보수나 기부금을 받으면 최고 5년의 징역이나 벌금을 부과합니다.

 


출처 - KBS


독일은 형법으로 공무원 뇌물 수수 범죄의 정도와 준 쪽과 받은 쪽 등에 따라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직자가 부당한 행동을 하도록 요구받는다면 이 사실을 소속 기관장에게 즉시 신고해야 하며 기관장은 이를 일반에 공개해야 합니다.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금품수수행위는 강력히 처벌하고 있죠.

 

이 때문에 2008년 주 총리 시절 주택 구입을 위해 친구에게 6억 원을 빌렸던 볼프 전 독일 연방대통령은 2년 뒤에 이 돈을 갚았지만 특혜 의혹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했습니다. 2014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는 선물로 받은 260만 원짜리 와인 한 병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처럼 선진국을 중심으로 외국에서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청렴성을 공직자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영란법, 접대와 부정을 근절하기 위한 성장통으로 봐야


공직자와 관계하는 일뿐 아니라 일상적인 직장생활에서도 기름칠을 좀 해야 일이 잘 돌아간다는 말이 통용되는 우리 사회입니다. 말은 사회를 반영합니다. 돈이든 향응이든 갑에게 접대 행위를 하지 않으면 뭔가 잘 풀리지 않는 우리 사회의 후진적인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김영란법은 우리나라의 접대 및 로비 문화 근절을 입법 목표로 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국민 대다수는 우리 사회의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면 민간이라도 김영란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보지 않았을까요?


출처 - KBS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역시 김영란법 국회 통과에 대한 소감으로 반쪽짜리라 아쉽지만 우선은 이 상태로라도 제대로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헌법상의 언론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김영란법이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오래된 관행과 습관, 문화를 바꾸는 데 목적이 있고 근본적인 부패 문화를 바꾸는 데 역점을 뒀기 때문이겠죠. 일단 제대로 시행해서 부패 문화를 강도 높게 바꾸면서 미진한 부분을 개선하고 강화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