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가 62년 만에 폐지되었습니다. 지난 2월 26일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간통죄를 위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국가가 법률로 간통을 처벌하는 일이 국민의 기본권인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형법 241조인 간통죄 관련 조항은 즉시 효력을 잃었습니다. 이 때문에 위헌 결정 직후 콘돔 제조 회사의 주가가 치솟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사회 일각에선 가족 해체와 성적 문란 등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간통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시대별로 어떻게 인식했는지 그 궤적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간통죄, 4번의 합헌 1번의 위헌
1953년에 제정된 간통죄는 형법 241조로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법 조항입니다. 간통한 상대인 제3자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고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벌금형 없이 징역형만 정해져 있어 꽤 엄중한 처벌인 셈이었죠. 한마디로 결혼했으면서 바람을 피운 자와 그 상대는 걸리기만 하면 국가가 나서서 감옥에 처넣겠다는 거였죠. 성적인 문제에 매우 엄격한 한국 사회다운 법률이었으며 처음에는 나름대로 순기능도 있었다고 합니다.
195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바람은 남자가 피우는 것이었고 돈이나 권력이 있으면 첩 한둘쯤은 거느리는 게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했으니, 그 당시에는 간통죄가 그나마 여성을 보호하고 가족제도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간통죄는 금방 악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간통죄 사례는 가족 유지나 여성 보호 기능보다 흥신소와 변호사 검찰 등의 주 수입원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불법 흥신소를 소개해주는 식으로 간통죄 적발이 일종의 기업화되는 촌극까지 벌어졌습니다. 또한 역으로 간통죄를 빌미로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괴롭히는 사례마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와 함께 성적으로 개방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간통죄는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침해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대두하기 시작합니다. 변화된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고 악용되고 있으며 간통죄가 있다고 해서 간통이 실질적으로 줄어들지 않으니 그 법적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로 말미암아 1990년대 들어 간통죄가 위헌이라는 신청이 줄곧 제기되었습니다. 1990년 첫 헌법재판소 판정은 6 대 3으로 합헌 결정이었습니다. 합헌 다수 의견은 성도덕과 혼인제도, 가족생활, 부부 간 성적 성실의무 등을 위해 간통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때도 사회 상황과 국민 인식이 변화해 간통죄의 규범력이 약해졌음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위헌 소수 의견은 벌금형 없이 징역형만 둔 것은 지나친 처벌이며 사생활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1993년 두 번째 헌법재판소 판정은 1990년 합헌 판정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변경할 사정이 없다고 본 겁니다.
2001년 세 번째 헌법재판소 판정은 8 대 1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합헌 판정을 했습니다. 다만 합헌 다수 의견도 이 이후에는 간통죄 폐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세계적으로 간통죄가 폐지되는 추세였고 개인의 내밀한 문제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건 부적절하며 협박이나 위자료 받기의 수단으로 간통죄가 악용되는 사례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형벌적 억지 기능마저 유명무실해져 가정이나 여성 보호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회적 인식이 작용했습니다. 위헌 소수 의견은 간통은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지 국가가 개입해 형벌로 다스릴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2008년 네 번째 헌법재판소 판정은 처음으로 위헌 의견이 합헌 의견보다 많아졌습니다. 합헌 4, 헌법불합치 1, 위헌 4로 말이죠. 합헌, 위헌 의견 모두 이전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점점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가는 만큼 헌법재판관들의 의견 비율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다섯 번째 헌법재판소 판정에서 간통죄는 2 대 7로 위헌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이로써 드디어 국가가 개인의 성 생활을 법으로 처벌하는 간통죄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224년 전 간통죄 폐지, 한국은 1992년부터 폐지 시도
간통죄는 성 문제에 엄격한 유교권과 이슬람권 등 극소수 국가에만 남아 있는 처벌 규정이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 법무부는 1992년 형법개정안에서 간통죄를 삭제해 세계 추세에 따라가려 했으나 실제 개정 때는 삭제안이 반영되지 못해 존속되었죠.
출처 - 연합뉴스
프랑스는 프랑스대혁명 때인 1791년에 간통죄가 폐지되었습니다. 한때 되살아났던 간통죄는 1975년 형법 개정 시 완전 폐지됩니다.
독일은 6개월 이하 징역에 처하는 간통죄가 있었으나 1969년 형법 개정에서 이를 삭제했습니다.
덴마크 1930년, 스웨덴 1937년, 노르웨이 1972년 등 세계적으로 간통죄는 폐지되고 있었습니다. 우간다 헌법재판소도 2007년 부인만 처벌하도록 한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죠.
같은 유교권 국가인 일본은 1947년에 간통죄를 폐지했으며, 중국 역시 협박을 동원해 현역 군인의 부인과 간통한 경우를 제외하고 단순 간통은 처벌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간통죄가 폐지되었으니 이제 대만 정도만 간통죄를 인정하는 셈입니다.
간통죄 위헌에 따른 후속 조처 뒤따라야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남에 따라 그동안 간통죄로 기소되었거나 사법처리된 이들에 대한 소급 적용 여부가 중요해졌습니다. 일단 간통죄로 처벌받았던 사람 모두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개정된 헌재법에 따라 합헌 결정 다음 날부터 소급 실효가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2008년 10월 31일부터 행해진 간통 행위는 죄가 되지 않으며 이미 처벌받은 사람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수감되었거나 실형을 산 이들은 형사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5466명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합헌 결정 이후로 간통죄 실형 선고를 받은 사례가 거의 없고 구속 기소된 사람은 22명에 불과해 형사보상 대상은 아무리 많아야 수백 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는군요.
판결이 나와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으나 형사보상금은 구금 기간을 기준으로 하루당 많으면 20만 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혹자의 걱정처럼 이번 간통죄 위헌 결정으로 갑자기 대한민국 사회가 성적으로 문란해지거나 국가 재정이 고갈될 우려가 있다거나 세상이 뒤집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합헌 결정이 있었던 2008년 10월 30일까지 간통죄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이들은 재심 청구 대상에 해당 되지 않으므로 형평성에 대한 불만이 제기될 수는 있습니다.
출처 - JTBC
간통죄 존치 입장이든 폐지 입장이든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간통죄가 폐지되어도 불륜은 죄가 됩니다. 간통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불륜을 장려하거나 바람 핀 게 죄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간통죄는 사라지더라도 일부일처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혼인 상대에 대한 순결과 성실의 의무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민법 제840조는 이혼 청구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로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간통을 하면 감옥에 가둔다고 해서 혼인 상대에 대한 순결과 성실의 의무를 지키고, 감옥에 안 가둔다고 해서 의무를 저버린다면 그 사회의 결혼제도는 의미를 상실한 게 아닐까요? 예전부터 간통죄의 문제점은 바람 핀 사람을 국가 권력이 잡아서 가뒀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바람 핀 행위 자체는 간통죄가 폐지된다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행위이며 민사소송 등을 통해 위자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법령 정비가 되지 않았지만 간통죄가 없어지면 민사소송을 통해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가 배우자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나 손해 배상액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간통죄가 없어져도 처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죠.
출처 - 경남신문
문제는 이런 법령 정비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이혼에 대해 바람 핀 책임자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有責主義)를 택하고 있는데 간통죄가 폐지되면 자연스럽게 파탄주의(破綻主義)로 흐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탄주의 원칙에 의하면 불륜을 저지를 정도면 이미 혼인관계는 파탄났다고 보고 누구든 이혼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지껏 유책주의를 택해 법이 나서서 최대한 결혼을 유지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이제는 결혼관계가 파탄난 것 같으면 갈라설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지게 될 겁니다. 사실 현실적으로도 이미 그렇지요. 하지만 여기서 하나의 문제는 바람 핀 당사자가 재산을 빼돌린 뒤 이혼을 청구하는 적반하장의 사례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할 법적 조처가 필요합니다.
이제 간통죄 대신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혼인 파탄의 책임을 물어야 되는 만큼 손해배상액과 위자료 같은 금전적인 책임을 더 무겁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가 정말로 사회 윤리에 관심이 있다면 이에 대한 입법부터 서둘러 애먼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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