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하는 대한민국, 인권의 현 주소를 묻다

총리 후보의 망언, 그 끝은 어디인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다. 일본 극우 세력의 망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이 총리 후보로 내세운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의 망언입니다. 문 후보자가 지난 2011~2012년 사이 서울 지역의 여러 교회와 단체에서 행한 강연 내용이죠.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 후보자는 "(하나님이) 남북 분단을 만들어 주셨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는 말도 했더군요.

출처 - KBS

이뿐이 아닙니다. 문 후보자가 2011년 6월 강연에서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디엔에이(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라며 우리 민족성을 거론한 내용은 일본 극우파의 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할 총리라는 공직에 내세울 인사가 이런 친일파밖에 없다니!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참사는 정권 시작 때부터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변한 것이 하나 없습니다.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 편인 법이지요.

그런데 시민의 분노를 자아내는 문 후보자의 망언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는 초빙교수로 있던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의 마지막 강연에서 얼마 전에 있었던 퀴어문화축제와 관련하여 "무슨 게이퍼레이드를 한다고 신촌 도로를 왔다 갔다 하고... 이 나라가 망하려고 하는 거다"라며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했습니다. 성소수자를 폄훼하는 발언을 학생들 앞에서 서슴지 않는 이가 어떻게 교수가 될 수 있고, 어떻게 총리 후보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이는 문창극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 특히 성소수자를 대하는 극도의 혐오감과 배타성이 위험한 수준에 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퀴어문화축제를 막아선 보수단체와 극우 기독교단체

출처 - 퀴어문화축제

올해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Love Conquers Hat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열린 퀴어문화축제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위한 축제로 지난 2000년부터 매년 6월에 열립니다. 퀴어문화축제는 크게 퀴어 퍼레이드, 퀴어 영화제, 퀴어 파티 등으로 진행됩니다. 이 밖에도 토론회, 전시회, 사진전 등이 열려 성소수자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거나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유도합니다.

출처 - 레디앙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가시화된 지 20주년이 되는 2014년은 성소수자들에게 의미 있는 해입니다. 그 때문에 지난 주말인 6월 7일 신촌에서 열린 제15회 퀴어문화축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어 가장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성소수자를 핍박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동성애는 죄, 동성애는 질병,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보수단체와 극우 기독교계,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몰려나와 퀴어 퍼레이드를 막으며 드러누워 버린 겁니다.

출처 - 웰페어뉴스

성소수자들의 축제에 와서 몰이해를 바탕으로 혐오를 드러내며 분탕질을 한 것 자체도 문제지만 경찰의 대응도 큰 문제였습니다. 보수단체와 극우 기독교 단체 등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퀴어 퍼레이드 진행을 막아서자 경찰은 둘 사이에 서서 시간만 보냈습니다. 무려 10여 차례에 걸쳐 해산 권고 방송을 하며 4시간 동안을 그냥 지켜만 본 겁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경찰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퀴어 퍼레이드는 신고까지 마친 합법 행진이나 그 앞을 가로막은 성소수자 혐오자들의 행위는 불법 집회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세월호 참사에 항의하는 1인 시위와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 때는 미란다 원칙조차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할머니와 수녀를 짓밟고 끌어내는 경찰이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드러내며 불법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왜 그토록 관대했던 걸까요? 평소에 경찰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도로 불법 점유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법 집행의 형평성이 어긋나도 보통 어긋난 게 아닙니다.

결국 4시간이 지난 후 퀴어문화축제 측은 경로를 바꿔 퍼레이드를 마무리했습니다. 유럽과 영미권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차별금지법조차 제정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입니다.


여고에서 동성애자 색출 설문까지 일삼아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한 여고에서 시행한 것으로 알려진 동성애 조사 설문지가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 설문지의 문항들이 동성애자 보호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사실상 동성애자 색출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동성애 조사 설문은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1년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측에서 발행한 성적소수자 학교 내 차별 사례 모음집에 실린 것이라고 합니다. 설문지의 문항은 동성애 학생에 대해 학교가 취해야 할 조치로 학교 내 봉사 활동과 무기정학, 퇴학까지 거론하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벌 받아야 할 잘못으로 몰아가고 있는 건데요. 마지막 항목은 한술 더 떠서 동성애를 하는 친구를 고자질하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 설문지 때문에 피해를 본 학생들은 실제 동성애자이건 아니건 교무실로 불려가 진술서를 쓰거나 엎드려뻗쳐 등의 얼차려를 받았으며, 정학을 당하거나 학부모에게 생활기록부를 들먹였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학교가 학생들에게 하는 행태와 나치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만행이 대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의 학생들에게 섬세한 대화를 시도하지는 못할망정 은밀히 들춰내고 벌을 주다니요.

작년 말 서울학생인권조례에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성소수자 등의 표현이 삭제되는 개악이 있었는데요. 학생들, 그중에서도 특히 소수자들의 인권은 표현에서부터 실상까지 급속히 퇴행하고 있습니다.


사전적 정의를 뒤흔든 국립국어원의 퇴행

소수자들에 대한 인권 퇴행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랑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뒤바뀐 것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사랑「명사」
「1」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국립국어원은 지난 1월 말 사랑의 뜻풀이를 한 차례 더 변경했다. 2012년 11월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정의했던 것을 2년도 안 돼 다시 바꾼 것. 가장 큰 변화는 '남녀'라는 단어의 복귀다. 사전적 정의에서 사라졌던 '남녀'가 다시 돌아왔다. 앰네스티 대학생 네트워크는 2012년 '이성애 중심 표준어 정의 개정 캠페인'을 벌여 '사랑'과 '연애', '애정' 등 단어를 정의할 때 '남녀'가 아닌 '모든' 사람을 포괄할 수 있도록 개정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당시 국립국어원은 '남녀'를 '두 사람'이라고 고쳐, 보다 중립적이고 포괄적으로 바꿨다. 오래가지 못했다. 2년도 안 돼 사랑의 정의는 다시 '남녀'로 한정됐다. '연애'나 '애정' 등 단어도 행위주체가 '사람'에서 '남녀'로 되돌아갔다.


앰네스티 대학생 네트워크의 캠페인 덕분에 사랑의 정의가 이성애 중심의 ‘남녀’에서 동성애까지 포괄할 수 있는 ‘어떤 상대’로 개정되었으나, 2년이 채 못 되어 반대 단체들의 압력으로 다시 ‘남녀’로 돌아갔다는 얘깁니다.

국립국어원 측은 이에 대해 뜻풀이가 지나치게 포괄적이었다며, 국립국어원은 언어전문기관으로서 언어 관련 부분만 논할 뿐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민현식 국립국어원장은 동성애차별금지법 입법 시 기독교 측 인사로 반대 서명을 한 전력이 있으며,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연 국립국어원은 정말로 가치판단을 하지 않은 걸까요?

출처 – 네이버 웹툰

여성 동성애자, 레즈비언으로서 사는 삶을 만화로 그려내고 있는 완자 작가는 국립국어원의 이상한 퇴행 움직임에 반대하며 자신의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 181화 '감정에 대한 정의'라는 에피소드로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좋아하는데 국립국어원은 어째서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걸까요?


국가인권위원회의 국제 위상 추락, ICC 등급 보류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인권 퇴행을 겪은 우리나라는 최근 부끄러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세계 120여 개국의 인권기구 연합체인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가 정기 등급 심사에서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에 등급 보류 판정을 내린 것이죠. 이는 2004년 ICC 가입 이후 처음 있는 사태입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우리나라 인권위 규정에 인권 위원 임명 절차의 투명성과 시민단체 등의 참여가 보장되어 있지 않고, 인권위원과 직원 구성의 다양성 보장이 미비하며, 인권위원과 직원 활동에 대한 면책 조항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ICC는 6월 30일까지 이 지적 사항에 대한 답변을 요청했으며 이를 적절히 답하지 못해 등급이 강등되면 ICC 내 각종 투표권을 상실하게 된다고 합니다.

출처 - 여성신문

가입 이후 한때 ICC 내에서 독보적 위상을 자랑했던 우리나라 인권위가 이명박 정부 시절 낙하산으로 꽂아넣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하더니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 정기 등급 심사에서 등급 강등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부끄러운 우리나라 인권의 현주소입니다.

2001년 인권위 출범에 맞춰 제정된 현행 인권위법은 대통령(4명 지명), 국회(4명 지명), 대법원장(3명 지명)이 인권위원을 사실상 지명하는 방식으로 돼 있다. 이런 구성 방식이 출범 초기부터 문제로 지적되긴 했으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인선 과정에서 이를 보완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 관련 경력이 전무한 이들이 위원에 임명되면서 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현재로서는 지난해 11월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인권위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국제조정위의 권고사항을 충족할 수 있는 신속한 대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안은 정당, 어린이 및 청소년 단체, 장애인단체, 인권단체 등이 추천한 20명으로 '인권위원 후보추천위'를 구성해 2배수를 추천하는 절차를 만들어 위원 선정 과정의 다원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인권위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역시나 낙하산답게 현 인권위원장의 법 개정 의지나 역량이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개정안이 발의된 후 간담회 제안조차 없었다고 하니까요.

학교에선 교칙으로 벌주고, 국립국어원은 단어의 정의로 차별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낙하산 인사에 위상은 떨어지고, 경찰은 불공평한 법 집행을 일삼고, 총리 후보자는 과거의 망언으로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고, 현직 대통령은 그림자일 뿐 실체가 없어 보이니,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소수자 인권은 동네북이고 총체적 난국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는 아직도 멀기만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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