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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일당 5억, 황제 노역의 탄생

by 생각비행 2014. 3. 26.
쓰레기 청소나 봉투 붙이기는 지난날 가난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두 작업이 254억이란 천문학적인 돈을 갚을 수 있는 황제의 일감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이른바 '황제 노역'으로 인구에 회자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때문입니다.

출처 - MBN
 

25일 광주교도소는 허 전 회장의 나이 등을 감안해 노역의 종류를 구내청소로 결정, 이날 오후부터 이행토록 지시했다. 허 전 회장은 지난 2010년 1월21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 등을 선고받았지만 벌금을 30일안에 납부치 않아 환형유치 금액(일당)이 5억원으로 책정됐다. 50일만 노역하면 254억원의 벌금이 탕감되는 것으로 일반인들의 평균 노역 일당(5만원~10만원)의 1만배에 이르러 '황제노역' '신의 노역' '지역 판관의 문제점' '전관예우' 등 큰 논란을 일으켰다.


허재호 회장은 2007년 대주그룹의 경영자로 508억 원의 탈세와 회삿돈 100억 횡령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허재호 전 회장은 벌금을 내지 못하겠다며 몸으로 때우는 노역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역의 가치가 일당 5억 원으로 책정돼 세간에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벌금을 납부 못하면 그에 대비해서 노역장에 유치시킬 수 있고 그 유치 기간을 계산해야 하는데요. 그 계산법을 1일당 해당할 벌금을 확정하는 판결을 5억 원으로 정한 것인데요. 우리 형법은 벌금의 노역장 유치기간을 3년 범위 내에서 양형 재량을 발휘할 수 있게 법원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죠. 지금 일반인들 같은 경우에는 노역장 유치, 환산금액을 1일 5만원으로 정하는 것이 거의 통상이었고요. 최근에 형사법관에 의해서 이 금액을 실질화해야 한다 해서 10만원으로 올려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비하면 5억 원이면 5만원으로 치면 만 배, 10만원으로 치면 5000배, 이런 재판에 의한 자의적인 차별이라고밖에 볼 수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고.


수감자 중 정말 돈이 없어서 노역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일당이 막노동 현장의 임금과 비슷한 5~10만 원꼴이므로, 허재호 전 회장은 무려 일반인의 1만 배에 달하는 일당을 받고 노역하는 셈입니다. 그것도 단순한 청소로 49일만 노역하면 254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벌금이 문자 그대로 사라집니다. 다시 세상에 나오면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겠지요. 일반 시민은 이와 같은 불합리한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벌금과 추징금이 두렵지 않은 재벌과 권력자들

출처 - JTBC

가장 큰 문제는 재벌들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검찰에서도 마찬가지고 사법부에서도 솜방망이 판결을 해 준다는 거죠. 서민들이 5억의 벌금을 맞았으면 하루 5만원씩 계산하면 1만일이 되거든요. 그러면 27년을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재벌은 하루만 살고도 그냥 나오는 거니까 국민들 법 감정으로는 이건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요. 도대체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을까,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뉴질랜드에서 땅 팔고 분양 사업을 하며 호화생활을 누렸기 때문에 은닉 의혹 재산의 유무를 떠나 벌금을 낼 능력이 충분합니다. 그러니 벌금을 못 내는 게 아니라 안 내는 것이라고 봐야겠죠. 건설업계의 속성상 그에게 공사 대금을 떼인 하도급업체나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업체, 그리고 공사판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일당도 떼이고 앉은 자리에서 망할 판인데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인제공자인 허 전 회장의 벌금 254억 원은 그저 49일간의 청소 노역으로 탕감된다니, 정말 이제는 대놓고 무전유죄, 유전무죄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출처 - SBS

이번처럼 상식을 벗어난 판결이 나온 데에는 광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대주기업과 광주 지역 법조인들의 지역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명 짬짜미라고 하는데요.

<중앙일보>는 25일 ‘교도소 일당 5억 황제노역 판결한 29년 광주 향판’ 제하의 기사를 통해 2010년 당시 광주고법 형사1부장판사로 해당 판결을 내린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이 지연 때문에 이와 같은 판결을 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일당 5억의 황제 노역을 판결한 장병우 부장판사는 현재 광주지방법원장이 되었고, 허재호 전 회장의 변호인 4명 중 2명은 광주지법원장 출신입니다. 그러니까 솜방망이 판결은 이른바 전관예우라는 얘깁니다. 게다가 검찰까지 벌금 구형과 동시에 선고 유예를 신청했다고 하니, 정말 우리나라 학연·지연 문제의 결정판을 보는 기분입니다.

일이 커지자 대법원은 부랴부랴 벌금을 내지 못하면 대신 노역을 하는 '환형유치제도'에 대한 개선안 검토에 나섰습니다. 문제가 되는 노역장 유치 기간 3년 제한 규정, 노역의 일당 액수를 법원이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 등, 국민이 납득할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오는 28일 열리는 전국 수석부장판사회의에 환형유치제도를 안건으로 올려 관련 내용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하고요. 법 개정 추진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어제 기사를 올린 이후 검찰이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노역을 중단하고 벌금 집행 절차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 <들끓는 여론에 놀란 檢… 황제노역 중단·벌금환수 착수>)

출처 - 조선일보

하지만 허재호 전 회장의 경우는 새 발의 피입니다. 254억 원이라는 벌금이 우스워 보일 정도의 고액 미납자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많으니까요. 그들은 권력과 재벌임을 믿고 해외로 도피해 호화 생활을 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전두환의 재산을 추징한 전두환 추징법이 있긴 하지만, 이마저 금방 사그라졌습니다. 고액 추징금 미납자를 대상으로 은닉 재산과 차명 재산에 대한 사법기관의 강제 몰수를 일반인에게까지 확대하는, 일명 김우중 추징법이 지난해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국회에서 여전히 계류 중입니다.

법조계 안팎에선 고액 추징금 미납자 방치가 '추징금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인식 확산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추징금을 형벌의 일종인 벌금으로 전환하거나, 추징금 미납자를 일정 기간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면법을 고쳐 추징금을 안 내면 아예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전두환 추징법'에 이어 '김우중 추징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추징금 미납자 가족 등 제3자의 재산이 범인의 은닉 재산으로 확인되면, 별도 소송 절차 없이 강제로 몰수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뒤 국회에 제출했다. 해당법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이러는 가운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임직원의 추징금 미납 현황은 압도적인 1위입니다. 이들은 총 22조 9470억 원의 추징금 중 1퍼센트도 내지 않고 외유 중입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더니 그 뜻이 세상에는 도망 다닐 곳이 참 많다는 소리였나 봅니다. IMF의 상징처럼 각인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추징금 미납금은 1280억 원, 전두환 전 대통령은 꼴사납게 추징당하고도 아직 1200억 원의 미납금이 있습니다.

2013년 8월 통계 기준으로 추징 판결이 내려졌으나 아직 환수하지 못한 돈이 무려 25조 3773억여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검찰이 추징에 성공해 실제로 환수한 금액은 1조 3157억 원에 불과하다는군요. 박근혜 정부는 지하경제 활성화 같은 소리보다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추징금과 벌금부터 거둬들이는 게 어떨까요? 이편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고 부족한 세수도 채우는 일석이조의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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