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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아리셀 화재 참사, 뒷수습마저 참사 수준

by 생각비행 2024. 7. 12.

지난 6월 24일 화성 전곡산업단지에 있는 1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난 화재로 23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쳤습니다. 아리셀은 리튬 배터리를 제조해 완제품을 납품하는 업체입니다. 경기 화성소방서가 확보한 최초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배터리 셀 하나가 폭발해 불이 연쇄적으로 커졌다고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리튬 1차전지는 다 사용하면 폐기하는 배터리입니다. 휴대전화 같은 전자제품에 내장되어 충전해서 재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2차전지)와 다른 것입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에 따르면 리튬 1차전지는 화재가 났을 때 물 성분으로 진화하면 폭발 성분인 수소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화재 진압 방법처럼 물을 뿌렸다간 폭발 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이 큽니다. 경기 화성소방서는 마른 모래와 팽창 질소를 준비했지만 불길이 워낙 거세 내부 진입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창우 교수는 이런 위험도 높은 물질에 대해서는 '소분하라'는 게 소방전문가들의 조언이라며 조금씩 나눠서 비치해야 하고, 생산 직후 곧장 출하하여 한곳에 모아두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출처 - JTBC

 

화재가 시작된 공장 건물 3동 2층은 배터리 완제품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최소 3만 5000여 개의 배터리가 적재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것만 봐도 아리셀 공장이 평소 화재 위험에 어느 정도나 경각심이 없었는지가 드러납니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아리셀 공장 화재가 인재(人災)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죠. 소방당국이 지난 3월 아리셀 공장에 화재 위험성을 경고한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특히 3동 공장에 대해서 "급격한 연소로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고 명확하게 지적한 내용도 드러났습니다. 이번 화재의 모든 사망자가 이 3동 공장에서 나왔습니다. 또한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6월 24일 화재 이전에도 아리셀에서 4건의 화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죠.

 

출처 - KBS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본부에 중앙산업재해수습본부, 경기지청에 지역산업재해수습본부를 각각 구성해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등을 살필 예정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직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는 상황을 한 가지라도 충족하면 '중대산업재해'로 봅니다. 이 법은 올해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3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은 당연히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됩니다.  

 

출처 - KBS

 

이번 화재로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중국, 라오스 국적의 이주노동자로 확인됐습니다. 이들은 아리셀 공장 정직원이 아니라 인력파견업체에서 파견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폭발 위험이 있는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공장이었지만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공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조차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고 비상구가 어딨는지도 몰랐습니다. 폭발 위험이 있으니 배터리를 땅에 떨어뜨리지 말라는 주의사항만 듣고 작업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재해 위험이 '외주화'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이주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리셀 화재 이전에도 해당 공장에서 네 차례 불이 났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출처 - YTN

 

화성시는 잘못된 대처로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습니다. 지난 1일 경기도 화성시청 합동분향소 앞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첫 시민추모제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날 행사를 앞두고 화성시 공무원들이 추모제가 취소됐다고 유족들에게 거짓 전화를 했다고 하죠. 추모제 시작 예정 시간 1시간 전쯤부터 유족에게 배정된 전담 공무원들이 전화를 걸었다고 알려졌습니다. 한 중국 동포 유가족은 일대일 담당 공무원이 전화로 추모제가 취소됐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확인해 보니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이뿐 아니라 화성시청의 한 공무원은 현장에서 추모제를 준비하던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 측에 "(추모제가 아니라)시위다. 청사 내에서 시위 못한다. 고소 고발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순간의 사고로 가족을 잃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유족들에게 좀 더 나은 대응을 할 수는 없었던 걸까요? 지난 7월 5일 아리셀 화재 유가족 교섭단과 아리셀의 첫 교섭은 30여 분 만에 종료됐습니다. 교섭 전 민주노총 소속 한상진 대책위 대변인은 "사고 원인과 책임에 대한 진상 규명이 우선이며, 보상이나 배상 등과 관련한 내용을 회사 쪽에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오늘 이 자리는 회사 쪽에서 진상 규명, 보상 등과 관련해 준비해온 내용을 듣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성과 없이 교섭이 끝난 후 유족 교섭단은 회사 쪽에서 아무런 대안이나 준비 없이 교섭장에 나와서 오래 얘기 나눌 부분이 없었다면서 다음 교섭 일정도 정하지 않았다. 실무단을 통해 추후 일정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고 화성시가 피해자 유가족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화성시청이 유가족을 상대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거나, 유가족들로 구성된 피해자가족대표나 대책회의와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화성시청이 장례 집행을 압박하거나 유도하는 행위를 했다고 밝히는 한편 유가족 중 직계존비속과 친인척에 대한 차등지원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했습니다. 현재 화성시청은 "친인척은 7월 10일까지, 직계존비속은 7월 31일까지만 숙식 지원을 한 뒤 종료한다"고 유가족에 통보한 상태라고 하죠. 화성시에 따르면 현재 지원을 받고 있는 피해자 가족은 23가족, 128명가량이라고 합니다. 화성시는 친인척을 포함한 피해자 가족을 지원하는 데 법률과 행정안전부 지침에 의거, 지원 근거가 부족해 이 같은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재해구호법상 '유족'은 '사망자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로 규정돼 있어 친인척이나 지인 등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시민대책위는 "이번 참사 피해자 중 상당수인 중국인(교포)들은 상대적으로 친척간 유대가 깊은 문화적인 특성을 가진다"면서 "중국에 비해 물가가 높은 한국에서 지내야 하는 유족의 특수성도 있는 만큼 시는 유족의 특성과 취약성을 고려해 이번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유족에 대한 숙식 제공을 유지"해주기를 요구했습니다.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지원이 끊기면 체류비 부담 때문에 조기에 장례를 치르고 귀국할 수밖에 없겠죠. 화성시의 차등지원 방침이 사실상 장례를 조기에 치르고 떠나라는 압박이나 유도라는 말로 들린다는 얘깁니다. 

 


출처 - 연합뉴스

 

박종국 경기도노동정책전문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한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반복 막는 키워드 다섯 가지>라는 기사에서 불법 파견이 일상화된 고용형태의 문제, 형식적인 위험성 평가 문제, 화재에 취약한 건축물 구조와 제품포장재 문제, 중앙정부의 위험물질사업장 관리 등 감독권에 대한 지자체 공유 문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안전대책 확보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출처 - 뉴스통신

 

아리셀 화재참사 원인이 무엇인지, 왜 희생자가 이토록 많이 발생했는지, 이와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밝혀야 할 문제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각종 사고의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볼 때, 이번 화재 참사 유가족들이 헤쳐나가야 할 길이 막막해보여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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