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7월,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KBS <다큐 3일>이 제작 중이던 '세월호 유족' 관련 아이템이 기획제작국장과 부장의 지시로 중단된 일이 있었습니다. 10년이 지나 2024년 4월 18일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방영할 예정이던 KBS <다큐 인사이트> 다큐멘터리가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제작이 중단되는 일이 또 발생했습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10년 전 <다큐 3일> 제작진은 세월호 유족 대표단이 국회와 광화문에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모습을 담은 내용을 취재해 방송할 예정이었습니다. 당시 기획제작국장은 '국회의 농성 상황을 취재 방송하는 것은 의도와 상관없이 목적성을 띄게 되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했고, 담당 부장은 세월호 유족을 이익집단으로 보고 자기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농성을 하고 있다며 농성하는 유족을 취재하면 균형감과 공정성을 상실한다는 이유를 들어 제작 중단을 지시했습니다.
출처 - MBC
'이익 집단'이란 표현은 10년이 지나 윤석열 정부가 세월호 유족을 바라보는 관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10.29 참사 유가족을 대하는 자세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죠. 사고로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을 억누를 길 없는 유족을 이익집단으로 매도하는 인면수심의 정부는 세상 모든 다큐를 선동과 날조의 온상으로 보나 봅니다.
출처 - MBC
이번 <다큐 인사이트> 제작 중단 이유가 기가 막히기 때문입니다.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니까요. 올해 총선은 4월 10일입니다. 방영 예정일은 4월 18일이었고요. 이에 대해 제작진이 항의하자 "자신(제작본부장)은 총선 전후로 한두 달은 영향권이라고 본다"라고 답했다고 하죠. 윤석열 정부가 입맛에 맞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배제하는 타당한 논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세월호'라는 소재 자체가 싫다는 불순한 의도밖에는 읽히지 않습니다.
출처 - 4.16연대
방영이 연기된 <다큐 인사이트> 제작진이 준비하던 '세월호 10주기 방송-바람과 함께 살아낼게(가제)'는 섭외가 80%, 촬영이 40% 이상 준비된 상황이었다고 하죠. 그런데 KBS는 세월호 생존자 기획만 다루기보다 천안함 피격사건, 대구지하철 참사, 씨랜드 화재, 삼풍백화점 등과 같은 다른 재난과 엮은 PTSD 시리즈를 제작하려고 6월 이후 방송하는 것으로 연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기획된 다큐멘터리를 왜 다른 기획으로 바꾸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작진조차 방영 연기 지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뻔히 보이는 수작을 마주한 출연자들이 출연할 리 없겠죠. 40% 촬영을 마친 세월호 10주기 KBS <다큐 인사이트> 다큐멘터리는 결국 묻히게 됐습니다. 현 정권이 보기 불편한 세월호라는 소재를 피하려고 다큐멘터리 기획을 뒤틀고 방영을 연기하며 훼방을 놓던 이들은 다큐멘터리 제작 중단을 퍽이나 반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출처 - 4.16연대
이번 편성 변경을 지시한 제작본부장은 박민 KBS 사장 부임 이후 임명됐습니다. 박민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뉴스 및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를 대폭 물갈이했죠. 이 과정에서 각종 문제가 터졌습니다. 갑작스러운 편성 취소로 시사토크 프로그램이 예능 및 드라마 재방송으로 대체되기도 했고, 진행자 교체가 사전에 고지되지 않은 탓에 시청자는 물론 당사자들도 방송 전날 혹은 당일에 하차 소식을 들어야 했죠.
출처 - JTBC
국영방송인 KBS가 설 연휴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진행한 특별 대담에서 김건희 여사가 받은 명품 가방을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조그마한 백"이라고 칭하며 사건을 축소하려 하자 숱한 시청자의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윤석열 정권 앞에서 아부하는 국영방송의 '윤비어천가'가 참으로 낯 뜨겁습니다.
출처 -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
지난 2월 28일 눈이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KBS 본관 앞에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KBS 박민 사장 사퇴와 4월 방영을 촉구하는 구호가 이어졌습니다. KBS는 총선과 관계없이 원래 기획대로 <다큐 인사이트> 다큐를 제작해 애초 예정한 때 방송하고, 재난에 따른 PTSD 다큐멘터리는 따로 제작해 방송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KBS는 공정방송위원회(공방위)마저 무산시켰습니다.
출처 - 박순찬
공방위는 방송의 공익성이 훼손되거나 제작·보도 책임자와 실무자 사이 갈등이 불거진 경우 이를 중재하는 노사 협의체죠. 이제원 제작1본부장이 공방위 참석을 거부하여 2월 29일에 열릴 예정이던 임시공방위가 무산됐습니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는 사 쪽이 단체협약과 편성규약을 또다시 정면 위반했다며 반발했습니다. 자, 이쯤 되면 누가 총선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까? KBS는 윤석열 정권의 눈치를 보며 다시 '기레기' 소리를 들으려 합니까? 더 큰 비판에 직면하기 전에 공영방송의 품격을 속히 되찾길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는 총선을 앞두고 공권력을 휘두르는 윤석열 정부를 향해 정의의 철퇴를 내릴 때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