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10일 있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출마가 예상되는 전·현직 검사가 최소 45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선 최소 31명의 전·현직 검사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선 최소 14명의 전·현직 검사가 출마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하죠. 그들은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윤석열이 검찰 독재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출마에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공직선거법 제53조 제1항은 '국가공무원으로서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선거일 전 90일까지 그 직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조 제4항에는 '그 소속기관의 장 또는 소속위원회에 사직원이 접수된 때에 그 직을 그만둔 것으로 본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사표 내면 그 순간 그만둔 것이니 출마해도 돼'라고 해석할 수 있죠. 전직 검사는 당연히 출마해도 괜찮습니다. 선거 90일 전까지 사직했다면 현직 검사의 출마도 문제는 되지 않겠죠. 문제는 현직 검사들이 사표 수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총선 출마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검사로 월급을 받으면서 가욋일 즉, 선거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공무원에게 선거일 전 90일까지 공직을 사퇴하도록 한 것은 공무원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개입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검사들이 이런 법 취지를 모르지 않을 텐데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사람이 많습니다.
출처 - KBS
이는 '황운하 판례' 때문입니다. 공직자가 공선거법상 출마 시한인 선거일 90일 전까지 사표를 냈다면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더라도 출마가 가능하다고 본 대법원 판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표를 내도 수리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기관장이 사표 수리를 거부하거나 지연한 게 아니라 불가능한 경우 말입니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비위와 관련해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경우나 내부 감사가 진행 중인 경우 퇴직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표가 수리되지 않는 겁니다. 공무원이 비위를 저지르고는 퇴직 수당 삭감 등의 징계 안 받겠다고 그만둬버리면 안 되잖습니까?
출처 - 국회방송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서울 중앙지검 김상민 부장검사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고향 사람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가 공개돼 비판받은 일이 있습니다. 공개된 문자 메시지에는 "저는 뼛속까지 창원 사람이다", "창원은 이제 지방이 아니라 또 하나의 큰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지역 사회에 큰 희망과 목표를 드리겠다"는 등의 내용이어서 현직 검사가 정치 활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죠.
출처 - KBS
신성식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은 서울중앙지검 차장이던 2020년 당시 한동훈(현 국민의힘비상대책위원장)과 이동재 채널A 기자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신라젠 주가조작 연루 의혹 을 제기하자고 공모했다며 KBS에 허위 사실을 제보해 한 위원장의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 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사직서를 낸 이후 전남 순천 선거구 더불어민주당 예비 후보로 등록했습니다. 법무부는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총선에 출마하는 현직 검사들에게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김상민 부장 검사는 정직 3개월, 신성식 연구위원은 해임 처분을 받았습니다.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 훼손을 크게 문제 삼은 결정이었죠.
출처 - MBC
며칠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현직 검사로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는 전두환 하나회"라는 발언을 해 법무부로부터 '정치적 공정성 훼손'을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됐습니다. 그런데 14일 자신의 징계 사건을 심의하는 검사징계위가 열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건물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근무지만 서초동에서 용산으로 옮긴 듯 윤석열 전 검사는 정치를 수사하듯이 하고 있다"며 "(국회로 가)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관철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어 "(총선일인) 4월 10일은 민주주의 퇴행과 검찰 정권을 끝내는 시작이 되어야 한다"며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아는 제가 윤석열 사이비 정권을 끝장내고 윤석열 사단을 청산하는 데 최선봉에 서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현직 검사가 총선 출마를 시사한 것입니다.
출처 - MBC
공직자, 특히 검사는 특정 사안을 다룰 때 정치적 편향성이 반영됐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직 신분으로 출마를 선언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기업조차 겸직금지 조항이 있죠. 이는 직무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업무 수행 중 취득한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는 식의 비위를 저지를 요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출처 - 데일리안
현직 검사의 정치 출마는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법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긴 했습니다. 황운하 의원 논란(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당시 국민의힘에서 공무원 신분으로 출마를 막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폐기될 상황입니다. 야당에서는 최강욱 전 의원이 '검사 출마 제한법'을 발의했으나 당시 검찰 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란 말이 나와 한동훈 장관 시절 법무부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표명한 바 있죠.
출처 - 동아일보
이러는 와중에 현직 검사의 정계 진출 시도는 사실상 꽤 늘었습니다. 검사와 같은 사법기관 공직자가 현직인 상태로 정계에 진출하는 것은 사법기관의 신뢰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주요한 문제인 만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합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공무원 출마를 제한하는 공직선거법의 취지와 대법원 판례가 맞지 않는 만큼, 사표가 수리되지 않으면 출마를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지난 15일 현직 검사들의 총선 출마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자 박성재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안타깝지만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입법적 조치가 미흡해서, 밖에서 보는 제 입장에서도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시민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출처 - 2014 총선시민네트워크
전국 19개 의제별 연대기구와 80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구성된 '2024 총선시민네트워크'(약칭 2024 총선넷)는 지난 19일 21대 국회 현역의원을 중심으로 35명의 1차 공천반대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2024 총선넷은 35명의 공천반대 명단을 유권자들에게 널리 알려 투표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각 정당의 공천 심사 과정에서 반영되도록 촉구하여 반개혁적이거나 정부 실정에 책임이 있는 인물들이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않도록 활동할 계획이라고 하죠. 이에 더해 검사의 정치 출마를 막을 실효성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앞으로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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