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민생 안전을 위해 매진해도 모자랄 판국인데 국회에 해괴한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바로 '대화 녹음 금지법'입니다.
출처 - SBS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상대방 동의 없는 대화 녹음을 금지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입니다. 전화통화 녹취 등이 재판에서 핵심 증거로 사용되는 상황에서 개정안이 입법될 경우 녹음 행위만으로도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이 법안의 공동 발의자인 박덕흠, 김선교, 박대수 등 10명은 모두 국민의힘 소속입니다. 명단만 봐도 어떤 목적으로 법안을 발의했는지 감이 오지 않습니까?
출처 - SBS
현재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에 대해서만 녹음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가 몰래 녹음하는 것이 불법이지, 녹음하는 본인이 참가한 대화의 녹취는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의된 개정안은 대화 당사자가 녹음하더라도 대화 참여자의 동의가 사전에 없다면 불법이 되는 내용입니다.
출처 - KBS
어쩌면 녹음한 사람이 더 큰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발의자인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제안 이유에 현재 법안으로는 사생활의 자유와 통신 비밀의 자유와 헌법상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의 일부인 음성권 침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글쎄요, 과연 그런 순수한 뜻으로 발의했을까요?
출처 - KBS
어쩌면 윤상현 본인이 녹음 때문에 혼쭐이 난 탓에 개인적인 복수를 하려는 삼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민의힘 4선 중진인 윤상현은 지난 총선 당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선거법 위반 관련 재판을 받았습니다. 당시 윤상현 캠프에서 이른바 매크로 작업을 통해 불법으로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포착됐는데요, 실제 여론 조작 작업을 했다는 사람이 윤상현의 지시를 받은 특보와 대화한 내용을 녹취해 언론사에 제보한 일로 세간에 알려졌습니다. 녹취에는 윤상현 측이 핸드폰과 하드디스크 등을 없애 증거를 인멸하도록 교사하는 등 범죄 관련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윤상현 측이 여론 조작 작업자를 버리려고 하자 이에 화가 난 작업자가 녹취를 폭로한 거죠. 이 일로 윤상현은 공천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출처 - JTBC
이와 같이 녹취는 약자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녹음 기기가 작아지면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녹취가 중요한 자기 보호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차에 블랙박스를 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2013년 한진 회장 일가의 폭언과 갑질 의혹이 사실로 폭로될 수 있었던 것도 녹취 덕분이었습니다. 지난 대선 기간 중 공개된 바 있는 김건희의 녹취록처럼 거대 정치권력의 회유나 협박에 맞설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직장 상사의 갑질 혹은 성희롱에 대한 증거를 삼기 위해 곧잘 녹취가 이용되곤 합니다.
출처 – 직장갑질 119
그런데 이 모든 일이 갑자기 금지되고 불법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동의 없는 녹음이 죄다 불법이 된다면, 과연 갑질하는 상사나 성희롱하는 당사자가 증거 활용을 위해 하는 녹취에 동의를 해줄까요? 합종, 연횡, 술수가 난무하는 곳에서 권력 있는 이들이 녹취에 동의해줄 리 만무하죠. 이번 개정 법안이 통과되면 녹취를 시도한 약자는 10년 징역이라는 큰 벌을 받지만 갑질한 쪽은 집행유예나 벌금만 내고 끝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의안정보시스템
동의 없이 대화 당사자가 녹음했다고 해서 현재로는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민사 재판으로 소를 제기하여 음성권이나 사생활 비밀 침해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사례도 생깁니다. 실제로 이번 개정안 발의자인 윤상현은 공천에서 배제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이후 녹취한 여성을 고소했습니다. 그 여성은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녹취는 약자들로서는 실로 가냘픈 방패에 불과한데, 이마저 없애겠다며 달려드는 권력자들의 행태가 참으로 뻔뻔합니다.
출처 - 이데일리
녹취라는 수단은 약자들이 증거로 삼거나 내부 고발 등의 공익 목적으로 활용학 위해 취하는 수단인 만큼, 이를 불법으로 규정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개정안이 입법된다면 좋아할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발의자인 윤상현 의원과 공동발의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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