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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물/도서비행

자연과 마을과 더불어 사는 사람을 키우는 곳. 풀무학교

by 생각비행 2011. 3. 28.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 주변 마을지도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배울 수 있는 학교

사교육 시장이 수조 원대에 이르고 아이들이 살인적인 경쟁으로 내몰리는 세태에 대한 반작용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다양한 형태의 대안학교가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에 자리 잡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참교육을 실현하는 학교로 5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랍니다. 대안학교라는 요즘 말이 무색하게 반세기 전에 대안교육을 실현하는 공동체를 시작한 셈인데요. 옛말에 이르기를 "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습니다.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이지요. 그만큼 풀무학교는 다른 대안학교들과는 조금 다르게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 곳이었습니다.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홍동면 마을 공동체를 얼마 전에 생각비행이 몇 분의 독자분과 함께 방문하고 왔습니다. 그곳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볼까 합니다. 

 
최근 생각비행은《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를 출간하고 이 주제와 연관된 다양한 기사를 기획해서 여러분께 알려 드렸는데요, 저희가 기사를 작성하면서 주요하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사회적기업가 정신'으로 응축할 수 있습니다. 근래 사회적기업에 관한 논의가 무성합니다만, '사회적기업가 정신'에 입각한 사회적기업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첫 출발은 좋았으나 영업 이익을 내지 못해 문을 닫는 기업이 부지기수요, 초심을 잃고 영리기업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도 생각비행은 좋은 사회적기업을 발굴해서 알리려고 합니다. 그 기획의 첫 기사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환경농업전공부'를 선정했습니다. 사회적기업을 표방하진 않더라도 사회적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풀무학교의 설립자는 이찬갑, 주옥로 선생님입니다. 이찬갑 선생님은 오산학교 출신으로 ‘교육, 기독교, 농촌’에 의한 민족 구원을 위한 교육을 평생 준비했으며, 주옥로 선생님은 감신대를 나온 뒤 홍동에서 독립 전도를 하면서 ‘진리, 학문, 자립으로 그리스도인, 농촌수호자, 세계의 시민’ 양성을 위한 중등교육기관 설립을 염원했습니다. 이 두 분은 홍동 성서집회에서 만나 뜻이 일치하여 풀무학교를 열었습니다. 이렇게 소개를 드려도 풀무학교가 어떤 곳인지 아직 잘 모르시겠죠? 여기서 풀무학교의 교육 목표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풀무학교의 교육 목표

풀무는 성서에 바탕을 둔 깊이 있는 인생관과 학문과 실제 능력에서 균형 잡힌 인격으로 하나님과 이웃, 지역과 세계, 자연과 모든 생명과 함께 더불어 사는 평민(교훈)을 기르고자 한다.

 1) 성서위에 학원
 학생이 재학 중 성경을 배우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을 바른 인격교육의 바탕으로 믿는다. 
  2) 기본층의 평민
 자기와 남의 가치를 자각, 존중하면서 주어진 자기 실현과 사회 기여에 힘쓰는 기본층의 ‘깨어난 평민’은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고, 이는 이 사회의 저력이자 향상의 희망이다.
  3) 머리, 가슴, 손의 조화
 입시편중 교육을 배격하고 머리(학문), 가슴(신앙), 손(노작)을 고루 발전시켜 인문․직업교육의 극단적 2원성을 극복하여 전인교육을 지향한다.
  4) 작은 학교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다양한 소질과 능력을 찾아내어 스스로 배울 수 있게 돕고, 그들이 창조적 힘을 발휘하며 생활 속에서 인격적 만남을 할 수 있도록 학교 규모를 작게 한다.
  5) 전원 생활관 생활
 전원 생활관 생활을 통하여 학교는 예배하고, 배우며, 생산하고 생활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6) 머리도 꼬리도 없다(무두무미)
 교직원과 학생은 예수를 교주로 하여 각기 자기 역할을 하면서 유기적 공동체를 이루는 일원이며 동료로서 학교 일을 민주적으로 협의, 결정한다. 
  7) 밝은 학교 생활
 학교에서 정한 10가지 약속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검소하고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도록 학생문화 환경을 마련하며 개별지도, 묵학시간 활용과 교실 안팎에서의 공동학습, 자치활동을 장려하여 학교생활을 밝고 뜻있게 한다.
  8) 더불어 사는 지역과 학교
 지역의 교육적 환경을 선용하며 지역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 실현에 협력한다.
  9) 국제이해
 평화로운 동북아시아 건설을 위해 중국어와 일본어를 선택하여 배우고 일본의 자매학교와 교류하며, 재학 중 일본이나 중국으로 교류 학습을 하여 동북아의 중간 역할을 감당할 성실한 시민을 기른다.
 10) 사학의 책임
 학업이나 생활지도에 열심이고 사회에도 책임이 있는 사학의 자율적인 정신을 살린 풀무는 작은 학교로서 사람을 기르는 교육과 학교의 바른 모습을 꾸준히 추구하려고 한다. 
 
애초에 풀무학교는 고등학교 과정 위주로 학사운영을 했습니다만, 시일이 지나면서 기본 과정만 마치고는 농촌 현장에서 일할 조건이 되지 못해 전공부 과정까지 연장할 필요를 느꼈다고 합니다. 풀무학교 전공부는 시장경제와 경쟁에 대체할 세계관인 -다양성, 상호의존, 개체 속 전체, 순환, 조화, 자발적이라는- 생태의 보편법칙 실현에 농업이 가장 핵심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소농이 지역의 다양성을 살려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함께 나누며, 모든 이해 당사자의 참여로 농민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평화 사회 실현에 중심축이 된다는 믿음을 품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농업과 농촌을 일으킬 농민을 기르고자 오랜 준비 끝에 새 세기가 시작하는 2001년에 개교했습니다. 전공부 홈페이지(www.poolmoo.net)를 보면 이런 소갯글이 있습니다.

전공부는 대도시 집중, 노동 경시, 과도한 경쟁, 엘리트 양성의 교육이 아니라 농촌교육, 민중교육, 정신교육, 실력교육과 더불어 학생 개개인의 인격과 그들이 지닌 다양하고 고유한 개성을 존중하는 인격교육, 일과 배움과 생활을 통해 개인의 머리, 가슴, 손을 고루 실현시키는 전인교육, 학교 자체가 자립하는 농사 마을 교육,
지역 속에 뿌리를 내리는 공동체 교육을 교육의 본질로 추구하는 울타리 없는 풀뿌리 주민지역대학, 마을과 더불어 사는 대안대학이 되고자 합니다.


학교와 지역은 하나다

생각비행이 방문한 홍동면은 마을과 학교가 하나라도 된 듯 구분하기 어려운 공동체였습니다. 풀무학교에서 교육받은 학생 가운데 마을에 정착한 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풀무학교는 "성서 위의 학교, 더불어 사는 평민, 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학교와 지역은 하나다, 인생의 창업"과 같은 열쇳말로 '풀무성'을 추구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더불어 사는 평민, 학교와 지역은 하나다'라는 지역성을 기반으로 혼자만이 아닌 공동체 모두를 위한 교육 그리고 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동체 정신을 잃고 있는 오늘날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지역에 귀농한 사람도 많지만 어떻게 하면 지역 주민과 더불어 잘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학교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삼았으나 이를 강요하거나 다른 종교를 차별하지는 않았다고 하는군요. 풀무학교를 다닌 분 중에 신부님, 수녀님, 스님들도 계셨다고 하니까요.

학교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학교 주변을 좀 둘러볼까요?


갓골 목공소


학교 근처에 갓골 목공소가 있습니다. 곡괭이를 달아 만든 문이 멋지지 않습니까? 그 어떤 장식 자재보다도 훌륭합니다. 육중하고 든든하면서도 시골스러움이 묻어납니다. ^_^


목공소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공구도 많았습니다. 도시에 자리 잡은 여타 목공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분은 목공소의 주인이자 풀무학교에서 목공일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홍동마을로 귀농했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정착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스스로 출자한 자금과 풀무학교의 도움을 받아 이 목공소를 차렸다고 합니다. 이제 목공소는 이 마을 아이들에게 목공일을 가르치고 마을 안의 크고 작은 목공 관련 일도 도맡아 하는 명물이 되었습니다.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일을 찾아 자신의 일로 만든다는 말씀을 들으니 지역과 함께 크고 함께 산다는 의미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밝맑도서관 가는 길

도서관 입구


이제 막 문을 연 밝맑도서관도 다녀왔습니다. 풀무학교 주변에 있는 생협이나 가게, 느티나무 헌책방 같은 곳까지 풀무학교 학생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전공부 학생들이 생활하는 기숙사는 한 장 한 장 스스로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풀무학교 전공부 기숙사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환경농업전공부



졸업식이 아닌 창업식을 하는 학교


학생들은 스스로 또 함께 공부하며 일하는 즐거움을 찾습니다. "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우리는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개교 정신 아래 학생들은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고 학교 실습지에서 공부한 내용을 직접 몸을 놀려 터득합니다. 지역 봉사활동도 빼놓을 수 없지요.

풀무학교 전공부가 다른 학교와 다른 점은 학생이 주축이 되어 학교 생활과 행사를 꾸려나간다는 점입니다. 교사와 학부모는 어디까지나 도움을 줄 뿐 학생 위에 군림하지도 않고 반대로 다 해주지도 않는다고 하네요. 대학은 물론 직장에 들어간 자식 주위를 맴도는 헬리콥터 부모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젊은이들이 되지 않도록 이끄는 교육법이라고 하겠습니다. 학교 구성원 각자가 주체적인 사람이 되어야 공동체 역시 건전하게 운영해 나갈 수 있으니까요.

전공부 교무실


갓골생태연구소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전공부는 농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어서 농업을 중심으로 실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교생이 농업에만 매달리지는 않습니다. 학생 스스로 잘하는 일을 찾아 자기실현을 할 수 있고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도록 배려합니다. 이에 따라 학생은 농사를 짓거나, 목공을 하거나, 제빵을 하거나, 도서관을 운영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등 스스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갑니다. 
풀무학교는 교육과정을 마치면 '졸업식'이 아닌 '창업식'을 한다고 합니다. 일반 대학교에서 졸업 논문을 제출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각자 하고 싶은 사업 하나를 선정하여 지속 가능한 일로 일구어 보는 과정이 풀무학교의 마지막 커리큘럼이라니,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 않습니까?



생각비행이 방문한 풀무학교는 자기실현과 공동체를 동시에 배려하는 '사람 냄새'나는 사람을 키우는 곳이었습니다. 오늘은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소개했습니다만, 홍동마을은 갓골 생태농업연구소, 풀무학교 생활협동조합, 느티나무 헌책방, 그물코 출판사, 갓골 어린이집에 이르기까지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기업의 보고였습니다. 앞으로 이 마을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소개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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